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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의 6·29를 열망한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4. 4. 10:00

     

    국민을 속인 정치쇼? 하지만 권력이란 절대 반지를 순순히 내놓은 역사는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타협'이라는 정치를 통해 1987년 대한민국이 거듭났다
    그 위대한 유산을 살리고 새로운 기적의 역사를 쓰자

     
     

    오늘은 운명의 날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지난 122일 동안, 하나의 질문이 끝없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 민주주의가 이토록 취약했나! 하지만 상황은 날로 악화되어, 이제 국회의 대화는 완전히 실종되고, 정부는 겨우 숨만 쉬고 있다. 사법부는 신뢰를 잃고, 군의 명예가 무너졌다. 거리는 서로에 대한 적의와 증오의 고함으로 뒤덮였다. 한국 사회는 두 쪽으로 갈려, 무기를 들고 서로 노려보는 검투사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국가가 해체되면 홉스적 자연 상태, 곧 전쟁 상태로 나아간다. 그때 우리의 삶은 “외롭고 불쌍하고 불쾌하고 짐승 같고 짧다.”

     

    1987년 6월도 그랬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에 성공했다. 6·10 항쟁에 이어 6·29 선언이 전격 선언되었다. 대한민국은 불과 한 세대 전 하루 두 끼 먹기도 힘든, 세계 최빈국이었다. 하지만 6·29 선언으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강물이 하나가 되어 흐르자, 대한민국은 일약 선진국으로 날아 올랐다. ‘정치의 실패’가 ‘정치의 힘’으로 바뀌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6·29의 기적’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6·29 선언은 6·10항쟁에 비해 평가가 낮다. 국민의 거센 저항에 놀란 정권의 항복 선언이고, 국민을 속인 정치 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면이 있다. 당시 군부 정권의 통치력은 한계에 달했다. 6·29 선언은 그 현실을 인정한 타협이자, 다가올 대선의 명분을 선점한 고도의 정치 공학이었다.

     

    하지만 권력이란 절대 반지를 순순히 내놓는 역사는 없다. 6·29 선언도 그랬다. 전두환 대통령은 7년 단임을 약속했다. 그러나 1987년 6·10 항쟁 때 위수령을 내리고 군대를 출동시키려 했다. 이걸 막은 가장 중요한 인물이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였다. 전 대통령은 그에게 군 출동을 통지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상을 알아챈 노 대표는 “나의 모든 직위를 걸고서라도 군 출동을 막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젊은 장군들, 영관급 일선 지휘관 중 일부도 반대했다. 노 대표는 즉각 이기백 국방장관, 안무혁 안기부장, 권복경 치안본부장에게 연락해 “어떤 일이 있어도 군의 출동만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군 출동에 반대한 레이건 미 대통령의 친서가 전 대통령에게 가까스로 전달되면서, 군 출동은 마지막 순간 취소되었다.

     

    한국은 유혈 사태 없이 민주화에 성공했다. 군부의 롤백도 일어나지 않았다. 제3세계에서 드문 사례다. 1987년에 이르러, 한국 군부가 비로소 ‘정치’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군부는 놀라운 ‘통치’ 능력을 발휘했다. 치안과 안보를 확보하고,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 전후 후진국에서는 전무후무한 사례였다. 하지만 군부는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했고, ‘정치’에는 더더욱 미숙했다. 그래서 강압적 통치로 일관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국가의 출발은 “서로 상대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두 사람의 결합”이다. 즉, 둘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둘은 달라야 한다. 그래야 단순한 하나가 아닌, 서로를 보완하며 더 큰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통치란 이 둘의 ‘생존’을 위한 질서와 능률을 추구한다. 정치는 서로 다른 둘의 ‘공존’을 위한 대화와 정의를 추구한다. 통치가 볼 때 정치는 낭비다. 하는 일 없이 말만 많고, 늘 다투기 때문이다. 물론 생존 없이는 공존도 없다. 하지만 공존 없이는 생존도 지속 불가능하다. 그 자각이 인류의 지혜다.

     

    대화와 타협은 정치의 수단이 아니라 정치 자체이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이념, 또는 경제나 안보 같은 ‘쓸모’는 본질적으로 정치가 아니다. 정치란 서로 다른 인간들이 폭력 없이, 말을 통해 함께 살기 위한 활동일 뿐이다. 그래서 아무 쓸모 없는 정치의 대지 위에서만 안전과 자유가 자라고, 문명의 꽃이 핀다.

     

    1987년은 한국 역사에서 단순히 ‘민주화’ 원년이 아니다. ‘정치’ 원년이기도 하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타협’이라는 정치를 통해 새 헌법을 만들고,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고, 대한민국이 거듭났기 때문이다. 혹자는 87년 민주화를 ‘보수적 민주화’(conservative democratization)라고 폄하한다. 그런 인식이 제2건국이나 촛불 혁명, 문재인 정부 때 대대적인 적폐 청산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1987년 탄생한 ‘정치’가 요절했다. 12·3 비상계엄과 오늘의 파국은 그것이 빚은 참극일 뿐이다. 위기를 기적으로 바꾼 87년, 그 위대한 정치의 유산을 살리는 제2의 6·29를 열망한다. 오늘 대한민국이 살고, 세계 선진 강국으로 우뚝 설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2025년 4월 4일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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