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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울한 시대에도 빛났던 숭고한 독립정신 한자리에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8. 12. 06:07

    덕수궁서 광복 80주년 특별전… 문자 보급 운동 교재·안중근 유묵 등 전시

    나라는 쓰러졌지만 백성은 굴하지 않았다. 이번 특별전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항일 의병 관련 문서'. 1851년부터 1909년 사이 작성된 여러 의병장의 서신과 격문 등을 편철한 것으로 일제는 이 문서에 '한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 장수의 격문' 등의 이름을 붙였다./장경식 기자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서울에서 공부하다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학생들 손에는 한글 교재 한 권씩이 들려 있었다. 학생들은 고향 집에서, 헛간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문자 보급 운동’을 벌였다.

    국가유산청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12일부터 덕수궁 돈덕전에서 ‘빛을 담은 항일유산’ 특별전을 연다. 이 자리에서 국가 등록 문화유산인 ‘한글원본’ 등 조선일보 문자 보급 운동 교재 3종과 안중근의 유묵 ‘녹죽’(綠竹, 푸른 대나무), 일제에 맞선 의병장들의 결사 항전 기록 등 유물 11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빛을 담은 항일유산 특별전 개막 하루 전인 11일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정에 조선일보에서 발간한 문자 보급 운동 교재 3종이 전시돼 있다. 이 교재들은 2011년 국가 등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조선일보사는 최근 보유중인 이 교재들을 국가유산청에 대여했다./장경식 기자
     

    이 시기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당시 조선 인구 2000만명 중 1700만명이 글을 읽지 못했다. 학령아동 수는 245만명인데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는 20% 수준인 49만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학교에 입학하더라도 일본어를 ‘국어’라 하며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1929년 조선일보 편집인이었던 장지영은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구호로 문자 보급 운동을 이끌었다. 조선일보가 무료로 한글 교육 교재를 배포하고 학생들이 이 교재로 고향 동네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가 이를 다뤘다. 정진석(86)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단순히 ‘문맹 타파 운동’이 아니라 일제 민족 말살에 맞서 민족 정체성을 일깨우기 위한 최대의 항일 투쟁이었다”며 “정부가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언론이 정부의 역할도 맡은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문자보급 운동 교재 '한글원본'/장경식 기자
     

    문자 보급 운동 첫해에 409명의 학생이 참여해 2849명이 한글을 깨쳤다. 1931년 조선일보는 신설된 ‘문화부’가 문자보급운동을 전담하기도 했다.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 취임 이듬해인 1934년에 이르면 10배가 넘는 5078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당시 조선일보 전국 지사·지국이 한글 보급 기지가 됐다. 교재 ‘한글원본’은 100만부가량 배포됐다. 당시 조선일보 부수가 3만8000부 수준이었다.

    장지영은 “전국에 안 간 곳이 없었다. 글을 깨쳐 신문을 읽을 수 있게 된 사람이 30만명이 됐다는 보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의 2년 뒤인 1931년 ‘브 나로드(민중 속으로)’라는 이름으로 문맹 타파 운동에 나서 1934년까지 활동했다. 이번 전시에는 동아일보의 문자 보급 교재 2점도 나왔다.

     

    이후 장지영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된다. 영화 ‘말모이’의 배경이 된 사건이다. 조선어학회가 썼던 ‘조선말 큰사전 원고’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장지영의 스승이었던 한글학자 주시경이 집필에 참여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말모이’ 원고도 전시된다.

     
    국내 대중에 첫 공개되는 안중근 의사의 '녹죽'/장경식 기자
     

    안중근 의사의 항일 의지가 담긴 친필 유묵 두 점도 공개된다. 안 의사의 녹죽은 1910년 사형을 앞두고 중국 뤼순 감옥에서 자신의 신념을 대나무의 지조와 절개에 빗대 쓴 글씨. 시원시원한 글씨 왼쪽에 약지 한 마디가 없는 그의 손바닥 도장이 찍혀 있다. 녹죽은 예전부터 구전되던 오언시(五言詩)를 엮은 책 ‘추구’에 등장하는 “푸른 대나무는 군자의 절개요, 푸른 소나무는 장부의 마음(綠竹君子節 靑松丈夫心)”에서 따온 단어다. 일본의 한 소장자가 갖고 있던 이 유묵은 지난 4월 서울옥션 경매에 나와 고(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차녀인 구혜정 여사가 9억4000만원에 낙찰받았다. 그의 아들은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를 맡고 있는 ㈜태인 이상현 대표다. 녹죽이 국내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 특별전이 처음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일통청화공'/국가유산청

    안 의사의 또 다른 유묵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도 나왔다. 뤼순 감옥에 투옥 중이던 그가 같은 해 일본인 간수 과장 기요타(淸田)에게 ‘날마다 맑고 깨끗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란 뜻으로 써준 글씨다. 당시 그의 철학과 인품에 감명받은 교도소 간수·경찰·통역관·교사·승려 등이 유묵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일통청화공은 2022년 보물로 지정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안 의사의 유물 60여 점 중 31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번 특별전에 전시된 '항일 의병 관련 문서'/장경식 기자
     

    의병장들의 결사 항전 기록인 ‘항일 의병 관련 문서’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제 헌병경찰에 의해 증거품으로 수집되고 작년 7월 일본에서 환수한 문서다. 1939년 일제 경찰이 각종 서신을 임의로 편철해 보관해오던 것이다. 13도 창의군을 조직한 허위·이강년 등 당대 최고 의병장들의 친필이 담겼다. 허위는 평리원 재판장(현 대법관)을 지낸 고위 관료 출신으로 ‘서울 진공 작전’을 총지휘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첫 의병장이다. 이강년은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갑신정변 이후 낙향했다가 을미의병을 일으켜 활약했다.

     

    문서에는 이들이 부대에 내린 군령(軍令), 동지들과 주고받은 비밀 서신, 백성에게 의병 항쟁의 동참을 호소하는 격문이 포함돼 시대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창의군 원수부 우장군 윤인순은 이 문서에서 “사람이 되어 충성과 반역, 복과 화의 기미조차 분별하지 못한다면 나무와 돌덩이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라며 적에게 협조한 이들을 꾸짖는다.

     

    전시를 총괄한 황선익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는 “전시장 검은 조명에는 암울한 시대를, 흰 조명에는 숭고한 독립 정신을 담았다”며 “모이기 힘든 독립운동사의 가장 중요한 유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전시”라고 말했다. 10월 12일까지. 덕수궁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전시는 무료.

     

    2025년 8월 12일 조선일보  박진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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