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병우박사의 인생의 길을 바꾼 그의 교장선생을 비판 작문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8. 24. 19:06
의주 농업학교 2학년 2학기 때일이다. 다. 늦은 가을을 맞아 작문 담당의 와따나베 선생은 우리들에게 자유 제목으로 작문을 지어 내라고 했다. 이 선생은 동경 대학 출신의 웅변가로서 이 학교의 부교장직도 맡고 있었다.
나는 "나의 희망과 농업 학교"라는 제목으로 공책 6페이지쯤 되는 긴 작문을 썼다. 작문 내용은 주로 교장 선생이 학교 운영을 잘못하는 것 같다는 비판이었다. 쉽게 말해 교장을 까고 교육 방침을 비판하는, 당시의 학생 신분으로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그런 글이었다. 기숙생들의 식생활은 감옥 죄수들 것과 다름이 없고, 상급생은 하급생을 노예 다루듯 하고, 심부름은 말할 것도 없고 양말 빨래까지 시키는 풍조도 교육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공격했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 감언이설로 학생들을 동원하여, 산을 깎아 운동장을 만드는 중노동까지 시켰다고 쏘아붙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교장 선생이 관존민비의 사상을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있으니 매우 유감스럽다는 것까지 지적했다. 교장 선생은 걸핏하면 학생들에게,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군청 서기나 혹은 면사무소 서기가 되라고 하면서 왜 농업 학교에서 훌륭한 농업 기술을 배워 고향에 가 일등 가는 독농가가 되라는 말은 안 하는가? 하고 비판하였다.
그 고마쓰 교장 선생은 60세 노인으로 카이젤 수염을 단 풍채가 좋은 사람이었다. 키가 크고 눈도 커서 퍽 인상적 이었다.
나는 이 글을 써 놓고도 작문 공책을 내놓을까 말까 몹시 망설이다가 '나의 바른 양심의 소린데 뭐' 하는 생각이 불끈 오기처럼 솟아나 그대로 내놓았던 것이다. 정의를 위해서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지난번 상급생과의 싸움에서 얻은 승리를 통해서 더욱 확신을 얻은 듯했다.
한 주일이 지난 후 작문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와따나베 선생은 작문 공책을 한 아름 안고 교실로 들어와 학생들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내 작문 공책은 돌려주지를 않는 것이었다.
'아이구, 내 작문이 드디어 걸렸구나.' 어린 마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그런데 와따나베 선생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조용해요, 내가 작문 하나를 읽어 줄 테니, 잘 들어 봐요."
그는 고마쓰 교장 선생의 비리를 지적하여 쓴 나의 작문을 웅변적인 어조로 유창하게 다 읽었다. 학생들은 숨을 죽인 채로 듣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곤 했다. 내 작문을 시원스레 다 읽은 와따나베 선생은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똑똑히 들어요. 여러 학생들의 작문은 대체로 천고마비의 가을 하늘이 맑고 푸르고 어쩌고 하면서 남의 글 흉내를 낸 글들이 많았는데, 그런 글은 죽은 글이야. 그런데 공병우 군의 글은 매우 색달라. 내용이 살아 있는 진짜 작문이란 말이다. 그런 점을 참작해서 오늘 작문 시간에도 자유 제목을 또 줄 테니 한 번 더 써 보도록 해요. 그리고 공군의 작문은 압록강 일보에 보내어 신문에 실리도록 할 테니 신문에 나거든 다시 잘 읽어 보도록 해요."
나는 이 같은 칭찬의 평보다는 만일 교장 선생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봐 걱정이 되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와따나베 선생은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교실을 나가 버렸다. 나는 작문 공책도 없이, 만약 교장 선생이 이 일을 알면 어쩌나 하고, 한 시간을 초조하게 보냈다.
수업이 끝난 뒤, 알고 보니 와따나베 선생은 1학년과 3학년 교실에까지 가서, 수업 중이던 선생과 귓속말을 나눈 다음, 교단에 올라가 나의 작문을 낭독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교무실에서, 그것도 교장이 자리에 앉아 있는 데서 교장을 비난하는 내 글을 낭독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이젠 갈 데까지 다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기숙사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고 말았다. 이번에야말로 퇴학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퇴학을 당한 후 어떻게 할 것인 가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이 같은 작문 파동이 있은 지 사흘째 되는 날, 예측했던 대로 사환이 내게 와서 "저녁 식사 후 교창 사택으로 오란 다"는 교장의 지시를 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퇴학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관례로는 교장이 학생을 교무실로 불러, 여러 선생들 앞에서 큰 소리로 꾸중을 하면 용서를 받을 학생이고, 퇴학을 시키기로 한 학생은 따로 사택으로 불러 조용히 타일러서 누구도 모르게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예사였기 때문 이다.
와따나베 선생이 나의 작문 내용을 전 학생들과 교장을 포함한 교직원에게 소개했기 때문에, 나는 3일간 고민과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결국 내가 쓴 글 한 편으로 나의 운명을 개척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걱정했었다.
와따나베 선생의 솔직하고도 건설적인 비평으로 내 작문은 인정을 받은 것이다. 나의 작문을 학교 전체에 공개한 와따나베 선생은 교장 선생이 어떻 게 나오는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교장 선생은 나의 비판을 선의로 받아들였고, 나의 앞길을 개척해 주는 데 앞장을 섰던 것이다. 내가 어린 나이에 쓴 글이니 뭐 그리 대단한 글이었을까마는 적어도 내가 품고 있던 생각은 소박하게나마 정확하게 표시한 듯하다.
농업 학교 기숙사에는 150명 가량의 학생이 유숙하고 있었는데, 신문, 잡지를 읽는 학생은 나 이외에 별로 없는 듯했다. 나는 어린 소년 시절에도 서울에서 발간되는 경성일보와 여러 잡지를 즐겨 읽었다. 그 독서 덕분에 다소나마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은 과연 옳은 말이다. 독서는 나의 인격 형성 에 큰 영향을 주었고,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준 인생의 뿌리 구실 을 해 주었다.
2025년 8월 23일 공병우 자서전에서 읽었던 글입니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럼프 "혹시 그 정신이상자?"… 李대통령 '특검' 얘기에 빵터진 이유 (3) 2025.08.26 공병우박사의 종교관과 인생관 (7) 2025.08.24 "물리면 위험" 야생 너구리와 전쟁 (0) 2025.08.23 "한국 사랑한 안동의 사위, 南北을 시원하게 달렸죠" (8) 2025.08.23 '비주류 세계관' 대통령, 국제 무대에 서다 (2) 202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