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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서시를 읽으며낙서장 2025. 12. 11. 09:39
부끄럼 없이, 올곧게, 인왕산에서 배운 삶의 태도
어제 인왕산을 힘겹게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묵직하게 느껴졌지만, 정상에 올라섰을 때 비로소 깊은 성취감이 밀려왔다. 인생 8학년의 건강! 감사했다.
그 기분을 안고 정상에서 윤동주 문학관을 향해 내려가던 중, 그의 「서시」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천천히 시를 읽어 내려갔다.
윤동주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AI에게 이 시의 의미를 물었을 때, 그 핵심을 이렇게 요약해 주었다.
정직한 양심, 작은 흔들림에도 민감한 순수한 마음, 모든 존재를 향한 사랑, 그리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으려는 결의. 정의와 도덕이 흔들리는 시대에도 윤동주의 「서시」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단호하면서도 따뜻하게 답하기 때문일 것이다.
“썩은 판에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말
며칠 전, 한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썩은 판에는 좋은 글을 쓸 수 없지.” 짧은 말이었지만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이미 마음이 흐리고 삶의 기반이 삐뚤어진 사람이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하고 번지르르한 글을 써도, 그 속에는 결국 진심과 힘이 담기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요즘 세상사를 바라보면 이 말이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겉으로는 고결한 척하며, 마치 자신의 양심은 흠 없는 것처럼 말하는 지도자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들의 목소리와 말이 아무리 크다 한들, “썩은 판” 위에 쓴 글이라면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마태복음 7장 17–18절 말씀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결국 ‘판’이 중요하고, ‘나무’가 중요하다.
겉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며도, 속이 썩어 있다면 맺히는 것은 결국 부끄러운 열매뿐이다. 반대로 내면이 바르고 맑다면, 비록 세상 눈에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 삶에서 나오는 열매는 자연히 아름답다.
윤동주가 말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산다는 삶의 태도는
결국 우리 안의 나무—양심과 영혼의 뿌리—를 건강하게 지키라는 초대가 아닐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길
인왕산을 내려오며 나는 다시 생각했다. 우리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바람에도 양심이 흔들릴 만큼 섬세함을 지키는 것, 약한 존재도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 무엇보다 내게 주어진 길을 정직하게 걸어가는 것.
아름다운 세상은 큰 목소리로 외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윤동주가 말한 것처럼 양심을 지키는 작은 삶,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나무로 살아가는 지속적인 선택에서 시작된다.
썩은 판을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 내 마음의 판을 곧게 펴기 위해 조용히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오늘 밤에도, 우리 마음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은은한 빛이 깃들지 않을까싶다.
2025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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