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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리카에 34년 살아보니,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게 됐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2. 3. 09:02

    빈곤하고 부정부패 심한 나라에서 의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국민을 먹여살릴 공장과 국가 시스템 바로세울 리더십이 더 급해

     
    일러스트=이철원
     

    아프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지 어느덧 34년이 흘렀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현지인들부터 미국·영국·독일·러시아 등에서 온 외국인들, 그리고 이역만리에서 분투하는 한국인들까지. 아프리카라는 낯선 땅에서 내 인생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준 인연들을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타국에서 지내는 이들에게 가장 직접적 영향을 주는 사람은 대개 외교관이다. 전문의라고 해서 모두 실력이 같지 않듯, 내가 겪어본 외교관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현지인과 교민을 돕기 위해 밤낮없이 발로 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권위라는 외피를 두르고 왕처럼 군림하려는 이도 없지 않았다. 내 인생에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만남은 30여 년 전,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서 나를 맞이해준 한 외교관이었다.

     

    정부파견의로 우간다에 첫 부임하던 토요일이었다. 휴일임에도 그는 공항에 나와서 귀빈실로 입국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시 우간다는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 거리를 걷는 것조차 위험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내가 개인 차량을 마련할 때까지 일터인 ‘물라고 병원’으로 날마다 나를 태워 주었다. 타향에서 만난 친형님 같은 따뜻함. 그런데 그가 건넨 첫마디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닥터 유, 이 먼 곳까지 봉사하러 온 마음은 가상하지만, 고생하지 말고 빨리 짐 싸서 돌아가시오. 이 나라에 정말 필요한 건 의사 한 명이 아니라, 공장을 지어줄 사업가요.”

     

    당시엔 당혹스러웠지만, 현지를 치열하게 겪어본 선배의 깊은 애정과 고뇌가 담겨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몇 해를 보내며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절감했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한 곳은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파견된 정부 병원들이었다. 가난한 나라의 국립병원은 참혹했다. 빈국일수록 감염병 수치는 높고 환자는 구름처럼 몰려들지만, 경제력이 없으니 진단도 치료도 불가능했다. 확진을 위해선 방사선 검사와 임상병리 검사가 필수적인데, 여기에는 자본이 투여돼야 한다. 치료도 마찬가지다. 항생제, 인슐린, 수액제 하나하나가 모두 ‘돈’이다.

    1992년부터 아프리카에서 34년간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유덕종 /유덕종 제공
     

    1990년대 초반, 나는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보며 절망했다. 검사도 치료도 안 되는 이곳에 그들은 왜 오는 것일까. 죽을 자리를 찾아오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혈압계조차 귀하고 수액이 없어 환자를 잃어야 했을 때, 의사로서 처절한 무력감을 느꼈다. 능력이 된다면 당장 항생제 공장, 수액 공장이라도 세우고 싶었다. “이 나라에 정말 필요한 건 의사가 아니라 공장을 지어줄 사업가”라던 외교관의 일갈이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픈 이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며 최선을 다해 돕는 것뿐이었다.

     

    행복의 기본 전제는 건강이다. 그 건강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토양은 경제력이다. 제대로 된 영양 섭취와 위생적인 환경 없이는 병을 막을 수도, 치료할 수도 없다. 과거 한국을 짓누르던 결핵이 사라진 결정적 계기가 의술 발전보다 경제 성장에 있었다는 점에 대다수 전문가가 동의한다. 시간이 흘러 이곳도 경제 형편이 나아지며 의료 환경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는 축복받은 땅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한국처럼 혹독한 겨울도 없다. 그럼에도 왜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부정부패가 이유로 지목된다. 개인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부패가 국가 시스템을 갉아먹는 것이다. 이를 돌파하려면 강력하고 청렴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먼 타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내가 가장 존경하게 된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나랏님도 구제 못 한다”던 가난으로부터 국가를 구해낸 그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고 나 같은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할 여력조차 없었을 것이다. 지도자라고 다 같은 지도자가 아니다. 첫째, 자신보다 국가를 더 사랑하는 사람. 둘째, 국가 발전의 확고한 비전을 소유한 사람. 셋째, 사리사욕을 버리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기용할 줄 아는 사람. 그가 진짜 지도자다.

    1968년 12월 경부고속도로 1단계 구간인 경수고속도로와 경인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샴페인을 고속도로 바닥에 뿌리고 있다. /국가기록원
     

    일부 부패한 정치인들은 내실보다 보여주기식 행정에 집착한다. 34년 전 공항에서 만난 외교관의 조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의사가 살리는 생명도 소중하지만, 국가 시스템을 바로 세워 수만 명을 먹여 살릴 ‘공장’과 이를 가능하게 할 ‘리더십’이 더 급하다. 아프리카 대륙에도 가난의 사슬을 끊어낼 영웅들이 탄생하기를 소망한다.

    2026년 2월 3일 조선일보 유덕종 의사 

     
     

    ☞의사 유덕종(66)

    1992년 ‘정부 파견 의사’ 1기로 선발돼 우간다로 갔다. 계약을 연장하며 아프리카에 남았고 지금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길러낸 의사만 4000명. 아산상, JW성천상 등을 받았다. 현지에선 아디스아바바를 줄여 아디스라 부르는데 ‘아디스 레터’는 그곳에서 띄우는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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