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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판에 도덕성이 실종된 나라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3. 13. 06:39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왼쪽)과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한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2026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해야 하는 직업은 무엇일까. 공무원? 정치인? 법조인? 정답은 연예인이다. 요샌 성직자보다 하기 어려운 직업이 배우나 예능인이라는 농담 같은 얘기가 들린다.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은 한 영국인 친구는 “한국에선 성직자 수준이어야 연예인을 할 수 있는 거냐”고 했다.

     

    최근 연예인을 향한 잣대는 수십 년 전의 소년범 전력이나 이른바 ‘주사 이모’에게서 병원이 아닌 곳에서 수액을 맞았다는 의혹 같은 사법의 영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끄집어낸 사생활까지도 검증의 대상이 된다. 작년 한 예능인은 조폭과 알고 지내며 선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일반인과 온라인에서 음담패설을 주고받았다거나,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양다리’를 걸친 것으로 의심받은 연예인들은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다. 이런 문제까지 들춰내 밥그릇을 빼앗을 일인가 싶을 때도 있다.

     

    연예인이 TV에서 사라져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은 정치인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해진다. 차명 계좌로 주식 투자를 했다거나 술집에서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있는 국회의원들에게는 ‘배지를 떼라’는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전당대회 과정에서 돈봉투를 살포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치인, 불법 정치자금 수억 원을 받고 보석으로 풀려난 이들이 “조국 대표도 2심에서 유죄를 받고 당선되지 않았느냐”며 배지를 달겠다고 나선다. ‘깨끗한 정치인’을 표방하며 십수 년 정치를 해 온 한 국회의원은 “더 이상 국민이 정치인들에게 도덕성이나 청렴을 요구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연예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탓도 있겠지만, 동시에 정치인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낮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수년간 ‘덕질’하던 가수의 문제 되는 행실이 드러나자 안티로 돌변한 한 지인은 “내가 콘서트에 가기 위해 쓴 돈이 얼마인데 그에게 도덕적 무결성 정도는 요구해도 되는 것 아니냐”면서도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원래 비도덕적이니 관심 없다”고 했다. 정치인의 비위 문제가 단순히 ‘휴먼 에러’라거나 ‘대법원 판결까지 보고 결정해야 한다’며 문제를 축소하고 시간을 끌어주는 정치권의 동지 의식도 이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연예인을 향한 과도한 도덕적 검증이 이뤄지는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인의 도덕성에 무뎌지는 분위기도 개운치는 않다. 그런 정치인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법과 정책을 만들고 사회의 기준과 상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황당한 법안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지고 있지만 국민은 더 이상 이런 일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정치의 윤리가 무너질 때 사회의 정의도 함께 흔들린다. 그런 세상이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

     

    2026년 3월 13일 조선일보 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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