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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말도 밤말도 AI가 듣는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3. 14. 07:52
    테이블 위의 휴대전화들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고 온 다음 날. 한 친구가 아이를 비평준화 고교에 보낼까 싶어 세 학교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는데, 이튿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의 휴대전화 유튜브에 딱 그 세 학교를 소개하는 영상이 추천되어 올라왔다. 검색한 적도 없고 통화하면서 말한 적도 없는데, 테이블에 가만히 놓여 있던 폰이 알아서 알고리즘을 작동시킨 거다. 너희 어제 이런 이야기 하던데, 이 정보 궁금하지? 널 위해 준비했어, 어서 클릭해.

     

    다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요 요망한 것이, 우리 이야기를 몰래 듣고 있었던 거야? 그날 이후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보며 종종 소름이 끼친다. 혼잣말도 조심하게 된다. 나만 아는 비밀이 어디론가 술술 새어나가고 있을 것만 같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지만 이제는 낮말도 밤말도 AI가 듣고 있다. 이 녀석, 내 편인 줄 알았는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스파이였다니.

     

    요즘처럼 일상을 누군가에게 지배받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손바닥만 한 검은 물체가 세상을 촘촘히 엮어 놀랍도록 편리해진 한편 스스로 들어갈 감옥을 만들고 있었나? 스티브 잡스가 처음 이 물건을 들고나온 게 2007년이다. 불과 20년 사이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이 기기를 붙들고 살게 되었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먹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돈은 어떻게 흐르는지, 아이를 키우고, 병원에 가고, 취미며 관심사까지 다 알고 있으니 이제 우리 의지마저 좌지우지할 날이 머지않았다. 인간이 호기심에 한 입 베어먹은 사과는 상상도 못 한 세계로의 문을 열고 말았다.

     

    조금은 거리를 둘 필요를 느낀다. 공책을 펴고, 연필을 깎고,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눈에 보이는 꽃과 고양이와 아기를 그리고, 만지고, 냄새 맡으며, 살결에 스치는 바람과 햇살과 별빛에 더 다가가 살아야겠다고 느낀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으므로.

    206년3 월 14일  조선일보 정수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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