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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향에게 몽룡 있듯, 제 '일편단심'은 한국이죠"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5. 12. 06:11
    외국인 최초로 미스춘향 '미'에 선발된 우크라이나 출신 리나.

     

    6일 전북 남원. 외국인 최초로 미스춘향 '미'에 선발된 우크라이나 출신 리나. /김영근 기자
     

    “외국인이 춘향이라니 낯설죠? 저와 춘향의 공통점은 ‘일편단심’입니다. 춘향에게 몽룡이 있다면 저에겐 한국이 있어요!”

    외국인 최초로 ‘미스춘향’으로 뽑힌 안젤리나 게라시멘코(23·우크라이나)씨는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지난 6일 춘향의 본고장 전북 남원에서 만난 그는 한복 차림이었고 금발에 키는 172.9㎝라고 했다. 올려다보며 수상 소감을 묻자 “우크라이나 출신 유학생이 미스춘향 미(美)로 호명되리라곤 기대하지 않아 저도 깜짝 놀랐다”며 “러시아 침공에 맞서 하르키우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아버지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고 했다. 

    6일 전북 남원. 외국인 최초로 미스춘향 '미'에 선발된 우크라이나 출신 리나. /김영근 기자

     

    게라시멘코는 2022년 교환학생으로 6개월간 한국을 경험했고 지금은 경북대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한복 모델로 일하며 주경야독하다 디자이너가 “미스춘향에 도전해 보자”고 권했다고 한다. 전통 미인을 선발하겠다는 취지로 1950년에 시작된 미스춘향 대회는 2024년 참가자의 국적 제한을 풀었고, ‘진선미’ 중에 외국인 춘향이 선정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춘향과 외모가 얼마나 닮았는지가 심사 기준이었다면 저는 탈락했을 거예요. 하지만 판소리 ‘춘향가’는 사랑과 절개, 정의에 대한 작품이잖아요. 그런 마음을 세상에 전하고 싶습니다. 해외에서 춘향이 더 유명해지는 데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그는 중학생 시절 “발음이 예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토픽(TOPIK·한국어능력시험) 최고 난도인 6급을 땄고, 한국어교원자격증도 갖고 있다. 석사 과정은 대한민국 정부 초청 외국인 장학생 지원을 받았다. 춘향이 겪은 시련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을 향한 구애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부모님 직업 때문에 에스토니아에서 고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당시 그곳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현지 세종학당에 개설되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강좌를 거의 다 수강했습니다. 집에서는 유튜브로 한국 콘텐츠를 봤고요.” 한국 유학의 꿈이 부모에게 짐이 될까 봐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그는 “아시아 식료품점에서 하루 12시간까지 일했고, 한식당에서 서빙하며 한국 요리 레시피를 익혔다”며 “가장 자신 있는 메뉴는 미역국”이라고 했다.

     

    부모는 한국에서 미인 대회에 출전한다는 딸을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봐” 말렸다고 한다. 수상 이후엔 “역시 내 딸”이라며 입이 귀에 걸렸다고. 그는 “특히 전쟁 발발 직후 참전해 4년 넘게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고 있는 아버지를 웃게 해드려 뿌듯하다”고 말했다. “2022년 2월, 제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오자마자 전쟁이 터졌어요. 그토록 그리던 곳에 왔는데 매일 울었습니다. 고국이 짓밟히는데 외국에서 혼자 꿈만 꾸고 있다는 죄책감마저 들었어요.”

     

    그는 이제 고국 사람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대구 파티마 병원에서 우크라이나 환자에게 통역 봉사를 하고 있다. 지역 도서관에서 한국 어린이들에게 영어로 동화를 읽어주기도 한다. “우크라이나가 ‘영혼이 강한 나라’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한국에 대한 막연한 애정을 넘어 귀화 시험도 치르고 이곳에서 미래를 꾸려나가고 싶습니다. 한복 모델이나 한국어 강사·통역가 말고도 새로운 꿈에 도전할 거예요. 춘향처럼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2026년 5월 12일 조선일보 김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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