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우유 늦게 주면 '아동학대'? 선 넘은 민원 공화국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5. 13. 06:47

    나라 곳곳이 악성 민원으로 신음 학교는 '내 새끼 지상주의'로 엉망  "지각하지 말라" 하니 "정서학대"  '맛 좀 봐라'식 민원과 전쟁

    벌여야

     

      

     

    개그우먼 이수지가 민원에 시달리는 유치원 교사를 패러디한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아이 MBTI가 내향형이니 비슷한 아이들과 반을 묶어 달라” “유칼립투스 성분 들어간 물티슈만 써 달라” 같은 도를 넘은 요구가 담겼다. 유치원 교사들이 “내 얘기인 줄 알았다”며 울면서 본 영상이라고 한다. 그나마 나온 사례들은 ‘순한 맛’이라고 하니 실제 현장은 어떤지 짐작할 만하다.

     

    대한민국은 민원 공화국이다. 지난해 ‘국민신문고’ 등 정부 부처에 접수된 민원 숫자만 1300만건이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공식적으로 민원을 제기한 셈이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공단에 접수된 지난해 민원은 5456만건이다. 건강보험료 문의하거나 줄이려고 국민 한 명당 한 건 이상의 민원을 넣은 것이다. 그나마 다소 줄어든 수치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민원은 공공기관과 소통하는 시민의 권리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행정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식을 벗어난 민원이 늘면서 여기저기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촉발한 소풍·수학여행 논란도 학교 민원 때문에 생긴 문제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요즘 소풍도 수학여행도 잘 안 간다고 하는데 안전 사고, 관리 책임 걱정 때문일 것”이라며 “하지만 구더기 생길까 장독을 없애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교사들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체험학습 인솔 교사가 과실치사 혐의로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아 교직을 잃을 뻔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학부모 민원이 그야말로 쏟아진다고 한다. 단순 항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교를 상대로 법적 대응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박소영 교사노조 정책처장은 한 프로에서 “현장체험학습은 업무, 민원, 고소의 총집합”이라며 “구더기 무서워 장독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현장은 이미 장독 안에 구더기가 너무 많은 것”이라고 했다. 

     

    소풍·수학여행만이 아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선 운동회 계주 선수로 뽑히지 못한 학생의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항의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으면 교사들이 운동회를 하고 싶겠는가. 일부 학부모가 ‘내 새끼 지상주의’에 빠져 민원을 압박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문제는 정당한 교육까지도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부당한 아동학대 신고에서 살아남기’는 억울한 신고로 직위 해제 위기까지 겪은 25년 차 현직 교사의 기록이다. 이 책 첫 문장은 “우유를 늦게 줘서 아동학대로 신고됐다고?”다. 정식 수사로 이어진 실제 사건이라고 한다. 이 책엔 친구를 때리고 욕하는 학생을 교실에 남겨 지도했다고 감금, 잠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고 폭행, “지각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정서학대 혐의로 신고당한 사례가 담겨 있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신고를 당해 경찰서 다니는 교사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학교에 악성 민원을 넣고 고소·고발을 일삼는 사람은 소수겠지만, 그들 때문에 다수가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교총은 모호한 정서학대 기준을 명확히 하는 아동복지법 개정, 교육활동 관련 소송 국가책임제 도입, 악성 민원에 대한 교육감 맞고소 의무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은 “민원을 남발하는 사람에겐 비용 물리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정부가 ‘맛 좀 봐라’식 악성 민원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피해가 가장 두드러지는 학교에서부터 강력 대응했으면 한다.

    2026년 5월 13일 조선일보 김민철 기자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