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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 들어올 때 나눠 마시는 나라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5. 26. 05:39

    AI發 반도체 '대박' 나눠먹기  노조는 서둘러 이익 챙기고   100조 적자 정부도 일단 '축포'   다 뿌리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지난 5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에서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부문 피플팀장(왼쪽부터)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한 후 손을 맞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 올해 기준 약 31조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뉴스1
     

    지난주 미국 자본시장에선 빅 이벤트가 잇달아 열렸다. 시가총액 1위인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실적과 사상 최대 규모 상장을 앞둔 민간 우주 회사 스페이스X의 기업공개 보고서가 발표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피지컬AI 등 100조달러 규모의 잠재적 AI 시장을 위해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했다. 일론 머스크가 세운 스페이스X는 야심이 더 크다. 상장으로 조달할 약 750억달러를 ‘우주 AI 생태계’에 최우선 투입한다고 했다. 미래 AI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錢)의 전쟁’은 치열함을 넘어 살벌해 보였다.

     

    같은 시간 한국 풍경은 달랐다. AI 반도체 수출로 올해 실적 ‘대박’이 예상되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막대한 성과급을 내놓으라며 파업을 협박했고, 결국 받아냈다. 엔비디아·스페이스X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 나가려고 전력투구하는 모습이었다면 삼성전자 직원들은 그 물을 일단 나눠 마시자고 합의를 봤다. 성과급 예상 총액 약 31조원은 엔비디아가 지난해 연구·개발과 기업 인수에 쓴 돈의 1.5배 수준이다.

     

    올해 코스피는 86% 올랐다. 상승률이 미국 S&P500 지수의 10배에 달한다. 다만 글로벌 반도체 우량주를 모아 놓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올해 상승률(70%)과 비교하면 격차는 확 좁혀진다. 코스피 성과는 한국 혼자 잘해서라기보다, 반도체 호황이 준 선물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는 뜻이다.

     

    반도체 덕분에 정부도 ‘횡재’가 예고돼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낼 법인세에 힘입어 세금이 최소 25조원 더 걷힐 전망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온 국가 부채 비율을 끌어내리는 데 이 돈을 투입해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청와대 생각은 다르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이 초과 세수를 ‘구조적 국민 배당금’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대통령도 거들었다.

     

    삼성전자는 노조 압박에 못 이겨 더 벌어들인 돈의 상당분을 직원들에게 분배하기로 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는 실제 세금이 다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꽤 큰돈을 국민에게 나눠 주었다. 지난 3월 26조원짜리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며 ‘올해 걷힐 초과 세수’를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추경의 상당액은 소비 쿠폰과 유가 상한제 보조금 등으로 뿌려졌다. 국가 부채 상환에도 쓴다고 생색은 냈지만 전체 나라빚 1414조원의 0.07%인 1조원만 배정됐다.

     

    ‘초과 세수’라 하니 정부가 흑자를 내는 듯 보인다. 착시다. 초과 세수는 정부 예상치보다 세금이 더 들어온다는 얘기일 뿐이다. 정부는 애초에 올해 100조원 정도 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를 감당하는 재정 계획을 짰기 때문에 25조가 아니라 50조를 더 걷어도 나라 살림살이는 무조건 구멍이 나게 돼 있다. 대통령은 “긴축 노래를 부르는 이상한 분들”이라고 했지만, 한국 재정은 긴축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 배당’을 나눠 가질 방법을 궁리할 처지는 더더욱 아니다.

    관리재정수지 기준, 2026년은 지난해 추계치. /기획예산처·국가데이터처

    젠슨 황은 지난해 말 인터뷰에서 “나는 회사가 30일 후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함께 하루하루를 시작한다. 취약하고, 불확실하고, 불안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했다. 돌변하는 기술 산업의 속성 때문에 횡재가 횡액으로 언제 어떻게 뒤집힐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김용범 실장은 ‘국민 배당금’을 거론하며 AI 시대에 한국의 위상이 ‘차원이 다른 나라’로 바뀔 수 있다고 낙관했다. 3년 연속 세수 결손에 허덕이다 간만에 초과 세수를 얻게 된 나라,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번듯한 AI 하나 없는 나라가 이토록 자신감에 취해도 될까. 반도체 ‘원청 기업’ 사장 젠슨 황도 불안하다는데 말이다.

    2026년 5월 26일 조선일보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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