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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자호란 치욕도 '내란 누명' 軍 숙청이 불렀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5. 27. 08:47

    '이괄의 난' 소문만으로 제거  무고한 장수도 대거 희생돼  北 도발로 알았다가 강제 전역  누명 벗으려 억대 소송비 고통

     
    영화 최종병기 활'의 주인공인 조선 최고의 신궁 남이(박해일). 역적의 아들이란 죄로 사회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던 그에게 병자호란은 삶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는 아직 만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구는 200만~30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반면 조선은 1000만명을 넘었다. 압록강을 건넌 청군은 5만명을 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에는 10만명이 넘는 군대가 있었다. 그런데도 전쟁 6일 만에 인조가 남한산성에 갇혔다. 임진왜란 때와 달리 변변한 전투도 없이 ‘삼전도 굴욕’을 당했다.

     

    당시 조선은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한 안보 전문가는 ‘이괄의 난’ 여파를 꼽았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 반정의 공신인 도원수 이괄이 북방 주력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한때 서울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진압됐다. 인조와 집권 세력은 이괄과 조금이라도 왕래가 있던 장수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그 과정에서 반란과 무관한 장수들도 대거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반란을 진압한 장군들까지 다시 일을 벌일까 두려워 한직으로 내몰았다. 반란의 싹을 자른다며 훈련만 하면 정보원을 보내 감시했다.

     

    정묘호란 때 남이흥 장군이 평안도 안주에서 후금(훗날 청나라) 군대와 맞섰다. 이괄의 난을 막은 1등 공신이지만 중과부적으로 패했다. 그러자 ‘내가 지휘관이 돼 진 치는 훈련 한 번 못하고 죽는 것이 애통하다’는 유언을 남기고 자폭했다고 한다. 9년 뒤 병자호란이 터졌다.

     

    이재명 정부가 ‘계엄 가담’ 혐의로 수사 의뢰한 공무원이 110명인데 108명이 군인이다. 지금까지 징계받은 군인 45명 중 22명이 파면됐다. 파면이면 군인 연금도 반 토막이 난다. 지금 이들 대부분은 변호사 비용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행정 소송 등에 파면은 2억원, 중징계는 4000만~5000만원, 경징계는 20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평생 박봉에 1~2년마다 이삿짐을 싸야 하는 군인에게 이런 돈은 큰 부담이다. 전셋집을 빼서 변호사비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소송에 나선 군인은 “평생 명예를 먹고살았는데 ‘내란범’ 꼬리표를 달고 살 수는 없다”고 했다.

     

    불법 계엄에 적극 가담한 사람은 처벌받아야 한다. 이번 계엄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 극소수가 주도한 것이고 불법을 알고도 뛰어든 장성들은 전부 재판을 받고 있다. 징계받은 군인 상당수는 무슨 명령인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몰랐다. ‘계엄 버스’가 그랬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했는데도 군 간부 34명을 태운 버스가 계룡대를 떠난 것은 ‘2차 계엄 모의’라고 여당 등은 주장한다. 버스에 탔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전역 대상이 됐다.

     

    당시 A 간부는 저녁 음주로 술 냄새가 많이 나자 ‘그냥 집에 가라’는 상관 지시 덕에 전역 대상에서 빠졌다. 반면 B 간부는 술 먹고 자는데 부인이 ‘긴급 복귀’ 전화를 대신 받았다. 남편을 태우고 부대로 달려갔다. 부인은 “국가 긴급 상황인 줄 알고 남편을 깨운 것이 평생의 한이 될 줄은 몰랐다”며 오열했다. C 간부는 당직을 바꿔줬다가 버스 탑승 대상이 됐다고 한다. 이들이 ‘내란범’인가.

     

    계엄 당시 합참 지휘부는 다른 부대 이동을 통제해 인명 피해를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기존 수사에서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고, 현 정부 들어 해군 총장으로 승진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2차 특검은 당시 지휘부 수사에 나섰고 국방부는 해군 총장을 돌연 교체하는 등 기존 합참 출신들을 대폭 물갈이했다. 합참은 연합 작전을 짜고 부대를 지휘하는 중추 기관이다. 구성원의 능력과 경험이 어떤 군 조직보다 중요하다.

     

    지금 국제 정세는 명·청 교체기만큼 혼란하다. 유능한 군인이 정치적 이유로 줄줄이 화를 입는다면 국가적 손실이다. 훈련을 제대로 안 한 군대가 나라를 지켰다는 역사 기록은 본 적이 없다. 

     

    2026년 5월 27일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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