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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박정희가 그립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18. 11. 7. 05:44


              아! 박정희가 그립다. (성창경 KBS공영노조위원장)

     

    “집안이 어려워지면 현모양처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려워지면 충신이 생각난다. 라는 말이 요즘같이 절실해지는 때가 없다. 대한민국이 바람 앞의 춧불 같은 상황이다. 건국 후 70년 동안 우리가 놀라고 세계가 감동한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이 어느새 빨갛게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 한복판에 북한 노동당 정권의 수괴 (首魁)인 김정은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고, 김정은이 대한민국 우표에 등장하는가 하면연일 TV뉴스는 김정은을 매력적(趣力的)이며, 겸손하고, 한반도의 평회를 위해 큰 결단을 하는 인물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가 실제로 폐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아니 설령 폐기된다 해도 북한을 칭송하고, 좌파천국이 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아직도 한국전쟁의 상흔(傷痕)이 그대로 남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북한 노동당정권의 세습체제에 의해 희생된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도 말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남한이 마치 북한에게 흡수될 것 같은 이 불길한 기운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다.

     

    게다가 휴전선 부근의 상공에 우리 비행기도 뜰 수 없고, 서해 해상에는 군사 훈련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군 시설도 대거 철거하고 군인 수도 대폭 줄인단다. 안보가 해체되는 현실을 목도하는 국민들은 정말 불안해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카톡이나, 유튜브에 매달려 새로운 소식이 없나, 어떻게 되어가나 하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이미 제도권 언론들은 문재인 정권을 찬양하고 보수에 대해 적대적인 기사를 많이 보도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심지어 김정은이 친절하고 상냥하며 태도가 달라졌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상햄도 국민들이 저항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되묻는다. “인물이 없다. 지도자가 없다”라며 찾는다.

     

    도대체 누구를 기다린단 말인가? 바로 박정희! 박정희 대통령 같은 인물을 찾는다. 그 분이 너무나도 절실하다. 폐허(廢墟)에서 신화를 이끈 인물, 적의 위협에서도 번영의 기적을 일군 인물, 무엇보다 분열의 패배주의에서 ‘중단 없는 전진’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어 낸 인물이다.

    박정희 같은 인물을 다시 구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뻔뻔함일까? 탄신 1어주년을 맞아서 기념우표 한장 만들지 못하고 광화문 사거리에 동상 하나 세우지 못하면서, 나라가 풍전등화(風前燈火) 위기에 처하자 그 분을 다시 찾는다는 것이 마치 예수가 부활한 뒤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배교자들의 수치보다 더한 것 같다.

     

    박정희는 절망의 때에 왔다

    박정희는 절망의 바닥에서 다시 시작한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의 암흑시절에 태어났던 그는 이른바 현상타개를 꿈꾼다. 나폴레옹과 이순신을 존경했던 그는 교사 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군인의 길에 도전한다.

    일본 군국주의 시절 모든 힘은 군인, 군에서 나오는 것을 본 그는 만주군관학교에서 다시 일본 육군사관학교 조선경비사관학교를 거치면서 군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군인의 길을 누가 지도해 주거나 후원한 것이 아니었다. 절망에 찌든 식민지 청년이 선택한 것이었다.


       4·19 혁명의 혼란과 장면 정부의 무능, 사회혼란과 부정부패, 가난과 정치적 후진이 뒤섞인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는 혁명의 길을 걸었다. 혁명가 박정희! 그의 발자취는 역사(歷史)가 되었고,기적이 되었다. 국민이 놀랐고,세계가 감탄했다.


        코르시카의 작은 섬 소년 나폴레옹이 혁명의 혼란 속에 있던 프랑스를 전 유럽을 지배하는 막강한 제국(帝國)으로 만든 것처럼 그도 대한민국을 세계 속의 코리아로 만들었다.

         5,000년 동안 단 한 번도 가난을 벗어던지지 못했고, 자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없어 중국에 조공(朝貢)을 바쳤던 나라를 으뜸 국가로 만들어 오늘날 자랑스러운 한국이 되게 한 분이다.

     

    우리는 많은 권력자들이 자신이 바라던 정상에 올라간 뒤의 나태(懶怠)를 보아왔다.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 그것을 얻고 난 뒤부터 목적의식이 없이 권력에 탐닉하다가 몰락하는 사례를 수없이 많이 목격했다.

    박정희는 혁명에 의해 권력을 얻었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단이었다. 그는 그 권력으로 나라를 새롭게 만들었다. 부국강병 (富國彈兵)이것이 박정희가 꿈꾼 사명이었다. 그는 이 사명을 위해 밤잠을 설쳤고, 노래도 지었고, 눈물도 흘렸다.

     

    그는 연설 중 부인이 적의 흉탄에 스러졌을 때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연설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절망에서 시작했지만 잘살아보세 라는 사명으로 달렸다.

     

    지금은 좌파 강점기다. 좌파 정권의 전횡, 독주와 독선, 언론장악과 야당의 지리멸렬, 지식인들의 비겁과 눈치 보기 등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걱정하고 한탄한다. 이 나라가 정명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다시 박정희가 필요하다. 박정희정신이 간절해진다. 이 절망의 한 구석에서 박정희 같은 지도자가 말을 타고 나타날 것만 같다. 아니 그렇게 되길 많은 국민들이 기다리고 있다. 공산주의자를 이 땅에서 몰아내고, 한손에는 반공(反共) 자유민주주의를, 다른 한손에는 부국강병의 깃발을 높이든 초인(超人)같은 지도자를 기다리는 것이다.

     

    절망의 시대였던 1961년 박정희가 예상하지 않은 곳, 기대하지 않았던 때에 불현 듯 나타났듯이, 하늘도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박정희 같은 인물을 다시 보내주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이 절망의 시대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박정희를 더욱 그리워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싸웠다.

    오늘날 우파에는 투사(關士)가 없다고 한다. 좌파 정권이 주사파를 앞세워 친북 종북 정책들을 마구잡이로 펼쳐나가면서 우파 대통령을 두 명이나 구속하고, 숱한 애국인사들을 적폐라는 이름으로 수사하고 구속해도 가만히 구경만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안타까워하는 국민들이 주말마다 태극기를 들고 나가 외쳐보지만 힘은 한곳으로 모이지 않고, 지도자는 나타나않는다.

     

    박정희가 그리운 이유는 그가 이런 상황에서 싸웠고, 이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앞날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에 대해 온 몸으로 싸웠던 지도자였다. 가난과 싸웠고 습관과 싸웠고전통과 싸웠다. 성리학(性學)적 명분(名分)과 싸웠으며 여론(與論)과 싸웠다. 그는 분파(分派)주의자들과 싸웠고 공산주의자들과 싸웠다.

     

    그는 진정으로 싸울 줄 아는 지도자였고, 대한민국 군대를 막강 60만으로 육성했고지주 국방을 만들었고마침내 자유대한을 부자 나라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야 가능했던 것들이다.

     

    우리가 월남에 파병(派兵)함으로써 공산진영과 싸우는 나라 세계 속에 반공국가의 소임을 다하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로 인해 한국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수 백 번 외침을 받았다는 것을 마치 자랑처럼 여기는 나라가 아니었나.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에 조공(朝貢)을 해야만 종묘사직(宗廟社稷)을 유지할 수 있었고, 중국이 군사와 외교를 대신 했던 그야말로 외세(外勢)의존적인 나라 아니었던가. 그런 나라에 박정희는 자주국방을 가져왔던 것이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전쟁에 대비하지 않고 평화만을 찾다가 사라졌던가? 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박정희 시대에 유일하게 중국을 추월하는 국부(國富)를 만들었고변방(邊方) 국가에서 독립된 중심 국가를 이룩하않았던가.

     

    그는 부국강병을 위해서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그 어떤 세력과도 싸웠다. 북한 김일성 집단과도 싸웠고, 국내 반대 세력과도 싸웠다. 야당과도 싸웠고 학생과도 싸웠다. 그는 투쟁을 피하지 않았다. 돌아가지 않았다. 숨지않았다. 침묵하지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외쳤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 이것이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엔진이었다. 비결이었다. 지도자는 욕을 먹을 각오를 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할 정신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아니 처음부터 지도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는 권력을 누리려고 군력을 잡은 것이 아니라, 욕먹기 위해 권좌에 앉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범부(凡夫)와 다른 선각자(先覺者)들의 사명이다.

     

    그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와 비판도 많지만 그러나 생각해보라. 박정희가 18년 동안 권좌(權座)에 있않았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 부흥이 이뤄졌을까. 만약 박정희 대신 다른 정권이 수차례 바뀌었다면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공장과 공단 등은 짓다가 폐물(廢物)이 되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심하게 말해서 경부고속도로도 중간에 공사가 중단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정권 교체에 따라 반대 진영의 정책을 부인하는 정권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후임 정권이 전임 정권의 정책을 깡그리 지우고 나라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상황이면 충분히 그러했을 수 있다. 박정희 시대가 출발할 시점인 1961년도의 필리핀이 우리보다 10배 정도 국민소득이 높았지만, 잦은 정변 등으로 그 나라가 지금 어떤 처지인가를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세계사에 그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박정희는 ‘독재자’로 욕을 먹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잘살게 된 것 아닌가. 박정희가 뿌린 씨앗에서 이렇게 풍성한 열매를 먹으면서, 그 가운데 일부는 그 뿌리를 욕하는 자들이 있다. 특히 강남좌파라 불리는 자들이 그렇지 않나. 자기모순이다.

     

    아마도 지금 박정희를 가장 많이 욕하는 이른바 좌파성향의 지식인 정치인, 그들은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지금 어느 시골에서 김을 매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박정희 개인 것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의 일생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작업은 현대 사학가들이 활발히 해왔겠지만, 오히려 정치학자 들이 더 많이 평가해오고 있다. 박정희에 대한 어떤 평가를 하는 지에 따라 평가자의 정체성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박정희는 현대사에 획기적인 선을 그었던 인물이고 그 노선이 분명했던 정치인이었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을 불태워 이 나라를 밝히고 사라진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서거했을 때, 박정희가 남기고간 자취는 ‘대통령’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철저하게 불태웠던 것이다. 마치 춧불이 타면서 주위를 밝히지만 남은 것은 촛농 외에는 아무것도 없듯이, 그도 철저하게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자기를 위한 것은 없었다. 권력은 가졌지만 그것을 자신의 부(富)를 쌓거나 가족을위해 축적(蓄積)한 것이 없었다.

     

    그의 화장실 변기통에는 절수(節水)를 위한 벽돌이 들어 있었고 집무실에는 손부채가, 그리고 그가 부하의 흉탄(凶彈)에 맞아 병원에 실려 왔을 때그의 벨트는 낡았고, 차고 있던 시계도 빛을 바랬다. 그래서 의사는 처음에 그가 대통령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일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실천에 옮긴 인물이다. 지금 우파가 기다리는 지도자가 이런 인물 아니던가. 자신을 버리고 싸울 줄 아는 지도자,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없고 오로지 조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지도자, 바로 그가 박정희이다.

     

    박정희는 이런 기조에서 조국 근대화, 수출입국(輸出立國), 중화학공업 육성, 새마을 정신을 외치다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는 자신에게 최면(催眠)을 걸듯이 구호를 외친 지도자다. 그것이 당시 국민의 생활지표가 되었다.

    국민교육헌장이 지금은 부끄러운 유물(遺物)처럼 버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그것처럼 이 나라 국민을 깨우친 강령(綱領)도 없었다. 오늘날에는 이런 것들을 독재의 잔재라고 말하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격몽요결(擊蒙要訣) 이요, 『소학언해(小學諺解) 였던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지금의 시각만이 아닌, 반드시 당대의 시대 상황과 환경에 의해 재평가 받아야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당시 누구도 꿈 꿔보지도,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을 실천했던 대한민국의 선구자요, 교사였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부인과 자신은 흉탄으로 스러졌다. 부모 없이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그의 딸도 힘든 시대에 대통령이 되어서, 이 나라의 우파 가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좌파들의 분노에 내 던져지면서 결국은 탄핵과 감옥에 갇히는 비운을 겪고 있다.

    그는 조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어 놓았지만, 정작 자신과 가족은 고스란히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박정희에 대한 이 나라의 보상이란 말인가? 그래서 역사는 아이러니하다고 하는 것일까? 전 인류를 구하고도 자신의 고향땅에서 배척을 받는 예수처럼 말이다.


                    <2018년 11월 6일 성창경  KBS공영노조위원장 >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의 개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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