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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을 중국이 수입할 수는 없을까요?"스크랩된 좋은글들 2019. 2. 11. 00:24
아래글은 한국이 일본을 못따라 잡는 18가지 이유의 저자인 모모세타다시가 포항제철건설시 참여하고 당시를 생각하며 박태준회장에 대해 쓴글이다. 나역시 박태준을 존경하여 현충원을 방문할때면 그분의 묘소를 참배한다. 아래사진들은 참배때 촬영한 사진이다.
2011년 12월 서거후 처음찾았을때 사진
2016.05.월 현충원을 찾았을때
2019년 1월 참배갔을때의 모습
“박태준을 중국이 수입할 수는 없을까요?"
박태준 사장은 87년 5월, 현역 기업인으로는 최초로 ‘철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베세머 금상을 받았다. 그리고 중국의 덩 샤오핑은 신일본제철의 이나야마 회장으로부터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어서 제철소가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포항제철 창립30주년을 1년앞둔 97년, 포항제철은 1백80만톤규모의 광양 미니밀 공장을 정상 가동하면서 세계최대철당업체로 발돋음한다. 연간 조강생산능력 2천6백50만톤으로 신일본체철의 2천6백만톤을 앞지르게되는것이다. 포항제철은 나아가 2천8백만톤체제를 구축하기위해 설비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96년 포항제철은 8조5천억 원의 매출을 기록해 상장기업 중 최고인 6천4백억 원의 이익을 냈다. 8조5천억 원이란 매출은 직원 1인당 4억5천7백만 원의 매출을 기록한 셈이 된다. 97년에는 매출이 지난해보다 5천억 원 이상 늘어난 9조5백55억 원, 이익이 8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투자가 거의 마무리되면서 포항제철은 해외투자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포항제철은 이미 85년 12월, 미국의 us스틸과 50대 50의 합작으로 자본금 4억 달러의 합작회사 UPI를 설립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근교의 us스틸 피츠버그 냉연공장을 인수해 공동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UPI는 포항제철에서 핫코일(열연강판)을 도입해 냉연강판 아연도강판을 만들어 미 서부지역에 공급하고 있다.1901년 유명한 카네기와 모건 재벌이 합쳐 발족시킨 us스틸은 70년 동안 미국의 자존심이자 세계 철강업계의 대명사였던 회사다. 그 밖에도 포항제철은 97년에만 해도 4월 베네주엘라에 고철 대체재 합작공장을 착공하고 6월에는 인도네시아에 미니밀 합작공장을 착공하며,10월에는 중국 따렌(大連)에 아연도강판 합작공장을 착공할 예정이다.
제철소 건설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 경험 그 어느 것도 갖고 있지 못했던 한국 IBRD를 비롯한 세계의 전문가들이 성공가능성이 없다고 포기했던 한국에서 포항제철은 ‘영일만의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신화의 주역 박태준 사장은 ‘아이언 박(Iron Park)’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20세기 전반의 카네기에 이은 세계 철강업계의 ‘철강왕’이 되었고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93년 3월에 취임한 김만제 회장은 94년 세계철강협회(lIS!)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박 사장은 광양제철소의 1기 설비(연산 2백70만 톤 규모)를 준공한 직후인 87년 5월 13일, 영국금속학회로부터 ‘베세머 금상(Bessemer Gold Medal)’을 받았다. 베세머 금상은 베세머식(式) 전로(轉爛)를 발명한 영국의 헨리 베세머(HemyBesserner)가 1874년에 창설한 상으로, 철강공정의 획기적인 발명이나 세계 철강산업 발전에 특별히 기여가 큰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박 사장의 수상 이유는 “포항제철의 성공적인 건설을 통하여 한국의 경제 부흥과 세계 철강업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박 사장은 ‘철강업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이 상을 현역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수상했다. 1901년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관영 야하다(八I播) 제철소가 첫 고로에 불을 붙인 이래 1백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 1위의 철강대국 일본도 단 한 명의 수상자만 을 냈을 뿐이다.
포항제철의 성공이 세계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에 또 하나의 일화를 드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세계 철강업계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얘기다. 박태준 회장이 직접 술회한 얘기는 이렇다.
3기 설비가 준공된 다음이었다. 신일본제철의 이나야마(積山)회장을 만났는데,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만면에 웃음을 담고 이야기를 꺼냈다. “박 사장, 조심하시오. 잘못하다가는 중국땅으로 납치당해 갈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중국땅으로 납치를 당해 가다니요?" 그는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얼마 전에 중국의 최고실력자가 일본엘 다녀갔소. 이제는 ‘죽(竹)의 장막’에도 어지간한 틈이 생겼는지 자유진영의 경제 구조에 대해서 견해가 달라진 것 같았어요. 그는 일본의 제철소에 특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덩 샤오핑(鄭小平) 말씀입니까?"
“맞아요. 칠전팔기의 대명사 같은 그 사람 말입니다. 그가 기미쓰(君律) 제철소를 둘러보더니 포항제철 이야기를 꺼내는 겁니다. 그리고는 결론이 중국에도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를 하나 지어 달라는 겁니다. 아주 간절한 주문이더군요"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습니까?" 이나야마 회장은 그 대목에서 더욱 활짝 웃으며 유쾌해 했다.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어서 안 되겠다’고 대답했소. 그러자 등소평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박태준을 중국이 수입할 수는 없겠느냐’고 농담을 합디다. 중국이 박 사장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납치 당하지 않도록 조심 하시오"
그 얼마 후의 일이다. 국내의 어떤 인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고위층의 한 사람이 포항제철에 관해 꼬치꼬치 묻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일관제철소 건설 계획이 몇 번이나 실패로 끝났던 한국에서 포항제철이 성공적으로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한일 국교정상화과정에서 합의된 ‘대일 청구권자금’을 전용(轉用)해 자금문제를 해결하고 신일본제철을 중심으로 한 일본 철강업계가 기술및 설비공급 지원에 합의함으로써 가능했다는 점은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기는 데 결정적 인 역할을 해낸 사람은 바로 박태준 사장이었다.
포항제철 건설자금은 그런 과정을 거쳐 일본 수출입은행의 차관을 들여온 것이었는데 세계 각국으로 나간 일본의 차관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곳은 포항제철’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연스럽게 포항제철은 일본수출입은행이 후발 개발도상국과 차관교섭을 벌일 때 꼭 둘러보게 하는 ‘모범 케이스’로 소개되었다.
포항제철의 성공사례는 80년대 이후 세계의 여러 대학과 연구소들의 연구 주제가 되었다. 포항제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가 세계의 관심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는 중공업, 특히 철강업이었다. 포항제철의 성공요인은 창업자인 박태준 회장의 공헌, 효율적인제철소 건설과 운영체계, 인본주의, 직장환경 정비와 고품질 달성, 연구개발 체제에 의한 독자기술 개발 등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분석은 ‘박태준 회장의 국가관과 지도력,특유의 인사관리 방식, 원만한 노사관계’(92년 5월)를, 그리고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 경영대학원이 내놓은 보고서 r한국의 발전과 포철의 역할J(92년 7월)에서는 ‘제철산업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하려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박태준 회장의 리더십’을 꼽고 있다.
한편, 세계적인 철강전문가 피터 마커스(Peter F. Marcus)는 11가지에 걸쳐 포항제철의 성공요인을 망라하고 있다. 그것을 간략히 정 리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통찰력 있는 지도자, 박태준 회장. 그의 뛰어난 업적 제1호는 풍부한 지략과 창의력을 동원하여 최초 제철소 건설자금을 조달한 데서 비롯된다. 두번째 업적은 포항제철 사원들의 복지를 위한 헌신적 노력과 아울러 그의 굳은 의지로 정립한 사내의 높은 윤리적 행동규범이다. 포항제철의 모토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다. 더구나 포항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이다. 박태준 회장이 없었다면 포항제철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둘째, 한국 철강 노동자들의 희생적인 노력. 국제수준에 못미치는 저임금을 감수하고 고도의 능률을 올리며 장시간의 작업을 지원해 왔다. 한국의 시간당 임금은 1975년 겨우 1달러에서 91년 11달러로 상승했지만, 그것은 일본의 27달러, 미국의 28달
러에 비하면 아주 낮은 수준이다.
셋째, 포항제철은 제철소를 다른 나라의 유사한 설비에 비해약 1/2의 공기와 2/3의 비용으로 신속하고 저렴하게 건설되었다.
넷째, 많은 다른 국가들이 제철소 설비규모를 감축할 때 조강생산능력의 확장을 계속한 선견지명.
다섯째, 급격한 임금상승에도 불구하고 원가상승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고도로 자동화된 제철소를 건설한 통찰력.
여섯째, 포항제철의 지속적인 생산능력 확충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급을 초과하는 수요를 창출한 한국경제의 급속한 발전.
일곱째, 철강재를 이용해 수출용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가격의 강재를 생산한다는 원칙의 고수. 여덟째, 신기술 개발을 통한 경비 절감.
아흡째, 오랫동안 정부투자기관이었으면서도, 마치 사기업과 같이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운영능력.
열째, 세계적 수준으로 낮게 유지한 제조원가.
열한 번째, 국민기업으로 발돋움함과 동시에 원활한 자금 조달이 가능하게 했던 증권시장 상장.
나는 이처럼 다양하게 분석되는 포항제철의 성공요인은 결국 박태준 회장의 리더십과 포항제철 노동자들의 헌신성으로 압축 된다고 생각한다. 경영자의 리더십과 직원들의 헌신성이야말로 모든 성공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아니겠는가.
박태준 회장 자신은 포항제철의 성공요인을 이렇게 말한다. “성공요인을 나더러 말하라면 그것은 연구할 것까지도 없는 기업상식에 속한다. 즉 저비용 고품질의 제품생산이다. 자나 깨나 이 집념으로 정직하고 정확하게 경영해 온 것이 포항제철 성장의 가장 기본적인 요인이다"
세계 철강사상 유례가 없는 포항제철의 성공요인으로는 너무 뻔한 얘기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니겠는가.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한국의 자동차 기계 조선 전자공업의 기초는 포항제철에 의해 다져진 것이라고 할 수 있고 한국은 이제 세계에 내놓을 자랑거리를 갖게 되었다.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따라잡는 18가지 이유 저자 모모세타다시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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