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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원전국무총리 인터뷰 : "그래도… 결국은 노력이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19. 2. 23. 08:23


    김홍원전국무총리 인터뷰 : "그래도… 결국은 노력이다"

     

    국무총리를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고 한다. 말 속엔 두 갈래 길이 담겼다. 아래로 만인이 있다는 뜻처럼 최고 자리에 올랐다는 것으로 읽히는가 하면, 위로 바라볼 사람이 한 명 더 남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이도 있다.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사람, 큰 뜻을 품고 대권에 도전하는 이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였던 정홍원(75)씨는 스스로를 전자(前者)라고 얘기한다. 정치를 해 보라는 권유는 여러 번 있었다. 흙수저, 야간대학 출신, '원칙주의자' 소리를 들었던 검사 시절이 든든한 배경이란 것이었다. 그러나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해 번번이 거절했다. 오해를 줄까 염려해 퇴임 후엔 활동도 삼간다. 지난해 말 책을 출간했을 땐 출판기념회도 열지 않았다. 서울 마포의 한 교회에서 노숙인 자활을 돕는 봉사 활동을 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근황을 떠올린 것은 최근 일었던 배박(背朴·배신한 친박) 논란도 연유가 됐다. 그는 대권에 도전한 황교안 전 총리의 멘토기도 하다. 같은 대학 출신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공통분모로 검찰 재직 때부터 가깝게 지냈다. 황 전 총리를 청와대에 등용하는 데도 그의 역할이 컸다. 박 전 대통령과 황 전 총리를 사이에 둔 그의 생각도 궁금했다. 지난 12일 서초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정 전 총리를 만났다.

     

    ―사무실에서 법률 서적 한 권 보이지 않는다.

     

    "퇴임 후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는다. 법원장, 검사장 같은 고위 공직자는 퇴직 후 변호사 등을 하지 말아야 한다. 명예를 얻은 사람이 돈까지 추구해선 안 된다. 오해를 부를 만한 대외 활동도 피한다. 지난해 책을 냈을 때 출판기념회가 잘못 이해될까 싶어 열지 않았다. 노숙인 스무 명, 교회 신도들과 조촐하게 사인회 비슷한 행사만 했다. 노숙인도 책을 읽고 싶다는 이가 많아 책을 나눠 줬다."

     

    ―책에서 '숙명, 고난, 홀로서기' 같은 단어가 자주 보인다.

     

    "어려서부터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스스로 강해져야 했고 나를 그렇게 채찍질했다. 그 과정에서 인내하면 기회가 온다는 것, 나를 믿고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을 체득했다. 기성세대로서 또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 청춘들이 냉소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든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더욱 내가 겪은 배움이나 삶의 자세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하라는 식의 말에 지금 청춘이 공감할까.

     

    "조심스럽다. 성공의 시각에서 세상을 본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나 역시 학교 선생을 하다 고시 공부에 뛰어들었다. 처음부터 늦깎이였다. 그러나 성공을 못 했더라도 다른 길로 또 도전했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려면 항상 노력할 수밖에 없다. 다른 거짓말은 할 수가 없다."

     

    그는 경남 하동군의 빈농(貧農)에서 태어났다. 열두 남매 중 열째. 부모에게 지원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공부는 곧잘 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할 형편도 못 됐다. "아버님은 농사일을 돕기 바라셨다. 무슨 말이든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학교를 못 간다는 것은 못내 아쉬웠다." 공부에 대한 재능과 열의가 보이자 친척들이 설득해 학비를 내지 않는 진주사범학교에 진학했다. 홀로 진주에서 친구 집을 전전하며 공부하다 남의 집 다락방에서 연탄가스를 마시고 병원 신세를 지는 일도 있었다.

     

    "대학도 남보다 늦게 갔다. 서울 인왕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후 성균관대 법정대 야간학부에 들어갔다. 당시는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공부하는 젊은이가 많았다. 주간 학생들처럼 서클 활동 등은 생각도 못 했다. 낮에는 돈벌이하고 학과 공부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교사로서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사법시험에 도전한 이유는.

     

    "셋째 형님이 고시 공부를 하다 실패한 데 자극도 받았고 부모님의 염원도 있어 풀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군대도 다녀오고 직업도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라 무모한 도전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공부할 수 있다는 그 자체에 감사했다."

     

    늦깎이로 도전한 그는 1972년 1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온갖 수재가 모인 사법연수원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야간대 출신인 그는 내로라하는 동기 중에서 4등을 했다. 당시 수석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 검찰 지원자 중에선 그의 성적이 가장 앞섰다. 서울지검으로 발령 나는 것이 관례였다. "나 대신 서울 법대 출신이 발령을 받고 나는 영등포로 갔다. 초임 검사였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나보다 선배 검사들이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이후에도 학력이 발목을 잡았다.

     

    “30여 년 검사 생활 동안 이철희·장영자 부부 사기 사건, 대도 조세형 탈주 사건, 수서지구 택지 공급 비리 사건, 워커힐 카지노 외화 밀반출 사건 등 굵직한 수사를 했다. 동기 중에 선두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승진에서 미끄러지는 경우가 생겼다. 학벌 때문에 검찰총장은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도 들었다. 노력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생각에 좌절도 느꼈다.”

     

    보여주기는 하지 않겠다던 대통령

     

    출신도, 학벌도 변변찮은 그가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에 지명됐을 때 세상은 놀랐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을 아는 이들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 전 대통령은 논리적 판단과 깐깐한 일 처리를 높게 사는데, 정 전 총리가 그런 인재상에 들어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낙마한 김용준 전 헌재 소장도 원칙주의자로 유명했다. 정 전 총리는 2년간 박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탄핵 후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전화가 와 사흘 뒤 만났다. 변호인을 맡아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사무실에 법률 서적 한 권이 없고 수족도 없다. 성격상 이름을 걸어놓는 식은 안 되고 다 파악하고 지휘해야 하는데 체력 문제 등 아무리 봐도 여건이 안 되더라. 재판소 일에 정통한 사람을 팀장으로 변호인단을 꾸리면 자문하는 역할은 맡겠다고 말씀드렸다. 많이 섭섭하셨을 것이다. 지금도 멍에가 남았다. 미안한 일이다.”

     

    그는 탄핵 정국에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진실 규명도 되기 전에 대통령에게 무한 책임을 지라는 요구와 주장은 법 앞에 평등이 아니며 일시적 분풀이’라고 썼다. “여전히 같은 생각이다. 잘못이 뭔지 확정하고 그에 따른 처분이 있어야 하는 것이 도리다. 증거에 의해 확정도 되기 전에 탄핵이 된 것은 부당하다. 재산을 같이 쓰면 상대의 죄가 내 죄가 된다는 식의 논리는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전혀 없던 논리다.”

     

    ―절차를 지적할 순 있다. 그러나 수사 내용과 판결을 부정할 순 없다.

     

    “법조인으로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재판에 여론이 영향을 주는 상황이 전개됐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재판이 잘못된다면 그때 또 한 번 소용돌이가 일어날 수 있다. 법의 정신에 맞는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박 전 대통령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 더 말이 길어졌다. “나는 박 전 대통령이 절대 부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엔 대통령을 무뇌아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최순실이란 사람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어떤 결정도 못 하는 것처럼. 일국의 대통령을 향해 할 수 없는 소리다.”

     

    ―과장됐지만 실제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 회의를 하다 보면 전혀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다. 그런 경우 밑천이 금방 드러난다. 한번은 경제 관계 부처 회의에서 전혀 엉뚱한 사물인터넷(IoT) 이야기가 나왔다. 나 역시 개념만 알지 깊은 지식은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즉석에서 사물인터넷의 활용도와 가치, 미래 전망 등을 이야기하더라. 대통령이 되려고 10년여간 준비한 분의 내공이라 생각했다. 사안을 보고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야기를 해서 그저 수긍하는 게 아니라 전망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박 전 대통령 스타일이다.”

     

    ―국민의 눈에는 왜 그렇지 않은 것으로 비쳤을까.

     

    “박 전 대통령도 그런 비판을 알고 있다. 장관들 만나서 토론하는 모습을 보이고 언론에도 다른 모습을 좀 보이라고 몇 차례 얘기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보여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포퓰리즘적 처신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명확했다.”

     

    ―최순실과 관련한 이야기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나로서도 아쉽다. 다만 최순실은 자기가 어려울 때 심부름하고 도와주던 사람이다. 그가 어떤 짓을 했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데 그것이 누워서 침 뱉기라고, 윗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신을 더 치사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생각한 것 아닌가 싶다. 탄핵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고….”

     

    대한민국 정체성이 흔들린다

     

    그는 퇴임 후 서울 마포의 한 교회에서 노숙인들을 돕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탄핵이 있기 전까지 격주로 서울역에 가 교인들과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매번 100인분 식대를 그가 냈다. 무작정 도와주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며 자활 프로그램을 만들어 서울역을 같이 청소하고 원하는 사람은 농장에서 일하게 하는 등 자립도 도왔다. 보여주기식 활동은 아니었다. 홀로 차를 몰고 와 말없이 일했다. 탄핵 후에도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등에는 봉사에 나선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깨끗하고 따뜻한 사회가 돼야 한다. 지금 정부가 어려운 사람에게 다 해준다는 것은 세금 나눠 먹기밖에 안 된다.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나누고 베푸는 것은 국민 스스로 해야 한다.”

     

    ―사회 분위기는 정치와 리더십이 만드는 면이 크다.

     

    “그래서 나라의 정체성이 중요하다. 나는 그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헌법에 의해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 ‘촛불에 의해 당선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은 상황이 아니다.”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사람인 황 전 총리의 오랜 멘토기도 하다.

     

    “당대표 경선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내가 누구를 지지한다는 그런 식의 말은 옳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당대표 선거에서 서로 찢어지는 모양이 돼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질서와 시장경제 질서를 바로 세우는,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최근 유영하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 이야기를 전하며 배박 논란이 일었다.

     

    “팩트에 접근을 못 하고 있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는 아니다.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유 변호사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겠느냐 싶다. 재판에 여론이 영향을 주는 상황이 되어 변호사로도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옥중 메시지가 보수의 분열을 부른다는 비판도 있다.

     

    “내가 직접 듣지 못했으니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대의를 생각하는 분이고 그런 입장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는 박 전 대통령과 황 전 총리 등에 대한 추가 질문을 반복했지만, 그는 몇 차례 더 손사래를 쳤다. 오해를 주기도 누가 되기도 싫다는 것이었다. 그의 성품이었다. 그가 강조한 대답 중에 “다른 거짓말은 할 수가 없다”가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건 노력밖에 없다는 체험담이다.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시대지만, 그는 다른 거짓말은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 역시 그의 성품이고 걸어온 길일 것이다. 인터뷰 내내 이 원칙주의자는 한 세대 젊은 기자 앞에서 단 한 번도 차려 자세를 풀지 않았다.

    [김아사 기자]



           정홍원 전 총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경구를 액면 그대로 믿으며 살아왔고

                       최선을 다하면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꼭 나타난다고한다.


                               2019년2월 23일조선일보 김아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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