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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국정 농단이 점점 사소해 보인다스크랩된 좋은글들 2019. 12. 5. 07:08
박근혜 국정 농단이 점점 사소해 보인다
후보 경찰 수사 지시는 댓글과 비교 안 되는 중범죄
전 정권 때려잡던 그때 적폐보다 더 나쁜 짓 벌여
靑의 제멋대로 권력 행사… 대통령도 알았는지가 분수령
자고 일어나면 사건이 커진다. 검찰 수사가 막 시작됐을 뿐인데 등장인물과 관련 혐의가 심상치 않다. 백원우 전 민정 비서관에 이어 또 다른 대통령의 최측근에 검찰 수사 조준경이 맞춰졌다는 보도가 나온다. 백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버킷 리스트인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야당 후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다른 참모는 대통령을 '재인이 형'이라고 부른다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감찰 중단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대통령이 아끼고 챙기는 두 사람을 위해 한 참모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한 참모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정권 입맛 따라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한 것이다. 그게 바로 전 정권 참모들을 줄줄이 쇠고랑 차게 만든 국정 농단이다.
백 전 비서관이 야당 후보 비리 첩보를 경찰 쪽에 건넸다는 2017년 9, 10월은 문재인 정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감옥 보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때다. 당시 MB를 겨눈 핵심 혐의는 2012년 대선 때 댓글 공작이었다. 전 정권 국정원, 군이 댓글 단 것을 3·15 부정선거라고 규탄하면서 뒤쪽에선 야당 후보를 흠집 내는 소도구로 경찰 수사를 동원하는 공작 정치를 한 것이다.
유 전 부시장의 감찰 중단 결정이 내려진 것은 2017년 12월이었다. 그 무렵 검찰총장은 "적폐 수사를 연내에 마무리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 그리고 정권 지지층의 정서를 대변한다는 신문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주변에서 너무 전화가 많이 온다"면서 유 전 부시장 감찰을 중단시켰다고 한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적폐 수사를 중단하면 안 된다고 아우성친 바로 그 여권 핵심들일 것이다.
집권 반년 언저리를 맞던 문재인 정부는 한 손으론 전 정권 때려잡는 적폐 사냥을 하면서 또 한 손으론 적폐보다 더 몹쓸 짓을 하고 있었다. 배짱이 좋은 건지, 양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머리가 나쁜 건지 보통 사람들은 헤아릴 길이 없다. 자신들의 정권이 천년만년 갈 거라고 자신했던 모양이다. '백원우 별동대'에서 활동했던 검찰 수사관은 주변 사람들에게 "청와대 파견 근무가 위험하다. 겁이 난다"고 했다고 한다. 문재인 청와대가 법과 규정을 넘나들며 권력을 휘둘렀다는 얘기다. 그가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어깨 수술을 위해 외부 병원에 입원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구치소에 재수감됐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으로 25년(2심),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로 5년(2심), 옛 새누리당 공천 개입으로 2년(확정)을 각각 선고받았다. 단순 합산하면 32년이다. 수천억 뇌물수수에 내란·반란혐의까지 받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확정판결 받았던 17년 징역형의 거의 두 배다. 국정 농단 선고 형량 25년은 대법원 양형 기준에서 불특정 다수를 무차별 살인할 경우 적용되는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의 20~25년에 해당한다. 박 전 대통령이 그렇게 끔찍한 흉악 범죄를 저질렀나.
박 전 대통령 국정 농단의 핵심 혐의는 뇌물죄인데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은 것은 한 푼도 없다. 삼성이 최순실씨에게 건넨 승마 지원금 72억9000만원과 후원금 16억2800만원을 박 전 대통령이 받은 셈 친 것이다. 그 뇌물죄를 엮느라고 두 가지 희한한 법 논리가 등장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부탁한 것은 없지만 '묵시적 청탁'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후삼국 시대 궁예의 관심법이 동원됐고,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은 경제 공동체라서 최씨가 받은 것은 박 전 대통령이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경찰을 시켜서 야당 후보를 수사하게 한 것은 야당 후보에 대한 댓글 몇 개 단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중대한 범죄다. 대통령 주변 인물의 확실한 비리 혐의를 덮은 배경에는 집권 세력 내부의 경제 공동체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청와대의 이런 행태에 비해 박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은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박근혜 정부 핵심 관계자는 소셜 미디어에 "유재수에 이어 백원우, 탄핵의 문이 열릴 수도…"라고 적었다. "문재인 퇴장"이라는 광화문 함성이 더 이상 공허하게만 들리지 않는다. 검찰이 지금처럼 수사하고 법원이 법대로만 판결하면 대통령 최측근들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그 최측근들이 벌인 일을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게 입증된다면 생각할 수 없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다.
2019년 12월 5일 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주간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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