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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만원 공돈이 당신의 눈을 가리면 안된다.
    교통사고 재활운동 2020. 4. 3. 07:26

    배울 만큼 배웠고 평소 체면을 알던 내 주위 사람들이 좀 이상해졌다
    "자넨 해당되나, 안 되나?"라고…


    배울 만큼 배웠고 평소에 체면 차릴 줄 알던 내 주위 사람들이 좀 이상해졌다. 선거가 보름도 안 남았으면, 서로 안부 묻듯이 "누굴 찍기로 했나" "기호 몇 번인가"로 화제를 삼았다. 이걸로 논쟁이 붙거나 연대감을 재확인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제약이 생겼지만 전화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선거 얘기는 완전히 증발되고, 대신 서로에게 "자네는 해당되나 안 되나?"를 묻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4인 가구)을 주겠다고 직접 발표한 뒤로, 다들 이 얘기만 하고 있다. 세상 관심사가 100만원으로 다 빨려들어간 것이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이 없고, 공돈 준다는 데 관심 없는 사람 드물다. 눈앞에서 지폐를 살살 흔드는데 혹하지 않으면 비정상이다. 보건복지부 사이트에 소득액을 계산하려는 접속자가 몰려 며칠째 마비되고 있다. 이런 뉴스는 '남의 얘기'로 여겼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바로 내 주위에서도 100만원을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이들 몇몇과 통화해보니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에 똑같이 어려운데 누구는 받고 나는 제외되면 짜증 나지. 난 퇴직해 전혀 벌이가 없는데 아파트 공시지가 높다고 못 받는 게 말이 되나. 4인 가구 소득 기준이 712만원이면 왜 713만원은 안 되나. 혼자라면 지급 대상이 되고 맞벌이로 일한 부부는 안 되는 게 될 말인가. 나는 꼬박꼬박 세금을 낼 만큼 냈는데 남들보다 덜 받는 건 있을 수 없지…."

    아직 정부는 지급 기준과 대상, 방식을 확정하지 않았다. 보상금 지급 법적 근거도 못 마련한 상태다. 현행법으로는 피해 사실이 입증 안 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관련 조항이 없다.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권을 발동해도 추후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국가 재난 상황이니 예외적으로 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전혀 준비 안 됐지만 총선이 눈앞이다. 문 대통령은 '100만원씩 주겠다'고 던진 것이다. 지금 당장 100만원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지급 시기는 5월쯤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한마디에 온 국민이 '지급 대상이 되느냐 마느냐'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지금 그걸 계산해본들 헛된 일인 줄 스스로 알면서도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가구에는 100만원은 큰돈이다. 일용직·자영업자 등은 거의 숨이 목까지 찬 상태다. 이들에게 그 돈은 잠깐 숨 돌리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여파는 시간이 갈수록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들은 곧장 숨을 다시 헐떡거리게 될 것이다. 100만원 일회성으로는 어림없다.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으로는 정부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색내선 안 된다. 이들이 길바닥에 나앉지 않고 버텨낼 수 있게 적어도 대여섯 달은 지원해줘야 한다.

    반면에 누군가에게는 지금 100만원이 없어도 살 수 있다. 힘들지만 그런대로 버텨낼 만하다. 정부가 생각지도 않은 공돈을 주겠다고 하니 견물생심이다. 이들은 체면을 잠시 잊고 100만원에 끌려 들어간 것뿐이다. 문 대통령이 "국민 모두가 어렵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궁지에 몰린 이웃, 당장 인공호흡기를 안 대면 숨이 넘어갈지도 모를 이웃부터 먼저 돕자"며 설득과 이해를 구했다면 과연 이들이 '100만원 쟁탈전'을 벌이고 있을까. 아마 이들은 국가 재난 상황에서 양보하고 뭔가 하나라도 기여하려고 나섰을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명예와 헌신, 자부심을 불어넣어 줘야지, 국민을 한낱 공돈 몇 푼 더 받느냐에 매이게 해서는 안 된다. 돈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는 것은 잠깐이지 오래갈 수 없다. 며칠 전 문 대통령이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처음으로 참석했을 때다. 그는 "전투 중 부상수당을 다섯 배 올려주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천안함 유족 등 누구도 '문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중시하고 우리의 아픔을 알아주는구나'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 개인 돈으로 주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 사태가 선거판을 휩쓸었고, 이어서 100만원이 또 한 번 휩쓸고 있다. 세간에는 "코로나 쓰나미와 100만원 쓰나미"라고들 말한다. 정부가 주겠다면 100만원을 받되, 우리와 자녀 세대의 장래도 꼭 생각하기 바란다. 눈앞의 일회성 공돈이 현 정권의 3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돌아보는 우리의 눈을 가리게 해선 안 된다. 또 1년 뒤, 2년 뒤, 10년 뒤의 세상을 내다보는 눈을 흐리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뒤 현 정권의 능력으로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울지 따져볼 일이다. 야당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총선의 결과가 가지고 올 우리의 운명을 생각해보면 공돈 100만원에 몰두할 때는 아닐 것이다.


                         2020년 4월 3일 조선일보 최보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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