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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심
    스크랩된 좋은글들 2016. 2. 16. 07:09

    애국심 (조선일보 김대중칼럼)

     

    국가 안위와 관련된 정책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이 민주주의 덕목인 양 치부해서야~~ 나라가 어려울 때는 나아갈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것이 바로 애국심

     

    개성공단 폐쇄를 놓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비(是非)와 혼선과 분열상을 보면 우리가 과연 한 나라를 지키고 유지할 자격과 능력을 가진 나라인지 의구심이 든다. 개성공단 폐쇄를 무조건 지지하자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고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할 말을 참고 정부가 취한 어려운 결정에 대해 숙고하는, 그런 자세가 아쉽다는 얘기다.

     

    오늘날 잘되는 나라, 공동체를 잘 보존하고 키우는 사회는 서로 싸우다가도 외부로부터 어려움이 닥치면 우선은 싸움 줄을 놓고 서로 힘을 보태는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전체주의적 사고(思考)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회 지도층의 예의이고 질서이며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이 사는 방식이다.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라기보다 공유하는 방식이다.

     

    공단 폐쇄라는 정부의 결정이 과연 불가피한 마지막 선택이었는가, 또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 야당을 비롯한 사회 여러 요소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려는 사전 작업이 있었는가―이런 지적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 결정이 있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야당은 '화풀이 자해(自害) 정책'이니, 선거 앞둔 '북풍 공작'이니, 평화 체제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등 막말을 쏟아내고 심지어 당대표를 지낸 사람이 "전쟁하자는 것이냐"고 호통을 친다. 노동 단체에서도 비난 성명이 나오는 등 극심한 분열과 지리멸렬상을 노정하고 있다. 공단 진출 업계에서는 그동안 받은 특별 혜택과 수익은 접어두고 이 사태를 '세월호'에 빗대는 등 반발이 거세다.

     

    우리는 다양한 이견(異見)을 민주적으로 통합해가는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김정은의 결정만 있지 인민의 의사는 아무 의미가 없는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절차적 민주주의는 의사 결정 과정에 적용되는 것이며 일단 정책 방향이 정해지면 이에 따르는 것이 민주적 통합의 방식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견의 정도가 저주와 파괴 수준이고 통합 과정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의 안위와 관련해 우리는 앞으로 까다롭고 험난한 '대북'(對北)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어야 한다. 한·미 합동 훈련의 고도화, 사드 배치, 미국 전술핵 재도입, 우리 자체의 핵무장과 그에 따른 국제사회와의 갈등, 북의 사이버 테러와 국지 도발 등 고비 하나하나마다 국민적 합의와 국가적 동력(動力)이 요구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대중국, 대러시아, 대일본 문제까지 넘어야 할 산이 중첩해 있다. 이것은 일반 정책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런 안보 상황의 고비마다 야당과 반대 세력이 지금처럼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고 정부 정책에 브레이크를 건다면 대한민국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것은 지금 야당이 정권을 잡아도 마찬가지다. 정권을 담당한 쪽으로서도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안위와 관련된 정책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덕목인 양 치부하는 것도 문제다.

     

    애국심을 이야기하는 것을 진부하게 여기는 풍토가 있다. '애국'이라는 것이 어떤 계층의 이해를 위해 동원된 '선전 도구'로 치부되는 상황을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탓이리라. 그러나 애국은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지키려는 마음가짐이다. 자기가 사는 환경,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 대한 애착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파괴하려는 외부 세력으로부터 지켜내려는 마음가짐이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태극기를 몸에 두르는 그런 애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때마침 평양에서는 '이순신'이라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단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이순신 장군을 '양반을 위해 싸운 사람'으로 격하해왔다. 그런 이순신을 이번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때맞춰 '애국 명장(名將)'으로 격상(?)하고서 북한 주민들에게 '애국주의 정신'을 고양하고 있다는 보도다. 지금 전체주의, 독재 체제인 북한에서도 '애국'이라는 카드가 필요한 상황인 모양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세상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쥘 일이 많겠지만 나라가 어려울 때는 정책 책임자들이 정신을 한곳에 모으고 앞으로 온당하게 나아갈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밀어주는 것―그것이 다름 아닌 애국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애국심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2016년 2월 16일자 김대중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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