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친구와 만나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 하다가 친구가 토론에 대해 이애기 하면서 우리나라는 예전에 토론문화가 활발했는데 지금은 토론문화가 실종된 것 같다고 했다. 그친구가 왜 그럴까하고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봤다고 했다. 세종대왕 때 집현전에서 신숙주 성삼문 등 유명한 학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좋은 정책을 냈다고 하면서 그 찬란했던 토론문화가 시들기 시직한 것은 일본시대에 우민화 정책으로 토론을 금했기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럴것 같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 교육이 서구와는 달리 입시에 초점을 맞춘 암기식교육제도 탓도 있다며 거들었다.
진정한 토론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개선에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미국 프랭클핀의 자서전에는 토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상대방이 말한 것을 절대 반대하거나 자기의 의견을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일 등은 결코 하지 않았다. 이론(異論)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것 을 말할 때에는 ”꼭“ 이라든지 ”틀림없이“라든지 그밖에 자기의 의견에 단정적인 색채를 보이게 하는 언사는 일체 피했다. 그 대신 ”내가 틀리지 않는다면 이렇겠지요.“ 지금의 경우로 보면 나는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아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등으로 말했다. 틀리다고 생각되는 것을 상대가 주장할 때도, 정면에서 그것을 공격하거나 덮어놓고 그의 설이 부당하다는 것을 지적하여 분기를 돋꾸는 행위를 취하지 않았다. 때와 경우에 따라서는 그의 의견이 바르겠지만 현재의 경우는 아무래 틀리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의견에 공감한다. 나도 내 자신에게 결심하는 것이라면 꼭이란 말을 쓰겠지만 나의 주장을 여러 사람앞에서 할때는 나와 다른 의견도 있을 수있다는 생각과 그런 주장을 할수있도록 비상구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생각처럼 잘 안되는 경우가 더 많아 낙심할때도 많다.
회사의 사장이나 어떤 단체의 대표자가 내리는 결정이란 만장일치와 같은 방법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그러기에 그의 결정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충분이 토론하고,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충분이 의견을 교환한 후에 그 상이한 판단들을 두고 취사선택함으로서 함으로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다. 좋은 개선안을 낼때는 나름대로 토론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토론문화겠지요.
2016년 8월 3일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를 가지고 살 것이라면 어떻게 살까? (0) 2016.08.08 2016년 브라질 올림픽 한국선수단 입장 동영상 (0) 2016.08.06 독서에 목적을 생각하며 (0) 2016.08.01 어떻게 100세시대를 살아야하나? (0) 2016.07.27 삶은 달걀 (0) 201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