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것 같은 광장은 사실 불온하고 위험하다
내로남불 아닌 춘풍추상일 때 진정한 화해로 승화된다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 주범인 남욱이 검찰에서 말했다. “내가 좀 더 일찍 귀국했으면 민주당 후보는 바뀌었을 것이다.” 그는 미국 체류 중 검찰과 모종의 협상 끝에 지난 10월 18일 귀국했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은 8일 전에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이재명은 경선에서 50.29%를 득표해 가까스로 결선 투표 없이 대선 후보가 됐다. 만약 남욱이 보름쯤 일찍 귀국해 ‘대장동 설계자’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혔다면 당내 경선은 물론 어제 대선 결과까지 바뀌었을까.
지난 과거를 가정법으로 뒤집어보는 건 관심 없다. 그러나 지인들을 만나면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문 정권은 어찌 됐을까. 청와대 분수대, 광화문 광장, 서울시청 앞 등에서 금지 조치 없이 집회가 열렸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문 정권의 실정을 질타하는 군중 대회가 주말마다 벌어지고, 수백만 시민이 정권 퇴진을 외쳤다면 청와대가 온전했을까. ‘저지른 대로 되갚음을 당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 두 달 뒤 문 정권은 보따리를 싸서 떠나야 한다. 그들은 광장의 분노를 모면한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까. 코로나 사태의 최고 수혜 세력은 자신들이라며 안도하고 있을까.
윤석열 당선인은 자신을 “국민이 불러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를 만든 4인방을 호명한다면 문재인, 조국, 추미애, 이재명이다. 이 사람들은 윤석열 검사를 전국 스타로 만드는 데 손발을 맞춘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강골 소리를 듣던 ‘일개 검사’를 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초고속 승진시킨 사람은 문 대통령이다. 윤 검사를 천거하는 과정에 관여했을 조국 민정수석은 그 뒤 윤 총장이 지휘하는 비리 수사의 타깃이 됨으로써 윤 후보 만들기에 이중으로 공헌했다. 추 법무장관이 윤 총장에게 “명을 거역했다”며 정직 처분을 내리던 때부터 여론은 정권 교체 쪽으로 뒤집혔다.
문재인과 이재명은 ‘광장과 촛불’을 끝까지 떠받들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 광장은 선동적이고, 때론 독선적이었다. 광기에 몸을 맡길 뿐 자신이 옳다는 신념이 어디에서 오는지 사색할 틈이 없었다. 영화 제목처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추상적 직관도 없었다.
정의로운 것만 같았던 광장도 사실은 불온하고 위험하다. 그걸 나중에 깨닫게 된다. 광장에는 상징적 단두대가 광기의 시대를 대변했다. 사법 처리는 내로남불이 아닌 춘풍추상일 때 진정성 있는 화해로 승화될 수 있다. 저들은 그것을 거꾸로 잡아틀어 ‘적폐 청산’이라고 분칠했다. 그런 광기를 지렛대 삼아 정권을 횡재하고 누렸던 586들이 물러가고 있다.
오늘은 선거 결과에 희비하기보다는 역사를 생각한다. 당선인이 선대의 묘역을 찾을 때 유권자도 옷깃을 여며야 한다. 스스로 묻는다. 5년 뒤 ‘오늘 내 선택’이 옳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코로나가 터지고 아이와 함께 서울시청 앞 광장을 거닐어 본 적이 있다. 코로나 이전에 그곳은 거의 매일 옆 건물 유리창이 흔들릴 만큼 고성능 확성기가 쩌렁쩌렁 울리던 장소였다. 그날은 평화로운 잔디밭이 너무나 고즈넉했다. 멀리서 아빠랑 술래잡기를 하는 아기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나는 놀랐다. 광장은 원래 이런 곳이었구나.
광장의 몸살을 더 이상 앓고 싶지 않다. 앞선 위정자에게 잘못이 있으면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그것은 광장이 아닌 법정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래야 철저하게 할 수 있다. ‘인터넷 광장’도 편안해져야 할 때다.
새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도 고개를 숙일 것이다. 집회도 풀릴 것이다. 광장은 특정 세력의 소유가 아니다. 광장에는 어떤 확성기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가 광기에서 놓여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