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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많은 사회와 대통령의 소통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2. 8. 20. 07:42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8.18/뉴스1

    윤석열 정부가 지지율 추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 초년생 정부의 좌충우돌과 시행착오에 대한 국민의 매서운 질책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 조롱, 분석, 처방이 연일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 글을 편하게 쓰자면 여기 묻어가는 게 대세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악마의 대변인처럼 불편한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이러한 비판이며 훈수는 온당한가. 지나친 우려일지 모르지만, 혹여 이처럼 넘쳐나는 말들이 건설적 비판으로 작용하기보다, 이제 갓 100여 일 된 정부의 혼선과 국정 운영의 파행을 심화하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개인의 삶에서든 사회의 작동에서든 말의 과잉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경계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는 국가의 명운이 종종 이에 좌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가 김훈은 병자호란 당시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말로 싸우다 무너진 국가의 정경을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아래처럼 묘사했다.

     

    ‘문장으로 발신(發身)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廟堂)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아 출렁거렸다.’(남한산성, 9쪽).

     

    2022년 8월 우리 사회의 모습은 1636년 겨울 국난 상황에서 빚어진 일들을 무색하게 한다. 진영으로 갈라진 정치 집단과 언론은 사나운 눈길과 독한 혀들을 잠시도 놀리는 법이 없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시비 대상이 된다. 대통령이 입을 다물면 그 자체가 메시지가 되어 또 다른 시비를 낳는다.

     

    이렇듯 24시간 감시와 공방의 대상이 되는 최고 권력자의 말은 어떠해야 할까. 어디에도 답이 없는 정치의 오랜 난제지만, 주목할 유형들이 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왕에 대해 김훈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임금은 늘 표정이 없고 말을 아꼈다. 지밀상궁들조차 임금의 음색을 기억하지 못했고 임금의 심기를 헤아리지 못했다. (중략) 목소리가 낮고 멀어서 상궁들은 머리를 숙여서 임금의 목소리를 들었고, 나이 먹어서 귀가 어두운 내시들은 옥음을 모시지 못했다.’(10~11쪽 발췌)

     

    필자의 눈에 100여 일 전까지 우리 사회를 이끈 전(前) 대통령의 소통이 그러하였다. 피아를 막론하고 그의 말은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듣는 이들이 각자 알아서 해석해야 하는 의도적 모호함이었다. 그 결핍을 정교하게 연출한 이미지 소통, 이른바 ‘쇼통’이 메웠다. 그 결과 적대적 진영 간의 틈새는 더욱 깊어지고, 이들이 주고받는 말은 한층 모질어졌지만, 그는 지지율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보전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점에서 이전 대통령과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직설적이고 명료한 만큼 위험을 감수하는 소통이었다. 그는 자신을 품으려던 진보 집권 세력의 위선에 맞서 자기 말을 지켰고, 핍박받았고, 국민은 그런 그를 이 사회의 최고 권력에 올렸다.

     

    수많은 눈과 입이 권력자 주변을 에워싸고 물어뜯을 거리를 노리는 말 많은 사회에서 윤 대통령의 소통 스타일은 출근길 문답의 말실수며 문자 메시지 누출 사건처럼 득보다 실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계산을 넘어 민주주의 실천 차원에서 그의 진솔하고 적극적인 소통은 분명 진전된 것이다. 이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필자는 반문하고 싶다. 말실수를 피하자고 대통령이 무(無)소통 내지 반(反)소통으로 돌아서야 하는가.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대통령이 쇼통 뒤에 숨어야 하는가. 이를 통해 그와 가족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지키란 얘기인가.

     

    진영으로 갈라진 말 많은 사회에서 건설적 비판과 악의적 공격의 경계는 사실상 사라지고 없다. 이를 구분하는 것은 온전히 대통령의 몫이다. 비판에 귀를 열되, 끝없는 트집 잡기를 통해 자신을 위축시키거나 속칭 가스라이팅하려는 시도를 걸러내야 한다. 출근길 문답을 지속하고, 각종 식사 자리며 문자 등을 통한 격의 없는 소통도 활발히 전개하는 게 옳다.

    윤 대통령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 같은 소통 활동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자신의 말이 진실성과 공정성을 상실할 위험이다.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논란이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이처럼 가장 근접한 이에 대해 진실 되고 공정한 소통을 지켜갈 수 있을지가 윤 대통령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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