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새 시대의 서막(序幕) 앞에 서 있다. 역사의 어려운 격동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우려는 어떤 눈으로 역사를 보고 어떤 의식과 의지로 역사를 창조해야 하는가. 역사를 보는 눈을 사안(史眼)이라고 하고, 또 사관(史觀)이라고 한다.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가져야만 올바른 역사 창조의 행동 주체가 될 수 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가 해결해야 할 역사의 막중한 숙제가 있다. 역사의 숙제를 지혜롭게 해결하면 역사의 영광스러운 주인이 될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숙제를 잘못 풀면 역사의 곤욕스러운 제물(聚物)로 전락하고 만다. 역사는 도전(挑戰)과 응전의 긴장된 역학(力學)이다. 왕성한 활동력과 굳건한 단결력과 진실한 국민성을 갖는 민족은 역사의 도전에 슬기롭고 책임있게 응전한다. 그러나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고 결단력이 부족한 국민은 역사의 도전 앞에 비틀거리며 패배하고 만다.
우리는 일제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치욕스러운 식민지로 전락했었다. 자주적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8·15 해방이 왔지만 남북 분단의 대난제(大難題)에 부닥쳤고, 민족 통일이라는 역사의 어려운 과제를 새로이 안게 되었다.
건국 후 반세기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달성하지 못했다.5천만의 민생(民生)을 위협하는 격심한 불황을 극복해야 하고 북의 남침을 자력으로 저지해야 한다. 남북통일, 민주화, 경제발전, 안보, 사회정의는 우리가 기필코 달성해야 할 역사의 큰 숙제다. 그 어느 하나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의 숙제가 아무리 지난(至難)하여도 우리는 역사에서 도피할 수 없다. 역사의 난제를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운명인 동시에 사명이요, 과제인 동시에 보람이다. 우리는 어떤 눈으로 역사를 보아야 하는가. 나는 세 가지의 중요한 명제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로 역사는 위대한 교훈이다. 둘째로 역사는 엄숙한 심판이다. 셋째로 역사는 보람찬 창조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 의식을 가지고 늠름하게 역사 앞에 서야 한다. 먼저 역사는 위대한 교훈이라는 명제부터 생각해보자. 역사는 민족의 흥망성쇠의 기록이요, 국가의 치란(治亂)과 영고(榮枯)의 무대다.
우리는 역사에서 슬기로운 교훈을 배워야 한다. 한 나라가 흥할 때에는 흥할 만한 요인이 있어서 흥하고, 망할 때에는 망할 만한 까닭이 있어서 망한다. 우연히 흥하고 우연히 망하는 것이 아니다. 옛사람들이 역사를 거울이라고 생각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역사는 인류의 큰 거울이다. 역사의 우렁찬 행진곡을 들어보라. 자유의 나팔 소리가 들리고, 독립의 깃발이 휘날리고, 전쟁의 총소리가 요란하고, 혁명의 피가 흐르고, 진보의 함성이 드높고, 반동의 아우성 소리가 있고, 평등(平等)의 보무 (步武)가 당당하고, 평화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역사는 인간의 위대한 드라마다. 우리는 이 드라마에서 슬기로운 교훈을 배워야 한다. 사마천(司馬遭)의 “사기(史記” 를 보라. 사마광(司馬光)의 “ 자치통감(資治通鑑)” 통독해 보라. 기본의 《로마 흥망사》를 들춰보라.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윈어 보라.
누구나 위대한 지혜와 슬기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인정(仁政)의 결과는 어떻게 되며 학정(虐政)의 말로는 어떻게 되는가. 흥국(興國)의 원리는 무엇이며, 망국(亡國)의 요인은 무엇이냐. 덕으로 다스리는 왕도주의(王道主義)는 무엇을 가져오고, 힘으로 다스리는 패주의 ( 覇道主義)는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가. 협동과 단결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오고, 분열과 파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초래하는가.
우리는 역사에서 큰 교훈을 배워야 한다. 옛날의 군주들이 역사책을 많이 읽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역사는 통치자의 교과서요, 치국(治國)의 바이블이요, 정치의 길잡이다.
우리는 양심의 청진기를 민족의 가슴에 대고 역사의 소리를 조용히 들어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국민은 역사의 비극적 과오를 되풀이한다. 슬기로운 국민은 항상 역사에서 큰 교훈을 배운다. 우리는 역사의 지평선을 원시적 안목으로 바라보며, 역사의 맥박 소리를 듣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득중즉득국(得衆則得國) 실중즉실국(失衆則失國)J 이 라고 중국의 고전인 《대학(大學)}은 갈파한다. 민심을 얻으면 나라를 얻을 수 있고 민심을 잃으면 나라를 앓어버린다고 했다. 이것은 정치의 요체(要諸)를 간결 명쾌하게 갈파한 명언이다.
역사의 기회는 결코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천년에 한 번 찾아오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도 없지 않다. 백년 만에 한 번 찾아오는 기회도 있다. 우리는 역사의 황금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역사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현명하게 역사의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과거에 우리는 얼마나 역사의 호기 (好機)를 많이 놓쳤던가. 한말(韓末)에는 독립의 기회를 놓쳤고, 해방 후에는 통일의 기회와 민주화의 기회를 놓쳤다.
그러므로 우리는 냉철한 역사적 지성(知性)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역사는 엄숙한 심판이다. 이 명제를 생각해 보자. 인간은 세 가지의- 법정(法廷)을 갖는다.
첫째는 양심의 법정이다. 우리는 죄를 저지르면 양심이라는 내적(內的)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는다. 양심은 준엄한 원고(原告)가 되어 우리의 죄를 고발하고 질책하고 심판한다. 둘째는 사회의 법정이다. 우리는 범죄하면 재판소에서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셋째는 역사의 법정이다r세계사(世界史)는 세계 심판이다.J 독일의 시인 실러가 이렇게 외쳤고 철학자 헤겔이 강조한 명언이다.
역사는 국가와 민족을 심판한다. 세계 역사는 세계 법정이다. 군국주의 독일과 일본과 이탈리아는 역사의 심판을 받고 패망했었다.
정의가 폭력 앞에 무너지는 수도 있다. 선이 악에 밀리는 때도 있다. 자유가 압제 앞에 쓰러지고 진리가 허위 앞에 거꾸러지는 일도 있다. 광명이 암흑에 가리워지는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온다. 역사는 결코 폭력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정글 사회는 아니다. 법과 정의의 법칙이 지배하는 의(義)의 법정이다.
역사는 준엄하게 심판한다. 역사의 전진은 느리지만 반드시 올바른 방향을 향해서 전진한다. 역사의 여신(女神)은 진보의 의지와 정의의 이념을 갖는다. 역사는 정의와 진보의 행진곡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면서 가끔 역사의 회의주의에 빠졌었다. 과연 정의는 악을 이길 수 있는가. 천도(天道)는 정말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하고 한탄했었다. 우리는 역사를 긴 눈으로 보아야 하고, 먼 눈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역사를 보는 눈이다. 강물은 동(東)으로 흐르고 서(西 )로도 흐르지만 결국은 바다로 향한다. 역사도 그렇다. 우리는 기다리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기다리는 것을 배우라’고 시인 롱펠로는 노래했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되풀이하고, 진보와 반동이 대결하고, 광명과 암흑이 서로 싸우면서 서서히 전진한다.
역사는 결코 직선적 발전 과정(發展過程)을 밟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심판이다. 역사 앞에 서는 것은 심판 앞에 서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공의(公義)의 법정 앞에 서는 것oJ다;
역사의 소리는 침묵의 소리요, 무성(無聲)의 소리다. 역사는 예언자를 통해서, 또는 민중을 통해서, 또는 시인이나 사상가를 통해서 자기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전한다. 우리는 역사의 소리를 조용히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겸허한 마음과 사섬(邪心)이 없는 사람만이 역사의 소리를 바로 듣는다 r공수신퇴 천지도야(功遂身退天之道也).J 노자(老子)의 명언이다. 공을 이루고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다한 다음에는 조용히 물러서는 것이 하늘의 길이다. 나아가야 할 때에 나아가고 물러서야 할 때에 물러서는 것이 인간의 도리요,지혜다.
세상에 진퇴(進退)를 바로 아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없다. 인간의 비극은 진퇴를 모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역사의 심판을 믿고 역사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끝으로 역사는 창조다. 이 명제를 생각해 보자.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역사 창조의 행동적 주체다. 역사는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 땅에서 혼자 솟아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자유와 결단과 정열과 신념과 책임과 용기를 가지고 계획하고 만들고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결정론(決定論)과 필연론(必然論)을 배격해야 한다. 역사는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건설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요, 구경꾼이
아니요, 도피자가 아니다. 우리는 역사의 행동의 주체요, 참여의 주인이다.
정열 없이 역사의 대업(大業)이 성취된 일이 없다. 공허한 말이나 이론으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단과 실천에 의해서 역사는 창조된다. 힘이 있는 국민은 역사의 주인이 되고, 또 능동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국무상강 무상약(國無常彈無常弱).J 중국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의 말이다. 나라에는 영원히
강한 나라도 없고 영 원히 약한 나라도 없다. 나라의 강약은 국민에게 달렸다. 영원의 나라라고 외치던 로마도 결국 망하고 말았다. 2천 년 가까이 나라 없이 살던 이스라엘도 오늘날 독립하여 번영하는 나라가 되었다.
힘이 없는 국민은 역사의 제물로 전락한다. 국민의 체력, 정치력, 경제력, 기술력, 교육력, 도덕력, 인물력(人物力), 사상력(思想力) 등의 다원적인 힘이 한곳에 결집되어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유물론자의 주장처럼 경제적 생산력만이 역사의 결정 요인이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우리는 역사의 일원론(一元論)을 배격해야 한다. 역사는 타력이나 타의에 의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자의(自意)와 자력(自力)을 가지고 그 나라의 역사와 운명을 창조한다. 그 나라의 국민이 스스로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적 자신감을 가지고 번영과 승리의 역사를 창조해야 한다.
그러면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무엇이냐. 나는 국민 성격이라고 믿는다. 위대한 국민 성격을 갖는 민족은 역사의 자랑스러운 우등생이 되고, 저열(低劣)한 국민 성격을 갖는 민족은 역사의 부끄러운 열등생으로 전락한다. 역사는 국민 성격의 표현이요, 반영이요, 산물이다. 국민 성격이 역사 창조의 가장 중요한 열쇠다.
성격은 운명을 좌우한다. 성격은 운명의 원천이요, 운명은 성격의 산물이다. 한국 국민의 성격이 한국 국민의 역사를 좌우하고, 한국인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훌륭한 국민 성격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근본이다. 역사는 위대한 교훈이다. 역사는 엄숙한 심판이다. 역사는 줄기찬 창조다.
우리는 투철한 역사 의식(歷史意識)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빛나는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의 방청석에 앉은 무책임한 구경꾼이나 손님이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 역사의 주인이요, 역사의 책임자요, 역사의 개척자다. 우리는 역사 앞에 겸허(謙虛)하고, 역사 앞에 슬기롭고, 역사 앞에 용-감해야 한다. 그러한 국민만이 뛰어난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