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일어서고 쓰러지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지에 연재 중인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에 지난주 소개된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 바이츠만의 건국 이야기를 읽다가 그 생각을 다시 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화약 연료로 쓸 아세톤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한 생화학자 바이츠만에게 영국 정부가 보답하려 했지만 유대인이었던 바이츠만은 사적 보상 대신 유대 국가 건설을 도와달라고 했다는 얘기다. 이스라엘 건국은 유대인 공동의 열망이 이룬 결실이다.
좋은 조직은 공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발전시킨다. 지난여름 타계한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명예회장의 전기 ‘마음에 사심은 없다’는 생전에 ‘경영의 신’으로 불린 그가 교세라를 세계 100대 기업으로 키운 비결을 다뤘다. 이나모리 경영철학의 핵심은 ‘인생·일의 성과=가치관X열의X능력’이라는 ‘인생 방정식’이다. 셋의 관계는 덧셈이 아니라 곱셈이어서 하나라도 마이너스(-)이면 전체가 마이너스가 된다. 이 셋 중에 가치관 항목을 가장 중시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책에 소개돼 있었다.
10여 년 전, 이나모리는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JAL) 회장으로 영입돼 1년 만에 흑자 회사로 돌려놓았다. 재임 중 그가 반복해 강조한 것이 임직원의 사심 없는 헌신이었다. 조직에 요구했을 뿐 아니라 자신도 실천했다. 그는 일등석을 마다하고 이코노미석에 앉는 최고경영자였다. 옆자리 승객이 짐을 선반에서 내릴 땐 승무원이 되어 팔을 걷었다. 승객들이 알아보고 “혹시 이나모리 회장 아니냐?”며 놀라워했다. 집에는 주말에만 갔다. 쌓인 빨랫감을 들고 퇴근했고 월요일 출근할 때 1주일 치 셔츠를 싸서 집을 나섰다. 회삿돈 10만원 아끼는 직원을 발견하면 남들 보는 앞에서 칭찬했다. 그런 행동에서 공공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의 실패 이유로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공적 가치의 훼손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로남불도 결국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적 가치에 눈감는 행태였다. 정유라씨 대입은 불법이라고 모질게 비판하더니 정작 자기 자식은 꼼수 써서 대학 보낸 이가 전 정권의 법무장관이었다. 항일 투사처럼 행동하던 전직 광복회장은 과대 포장된 모친의 전기를 만드는 데 공금을 썼다. 광복회장이란 공적 지위를 각종 이권 사업에 활용했고, 광복회 명의의 포상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집권당 연줄로 국정원 산하 기관에 취업한 인사는 사무실을 개인 공간으로 꾸미고 외부인을 불러들여 술 파티를 벌인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수사 기밀을 받는 대가로 무고한 공무원을 좌천시킨 죄목으로 얼마 전 1심 유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문에 ‘개인의 이익을 위해 범행에 가담했다’고 돼 있다. 전직 대통령 부인은 수많은 옷과 장신구 산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불분명하고 외유성 순방 논란에도 빠져 있다. 모두 우리 사회가 소중히 지켜야 할 공적 가치를 내팽개친 처사다. 이런 행위는 단지 돈 몇 푼 낭비로 그치지 않고 나라든 회사든 조직의 총체적 역량을 갉아먹는다.
민주주의 발상지인 고대 아테네 공직자들은 무보수로 봉직했다. 그런데도 시민들은 봐주는 게 없었다.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하지 않는 것은 기본 덕목이었고, 공직자가 공적 자원을 부적절한 사업에 투입해 국가에 손해를 끼쳐도 처벌했다. 시민이 참여하는 공화정은 그래야 유지된다고 여겼다. 대한민국 건국 후 70여 년간 몇 차례 도약이 있었다.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공공의 가치를 훼손하는 자들이 두 번 다시 타인을 위해 일하는 자리에 앉지 못하는 풍토를 정착시켜야 한다. 성장률 높이고 취업난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이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