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영삼·김대중이 한국의 야당을 이끌던 1970년대 초 야당 출입 기자였다. 나는 기자 인생 가운데서 야당 출입 기자였던 것을 자랑스럽게 간직해왔다. 그리고 나의 정치적 색깔을 북돋아준 ‘야당적 시각’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나의 그런 자부심은 요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행태에서 여지없이 초라해지고 있다. 내가 알던, 내가 취재했던 그런 전통의 야당은 온데간데없고 오만한 거야(巨野)만 있다. 민주당은 당사 사무실 벽에 김대중과 노무현의 사진을 걸어 놓고 그들의 정치적 노선을 계승하는 것처럼 게시하고 있지만 노무현은 몰라도 적어도 김대중은 ‘이건 아니지’라는 반응일 것으로 나는 믿는다.
뻐꾸기는 자기 둥지가 없고 다른 새(숙주종)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꾸기의 알은 숙주종의 원래 알과 모양, 크기, 색깔이 비슷하도록 진화했다. 숙주종을 속이고 그 품에서 부화해서 숙주종이 물어다주는 먹이를 먹고 자란다. 이것을 탁란(托卵)이라고 한다. 더욱 놀랍고 얌체스러운 것은 뻐꾸기는 숙주종의 원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자기 알에서 나온 새끼가 먹이를 독차지하게 한다고 한다.
새삼 뻐꾸기의 탁란을 떠올리는 것은 한국 민주화의 적통(嫡統) 정당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을 친북-종북 좌파 세력과 586세대가 접수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야당이 숙주종이고 이들 주사-좌파 세력은 뻐꾸기의 존재 같은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뻐꾸기 좌파 세력에 ‘이재명’이라는 또 다른 뻐꾸기가 탁란을 해 전통 야당을 쌍으로 접수한 듯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더블 탁란’ 현상으로 지금 한국에는 ‘뻐꾸기’만 있고 진정한 야당, 전통의 야당, 견제의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배운 야당은 권력의 독주를 견제하고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다음 집권을 준비하는 대안(代案)으로서의 존재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아니다. 오히려 집권당의 냄새가 난다. 거만하고 비대하다. 정부·여당이 요구한 77건의 법안을 단 한 건도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대통령과 그 부인이나 물고 늘어질 뿐 아니라 없는 것을 만들어서 퍼뜨린다. 좌파 시위에나 올라타고 SNS 정치에나 몰두한다. 이제 거기서 끝나지 않고 당대표 한 사람의 방탄놀이에 올인하고 있다.
어찌해서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 당대표의 부정과 비리 사건에 스스로 정당의 명줄을 내건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명색이 당대표라는 그 사람이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에 어떤 기여를 했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민주당에 그렇게 사람이 없는가? 민주당이 결국 그런 수준의 정당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검찰 관련 발언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그래서 때로는 지금 민주당을 움직이는, 좌지우지하는 어떤 섭리(?)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본다. 아니, 또 다른 관점에서 민주당의 명석하고 정의감 있는 정치인들이 무엇엔가 인질 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엉뚱한 망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저 거대한 민주당이 당대표 한 사람, 그것도 민주화의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민주당의 터줏대감도 아니고 민주당의 지성과 양심을 대변할 위치에 있지도 않은 사람, 일곱 가지 죄명을 쓰고 떠돌이처럼 흘러 들어온 사람을 위해 저렇게 스크럼을 짜고 온몸을 던져 스스로 방탄조끼가 되려는 이면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바라건대 민주당은 이제 ‘이재명 방탄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 외부 인사가 선출직의 상징인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그 옆에서 죄송스럽다는 듯이 서 있었던 사람을 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소속 상임위인 국방위 관련 주식을 보유했던 그런 사람을 옹립한 원죄(原罪)가 민주당에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제 지난 시간의 오류와 실수를 과감히 벗고 족보 있는 명망의 정당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칫 민주당이 재편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올바른 정당정치를 위해서는 이재명을 안고 같이 가는 것보다 당 재편의 아픔을 감수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 민주당이 집권 시 저질렀던 여러 잠재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더 나아가 24년 총선에서 국민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을 수 있다. 그래야 윤석열 정권이 실패할 경우 나라를 건질 대안 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을 회복할 수 있다.
내가 출입했던 그 시절 야당이, 민주당이 그립다. 군부로부터 정치를 되찾아오고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이 땅에 정착시키려 애쓰던 진정한 민주주의자들, 의회주의자들이 생각난다. 그때 여야는 싸우면서도 대화하고, 주장하면서도 타협하고, 원칙은 끝까지 지키는 정치 신사(紳士)들의 마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