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원외당협위원장, 당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윤석열 정권 검사독재 규탄대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23.2.17/뉴스1
김해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엊그제 “이재명 대표 없어도 민주당은 말살되지 않는다”며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전 최고위원이기도 한 김씨는 “지금 민주당은 집단적 망상에 빠져있다”며 “이재명이 대표로 있는 한, 정부·여당·검찰에 대한 민주당의 어떤 메시지도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이제까지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방탄’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사람은 이상민, 조응천 의원 그리고 전 비상대책위원장 박지현씨 정도였는데 이제 김해영 전 의원도 이에 가세했다. 전 서울시장 후보 박영선씨도 한마디 했다. 숫자는 미미하지만 이들의 공개적 발언이 점차 세인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는 민주당의 진로에 관한 의미 있는 변화라고 지적하고 싶다.
한마디로 지금의 정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변해야 한국 정치가 산다. 민주당이 변하려면 ‘이재명 당대표’ 구조에 변화가 와야 한다. 민주당이 의석수의 우세만 믿고 지난 5년의 실패한 정치에 안주한 채, 전과 4범에 5~6가지 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명씨의 구속을 막으려고 스크럼을 짜고 있는 모습은 한국 정치를 위해서도 정말 처참한 모습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 구속은 정적(政敵) 죽이기며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제 이재명씨는 윤 대통령의 정적도 아니고, 국회 절대 과반수를 가진 정당을 탄압할 배짱이 윤 정부에 있을까? 또 당대표 한 사람 구속된다고 당이 ‘말살된다’면 그 정당은 정당도 아니다. 그 민주당에 작으나마 변화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면 김해영 등의 존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한 여권 인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재명’을 덮어주고 야권의 협치를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인가?” 대답은 “협치는 긴요하지만 그것을 얻으려고 ‘이재명’을 덮고 가면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 기반은 그날로 허물어졌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비슷한 질문을 야권 인사에게 던졌다. 대답은 ‘글쎄’였다. 이재명을 걸지 않았어도 협치는 어려웠을 것으로 이해되는 분위기였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재명 구속’ 카드로 일단 보수 지지 세력의 끈질긴 요구에 부응하는 조치인 동시에 민주당 내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이중 장치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는 윤석열 대통령의 꽃놀이패다.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민주당으로서는 그동안 이재명이 이끄는 반윤(反尹) 대열에 동참하거나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여러 민주당 의원들이 속으로는 끌탕을 하면서도 개별적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을 두고 그들이 이재명 대표에게 ‘인질’ 잡혀있는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있다. 이런 차제에 김 전 의원의 발언은 한 작은 변화의 신호탄일 수 있다. 박지현씨는 한발 더 나아갔다. 윤 정부가 노리는 것은 ‘이재명 구속’이 아니라 ‘이재명 불체포’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재명 방탄으로 가면 윤 정부로서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는 것이다. 이제 와서 민주당의 협조를 얻어 내치를 다지고 효율을 올리기는 싹수가 노랗다.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기간도 2년 남짓이다. 그럴 바에는 지지 세력에 부응하고 민주당의 변화도 꾀할 수 있다면 윤 대통령으로서는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다.
전통의 민주당이 어쩌다 부정 의혹투성이, 민주당 토박이도 아니고 민주당 구세주도 아니고 민주당 정통 혈통(?)도 아닌 이재명씨를 당대표로 앉히고, 그의 지난 성남시장 시절 부정 의혹을 감싸며 그 없이는 민주당이 존립하지 않는 것처럼 저렇게 스크럼을 짜고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몇 십년 민주당의 행로와 인물들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이것은 풀 수 없는 미스터리다. 이재명씨가 그렇게 흡인력이 강한 정치인인가? 그가 과연 지금의 민주당을 이끌어 내년 총선에서 여전히 다수당으로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한 지도자인가? 이재명이 없으면 김해영씨 말대로 민주당이 ‘말살’될 수 있다는 것인가?
‘이재명 구속’ 카드는 이처럼 그동안 입 다물고 있던 민주당 내 또다른 민주당에 던져진 날카로운 질문 같은 것이다. 민주당이 야당답게 윤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고 잘못된 정책에 제동을 거는 정치로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국민이 많다. 소속 의원들이 의혹투성이 당대표 한 사람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방탄 조끼의 단추 같은 존재가 아니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 대표 한 사람 어떻게 된다고 ‘말살’되는 그런 정당이 아니기를 나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