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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측’이라 하지말라니 생각나는 5년 전 ‘남쪽 대통령’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3. 10. 3. 08:19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9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북한 주민 15만명에게 연설했다. 그날 그는 자신을 ‘남쪽 대통령’이라고 했다.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여러분에게 인사말을 하게 되니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남한 대통령이라고 해도 기가 찰 노릇인데 남쪽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날 연설에서 ‘북녘 동포 형제 여러분’이라고 했으니 우리 국민들은 남녁 동포인셈이고, 그러니 남녁 대통령, 남쪽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써도 된다는 식인 모양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이름 대신 방향으로 불러도 될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5년 전 일을 새삼스럽게 떠오르게 된 것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게임에서 북한 선수단 관계자들이 “북측, 북한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여자 농구 남북 대결에서 패배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 선수단 관계자는 ‘북한’이라고 부르는 기자들에게 “우리는 DPRK다. 노스 코리아(North Korea)라고 부르지 말라. 이름을 정확히 불러야 한다.” DPRK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의 영어 약자다.

     

    다음날 여자 축구 남북대결에서 승리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 리유일 감독은 ‘북측’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북측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라며 “그걸 좀 바로 합시다”라고 했다.

     

    북한 축구 감독은 ‘북측’이라고 하지 말라고 한다. 불쾌하다고 한다. 한국을 기준으로 북쪽에 있다고 표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5년 전 스스로 ‘남쪽 대통령’이라고 했다. 북한이 기준이고 그 남쪽에 있는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러니 기가 찰 일이다.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 소득이 아프리카의 최빈국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10위로 일어섰다. 월남전 때 허리까지 잠기는 늪에서 젊은 군인들이 베트콩하고 싸워서 받은 전투수당 목숨값, 중동의 찌는 더위 속에서 일하고 받은 돈, 산업역군이라고 했지만 다들 공순이라고 했던 어린 여공들이 가발 만들어 판 돈 악착같이 모아서 만든 나라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의 함보른 탄광에 가서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만난 일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애국가를 부르다가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울었다. 먼 독일까지 가서 막장 속으로 들어간 광부들, 독일인 간호사들이 꺼리는 힘든 일 도맡았다는 간호사들. 국민들을 그런 힘든 일하라고 떠나보낸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과 부인도 함께 울었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7만9000여명의 광부와 1만여명의 간호사가 독일로 갔다.

     

    포스코가 지금은 세계 최고로 꼽히지만, 처음 제철소를 만들 때는 아무 것도 없었다. “잘못되면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고 했던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죽을 각오로 만든 회사들이 하나 둘 늘어나서 지금 번듯한 나라를 만들었다.

     

    우리보다 살기 좋은 나라도 많다. 땅은 좁고, 천연 자원은 적고, 분단된 나라에서 맨주먹으로 그래도 이만큼 왔으니 대한민국은 세계에 자랑할만한 나라다.

     

    우리가 북한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내세우고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출발은 우리가 북한보다 못했다. 1962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기 전에는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더 많았다. 작년 연말에 나온 통계를 보면 우리가 북한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8배나 많다. 북한은 142만3000원이고, 우리는 4048만2000원이다.

     

    통일은 해야된다. 이렇게 갈라져 지낼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남쪽 대통령’이라고 낮춰가면서, 북한 비위 맞춰가며 할 일은 아니다. 지난 세월 우리 피땀 다 바닥에 버리고 할 수는 없다. 자유와 민주주의 다 버리고 통일 먼저 할 일은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5년 전 ‘남쪽 대통령’이라고 한 날 “이번 방문에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라고 했다. 그가 보았다는 놀라운 발전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인 생계마저 삼켜버리고, 세계의 지탄을 받으면서 만들어낸 핵폭탄은 아닐테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초대형방사포도 아닐텐데 무엇인지 모르겠다.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라고도 했다. 자고 나면 미사일 발사 소식이 들리는 지금이 새로운 미래인가? 문 전 대통령은 아직도 김정은이 찬사와 박수를 받을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평양에 가서 “남쪽 대통령입니다”라고 할 대통령이 다시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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