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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범죄자·反민주주의자 뽑으면 안 된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1. 10. 03:19

    지금 대한민국 무엇이 문제인가   아직도 배회 중인 '이념의 유령'  87년 체제의 제도적 결함  지금은 제왕적 대통령보다
    제왕적 국회가 더 악성이다  내각제·중대선거구제 등  시스템과 사람 모두 바꿔야

     
     

    1987년 민주화 때, ‘역사’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미래는 어쩌면 지루하고 소소한 일상이 이어질 걸로 믿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를 보며, 역사란 끝이 없고, 비약도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우리 안의 후진성과 어떤 결핍이 오늘의 위기를 불렀다. 그걸 확실히 인식하고 넘어서지 않으면, 역사는 무한 반복된다.

     

    먼저 이념적 대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정치적 대립을 ‘체제’ 전쟁으로 본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해묵은 논쟁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가 대표적이다. 진보 정부 때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표현이 빠졌다. 또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 민주주의만 썼다. 조선인민군행진곡과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 전시관과 거리가 생기고, 음악 축제가 버젓이 열리기도 한다.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은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 이래 100여 년에 이른다. 6·25전쟁 때 한국민은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쳤다. 하지만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이 널리 확산되었다. 대학은 물론 노동계, 문화계, 종교계에도 만연했다. 이른바 586 세대가 집중 세례를 받았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세력이 이들이다.

     

    이제는 자유민주주의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민주당의 1차 탄핵안은 윤 대통령이 “가치 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여 국가 안보를 팽개쳤다고 비판했다. 놀랍다. 가치 외교란 민주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와 국익에 기반한 외교’다. 국가 정체성에도 부합한다. 캠프 데이비드의 한·미·일 3국 협력 체제가 그 성과로, 북한 핵은 물론 북·중·러의 안보 위협에 맞서는 최상의 방패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공산주의는 역사에서 퇴장했다. 북한 주체사상은 그걸 만든 황장엽조차 버렸다. 그런데 그 유령들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기이하고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IMF 사태 후 계속 악화되어 온 경제적 양극화, 그리고 저성장 수축 사회가 초래한 르상티망(ressentiment·분노)이 새로운 서식처다.

     

    두 번째는 ‘87년 체제의 제도적 결함이다. 지난 10년간 세 차례나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했다. 그중 지금 위기가 가장 심각하다. 예전에는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였다. 지금은 제왕적 국회가 더 악성이다. 최종 해결사인 헌재조차 권위를 의심받고 있다. 윤 대통령의 체포를 둘러싸고 대통령과 경호처, 공수처, 군, 경찰이 뒤얽혀 난맥상을 연출하고 있다. 국가가 안에서 해체되고 있다.

     

    87년 체제의 효용은 확실히 끝났다. 빨리 바꾸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닥칠 것이다. 제도보다 사람이 문제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제모을루, 로빈슨 교수는 남북한의 격차가 문화가 아닌 제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945년 남북한은 원래 같은 사람들이었다. 단지 남한은 공평한 경쟁을 보장하는 ‘포용적 경제 제도’를, 북한은 그 반대로 ‘착취적 경제 제도’를 택했을 뿐이다.

     

    87년 체제에서 대통령과 야당은 무한 전쟁을 벌인다. 대통령이 망해야 야당이 권력을 쥐기 때문이다. 야당이 국회의 절대다수를 점하면 정부는 마비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9번이나 탄핵안을 냈다. 이런 폐단을 막으려면 ‘협치’의 제도화가 핵심이다. 내각제가 이상적이다. 대통령제면 그 권력을 줄이고, 국회 해산권을 주고, 탄핵 시 직무 정지를 없애야 한다. 국회는 양원제로 만들어 무책임한 결정을 억제해야 한다. 국회의원 공천은 유권자에게 맡겨, 정치 보스의 1인 사당화를 저지하는 게 옳다. 선거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꿔 다당제가 되면, 다수당의 횡포가 제한되고 협치가 불가피하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사람이 문제다. 지금 한국 정치는 586 운동권과 법조인이 압도적이다. 운동권은 도덕적 자부심을, 법조인은 전문가의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모두 국제적 감각과 융합적 사고력이 약한 데다 외골수 경향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맞지 않는다. 정치가 신뢰도도 항상 꼴찌다. 하지만 정치가의 자질이 아니라, 결국 유권자의 선택이 문제다. 진영 논리나 지역주의에 빠져, 더 이상 범죄자나 반민주주의자를 뽑으면 안 된다.

     

    무엇이 대한민국의 문제인가? “I am(접니다).” 필부도 세상에 책임이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달린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는가에 달려있다.

    2025년 1월 10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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