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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민주주의를 구원할까?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3. 11. 03:00
작년 여름,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과는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같이 술자리에 할 수 없다는 사람도 30%였다. 보수-진보의 갈등이 노사 갈등, 심지어 빈부 갈등보다 심각하게 나타났다. 최근 20-30대 젊은 층에서 여성은 진보, 남성은 보수화가 두드러지는데, 위의 응답을 고려하면 이제 결혼이 점점 더 힘들어짐을 알 수 있다. 초저출산율의 첫 단추가 보수-진보의 갈등인 셈이다.
독일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합리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공론장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공론장에서 합리적으로 대화하다 보면 합의에 도달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인데, 최근 평행선만을 그리는 보수·진보의 갈등이 이런 이론을 무력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인들은 공통점과 합의점을 모색하는 대신 표를 얻기 위해 상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이는 다시 시민들 사이의 이념 간극을 더 벌리고 있다.
AI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2023년에 구글 딥마인드 연구원들은 예일, 하버드, 옥스퍼드 대학 교수들과 협력해서 공동성명서를 작성하는 인공지능 ‘하버마스 머신(Habermas Machine)’을 만들었다. 이들은 정치 성향이 서로 다른 5000여 시민에게 기후 위기, 이민 문제 등에 관한 견해를 물었고, 인공지능에 이 견해를 수합해서 공동성명서를 작성하게 했다. 시민들은 인간 중재자가 만든 성명서보다 인공지능이 만든 성명서가 더 공정하고 명확하다고 평가했다. AI가 중재할 때는 시민들의 상이한 의견이 수렴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인간이 중재했을 때는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다. 이들의 연구 내용은 ‘사이언스’(2024)지에 실렸다.
사람 사이에 불신과 혐오가 팽배한 시기에 이렇게 기계가 소통 채널을 열어줄 수 있다. 앞으로 AI가 위기에 직면한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을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한국 정치에 하버마스 머신을 시험적으로 도입하는 건 어떨까?
2025년 3월 11일 조선일보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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