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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해군, 韓 조선소 잇단 방문… 트럼프에 "최고 기술, 국방비 절감 가능" 설득하라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5. 23. 06:43

    미·중 패권 전쟁으로 바다도 소용돌이친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미국도 맞대응하고 있다. 미 해군은 향후 30년간 총 364척을 새로 건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해양 지배력 회복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 의회에는 군함 건조를 동맹국에도 맡길 수 있게 하자는 법안 등이 발의됐다.

     

    인도도 움직이고 있다. 지난 2월 13일 모디 인도 총리가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산 에너지와 무기 수입 확대 등을 약속했다. 정상회담 얼마 뒤 모디 총리의 특사단이 한국으로 날아왔다. 4일의 짧은 일정 동안 HD현대중공업을 방문하고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초대 경제2수석)을 만나고 갔다.

     

    세계 정세가 요동치면서 미국과 인도 같은 대국(大國)이 한국 조선업에 구애하고 있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한국 조선업의 대부’로 불리는 신 회장에게 당면 과제와 미래 전략의 지혜를 들어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조선업을 콕 찍어 협력을 요청했지요.

    “미·중 긴장 속에 중국과 바다에서 대립하는 양상이 생긴다면 미국이 중국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전 세계를 커버하는 미 해군과 달리, 중국은 아시아·태평양에 몰려 있어요. 중국은 바다에서도 인해전술입니다. 미국 배 하나 오면 10척이 에워싸는 구도입니다. 미국 정부가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중국은 조선소가 수십 개 있어 1년에 10척 이상의 군함을 건조하는데 2차 대전 당시 세계 최강의 건함 능력을 자랑하던 미국이 지금은 배 하나 짓는 데 5년, 10년 걸리고 조선소도 변변한 게 없어요. 항공모함을 짓지 않으면 미국의 해군력은 그냥 죽는 거예요. 작년에 태평양 함대 사령관, 미국 해군 장관이 한국 조선소를 싹 돌았어요. 한국 조선소의 능력이 어떻다는 걸 모르고 왔다가 깜짝 놀라고 갔어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해군 장관이 다녀갔고, 무역대표부 대표가 조선소들을 보고 갔어요. 엄청난 의미를 갖는 건데 정작 정부에서는 별다른 움직임도 없었어요. 미국 내에서는 한국 등 동맹국에서 선박을 건조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트럼프는 기업인입니다. 미국에서 짓는 것보다 낮은 비용이면서도 최고 품질로 국방비도 절감하면서 전력을 증강시켜 줄 수 있다고 협상하고 대통령 직속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의회, 국방부 등과도 폭넓게 교섭해야 합니다. 미국 해군력 약화는 우리 안보에도 심각한 타격인 만큼, 트럼프 스타일대로 더 과감하게 우리가 역제안을 한다면 미국 내로만 건함을 제한하는 규정도 파격적으로 풀어줄 수 있다고 봅니다.”

     

    -모디 인도 총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총리가 되기 전부터이니 10년이 넘었네요. 모디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에 관심이 많았고 배우고 싶어 했어요. KDI(한국개발연구원) 요청으로 인도 기업인을 대상으로 강연한 것이 인연이 됐어요. 세계적인 조선소를 짓고 싶다고 인도로 나를 초청했고, 한국도 여러 번 방문해 조선소를 다녀갔지요. 이번에 트럼프와 정상회담에서 인도가 미국 천연가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배도 수백 척 필요해요. 한국은 배 만들어 세계에 수출도 하는데 인도는 자체 수요만도 엄청나니 조선소를 건설하겠다는 것이지요. 배후에 신도시도 건설하고, 조선업 인재를 양성할 대학도 세우면서 여태껏 없는 세계 최대 조선소를 짓겠다고 개념 설계를 해서 온 거예요. 이게 추진된다면 필요한 기자재도 팔 수 있고, 유대관계도 생기고, 인도에서 필요한 선박 일부도 한국에 발주하겠지요. 인도 프로젝트에도 정부가 관여해 진행한다면 또 다른 기회가 열릴 거라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조선업 주도권이 영국, 미국, 일본으로 넘어갔지요. 한국이 조선업 세계 1위라고 하지만 이미 신주 물량의 70%를 중국이 점유하면서 곧 추월당하는 것 아닌가요.

    “척 수로는 중국보다 덜 짓지만 고부가가치선이어서 척당 1억5000만달러에서 2억달러에 수주하고, 중국은 평균 5000만달러 수준에 수주합니다. 배 한 척당 4000억원 하는 메탄올 선박은 우리가 거의 100% 수주합니다. 정도 관리(accuracy control)라고 하는데 각각의 조선소에서 블록을 제작해 한데 붙이면 정확히 맞아야 하는데 한국 실력이 100이라면 일본은 90, 중국은 60 수준입니다. 생산성 측면에서도 30만톤짜리 배를 같은 설계로 중국에 발주하면 24개월에서 30개월 걸리고 일본은 12개월에서 18개월, 한국은 빠르면 7~10개월 내에도 만듭니다. 그만큼 생산성 높고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어요. 우리 조선 업체도 일본을 따라잡은 뒤 호황기에는 100척 주문받았어, 200척 주문받았어 하면서 도넛 찍어 팔 듯 했습니다. 2007, 2008년 불황이 닥쳤을 때 조선업은 이제 접어야 한다고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까지 신문에 글 쓰고 그랬어요. 하지만 전 세계 물동량의 99% 이상이 해상 운송으로 이뤄집니다. “살길이 있다. 살길은 이거다” 하고 조선학회에서 포럼 열고 미래 비전도 제시하고 그랬습니다. 마침 지구온난화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면서 이전에 없던 기술이 필요했고 첨단 기술을 적용한 특수선에 주력해 경쟁력을 높인 덕에 일본 전철을 밟지 않았지요. 메탄올 선박에 이어 암모니아, 수소, SMR(소형모듈원자로) 등 차세대 선박 연료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진행되고 있어 경쟁력은 꽤 이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정부 주도로 출발했지만 업계 스스로 세계 정상까지 올랐는데 이제 와서 정부가 개입한다면 기업 발목만 잡지 않을까요.

    “기업은 기업 이익을 위해 뜁니다. 새롭게 열리는 해외 시장은 오히려 정부 역할이 필요합니다. 우리끼리 출혈 경쟁하면서 각자 뛰지 말고 정부가 조율해서 ‘K조선’으로 나가야 합니다. 일본도 여전히 건조 능력이 있어 해군 공창을 살려서 뛰어들 것 같아요. 호주 군함 입찰 때는 실패했는데 다행히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는 공동 입찰서를 냈어요.

    그리고 조선업 전체로는 갈 길이 멉니다. 대형 조선 업체는 세계적 수준이고 일감도 3~5년씩 차있지만 중소·중견 조선소는 뒤처져 있고 일감도 부족합니다. 세계 시장이 더 커져 빅3가 물량을 따와서 중소·중견 업체들에 하청 주고 품질 관리해 가면서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단가도 제대로 책정해 공생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해요.

    인력 관리도 시급합니다. 오늘의 조선업이 가능했던 건 우수한 엔지니어가 많아서였습니다. 조선업은 산업적 중요성뿐 아니라 안보에서도 핵심입니다. 그래서 군함 제조 능력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출발부터 조선소에 방산부를 두었어요. 군함 만드는 조함 장교도 꾸준히 길러냈지요. 해군사관학교에서 우수 생도를 선발해 대학에 위탁 교육을 보냈고 미국 MIT에 유학 보내 박사 학위까지 마치게 했습니다. 이 뛰어난 인력들이 대령 되면 전역해서 조선소에 취직해 1~2년 조함 담당 이사로 일하다 그만두는 구조입니다. 국내에 일자리가 없어 이들이 중국 조선소로 취업하는 건 엄청난 국력 손실입니다. 인력 관리까지 포함해 정부가 조선업 신(新)산업 정책의 마스터 플랜을 세워야 합니다.”

     

    -이 시점에 가장 필요한 건 뭐라고 보십니까.

    “1960년대에 한국 조선업은 무(無)였습니다. 통치권자의 의지만 있었지요. 시골에서 태어난 박정희 대통령이 어떻게 조선입국의 의지를 그리 강하게 갖게 됐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대통령 의지에 따라 제가 청사진을 그렸고 정주영 회장 같은 기업인들이 실행에 옮겼지요. 인력도 다 길러내 여기까지 왔습니다. 조선업은 산·학·연 삼박자를 다 갖췄어요. 인재도, 시설도, 기술도 있고 심지어 미국이라는 세계 제일의 고객을 잡을 기회까지 열리고 있어요. 주도적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데 정반대로 지금은 통치권자의 의지가 결여돼 있습니다. 이 잠재력을 간파해서 다음 단계로 도약하겠다는 안목을 가진 대통령의 리더십, 그것을 뒷받침할 유능한 정부 조직이 없습니다. 그것을 갖춘다면 한국을 빼놓고는 세계 조선을 논할 수 없는 수준까지 제패해 국가 발전과 안보의 엄청난 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은?

    1932년생으로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1950년대 당시 세계 최고 기술력의 스웨덴 코쿰 조선소에 취직해 선박 설계를 배웠다. 영국으로 건너가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명성의 로이드선급협회 국제 검사관이 됐고, 이어 미국선급협회 검사관으로 일했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 1급 정무비서관으로 영입했고, 1968년 경제수석직을 신설하면서 36세의 엔지니어 출신인 그를 초대 경제2수석에 임명했다. 양철 한 조각 못 만들던 나라에서 초대형 조선업 마스터플랜을 세워 추진했고, 제조업 중장기 발전 계획도 수립했다. 6년의 공직 생활 후에 조선업계로 돌아가 경영난에 처해 있던 영세 기업 한국해사기술(KOMAC)을 인수, 반세기 동안 컨테이너선, 유조선, 쇄빙선, 핵폐기물 운반선, 심해 자원 탐사선 등 선박 2000여 종 설계를 해왔다. 인도 정부에 조언하는 등 구순이 넘어서도 세계 조선업계 최고령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적힌 친필 보고서를 비롯해 방대한 분량의 조선업 자료를 최근 국책 연구소인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에 기증한 한국 조선업의 산증인이다.   

     

    2025년 5월 23일 조선일보 강경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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