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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의 '중간계선' 선언, NLL 무력화 신호탄인가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6. 25. 08:42

    北, 서해 NLL 훨씬 남쪽으로 일방적으로 그은 경비계선 제시  "핵 추진 잠수함도"… 핵 포함 땐 南北 전력 비교 자체가 무의미

     
     
     
    지난 12일 구축함 ‘강건호’ 진수식에 참석한 김정은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만주 산속에서 은거했던 김일성은 6·25 남침 전쟁에서 해군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1950년 9월 인천 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한 유엔군과 한국 해군은 육상과 달리 저항을 받지 않고 동해와 서해로 북상했다. 국군 해병대가 주둔했던 황해도 초도섬은 물론 최북단 평안북도 압록강 하구에 있는 신도섬까지 점령했으나 정전협정 이후 자진 철수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해군력이 약했던 북한이 안도하는 해상 군사분계선이었으며 우리 해군의 북상을 차단하는 안전판이었다.

     

    1970년대 들어 북한 해군력이 증강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1949년 8월 창설된 북한 해군은 제대로 된 함정 자체가 없어 전쟁 중에도 해안 경비에만 주력했다. 휴전 이후 김일성과 김정일은 해군력 강화에 주력했고 잠수함 건조까지 추진했다. 현재 70여 척의 북한 잠수함은 대부분 로미오와 상어급과 같은 구형 잠수함이기는 하나 숫자는 우리의 22척보다 많다. 최근 들어 러시아의 첨단 기술을 받아 핵 추진 잠수함 건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년 들어 바다의 중요성을 강조한 선대의 유훈을 받은 3대 지도자 김정은이 신속하게 바다로 나가고 있다. 그는 2023년 말 당 전원회의에서 “앞으로 육·해·공이 아니라 ‘해·육·공이라 불러야 한다”고 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가지다. 김정은이 지난 4월 5000t급 신형 구축함 진수식에 참석해 구축함의 작전 범위를 설명하면서 ‘중간계선해역’이라는 요상한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구축함과 순양함, 호위함 등으로 구성되는 원양 함대 창설 계획을 밝히고 “함선들을 연안 방어 수역과 중간계선해역에서 평시작전 운용”을 선언했다. 이어 원양 함대가 동해는 물론 태평양 먼바다로까지 나아가 작전을 수행하는 우리의 대양해군(大洋海軍)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김정은은 중간계선해역이라는 용어로 북방한계선(NLL)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북한이 해군 작전과 관련해 중간계선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 관영 매체에 중간계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그 의미는 불확실하다. 북한은 과거 NLL 남쪽에 ‘경비계선’이라는 일방적인 선을 그어 남북한 간 새로운 해상 경계라고 주장했다.

    그래픽=양인성
     

    중간계선은 김정은이 주장한 ‘적대적 두 국가론’에 근거해 새롭게 설정한 해상 경계선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의 바다에 관한 선언을 방관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간 주기적으로 자행된 해상 경계선의 침범 때문이다.

     

    2세대 지도자 김정일은 1990년대 들어 증강된 해군력을 바탕으로 서해 NLL를 불법 월선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1999년 제1연평해전을 시작으로, 2002년 제2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과 2010년 천안함 폭침 등을 감행했다.

    김정은은 작년 2월 신형 대함미사일 검수사격 시험을 지도하는 자리에선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에 ‘새로운 국경선’을 그어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는 “한국 괴뢰들이 국제법적 근거나 합법적 명분도 없는 유령선(線)인 북방한계선이라는 선을 고수해보려고 발악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1차 연평해전 직후인 1999년 9월에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과 2007년 11월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는 ‘해상경비계선’을 각각 주장했다. 유사한 자의적인 해상 경계선을 지속적으로 내놓았으며 모두 현행 NLL보다 남쪽에 그어 놓은 선이다.

     

    중간계선에 대한 북한의 의도는 NLL을 대체하는 새로운 해상 분계선 획정이다. 북한은 백령도 등 서해 5도보다도 훨씬 남쪽으로 일방적으로 그은 경비계선을 제시한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르면 국가 간 12해리 영해가 중첩될 때 중간에 긋는 선이 중간계선이다. 이 방식으로 서해 5도 쪽에 선을 그으면 NLL 남쪽에 경계선이 생긴다. 국제법상 국가 간 영해가 중첩될 때 해상 경계를 정하는 중간계선을 내세워 그럴듯한 현상 타파를 시도한다.

     

    2018년 9·19 평양 군사 합의에서 남북이 합의한 ‘서해 평화 수역’의 조성은 평화라는 용어와 달리 북한의 기습에 대한 우리 해군력의 대응 약화를 의미한다. NLL이 남하하면 유사시 강화도 인근 해상은 수도권을 공략하는 출입구가 될 것이다.

    유엔해양법협약은 1982년에 만들어진 일종의 관습법이고, NLL은 그보다 훨씬 앞서 6·25전쟁 정전 직후 그어져 굳어졌기 때문에 NLL이 실질적인 남북 해상 경계선이라는 우리 입장은 확고하다.

    다음은 핵 추진 잠수함 등 신형 함정의 건조 관련 러시아의 첨단 기술 지원 문제다. 김정은은 지난 4월 역대 최대인 5000t급 신형 구축함 최현호의 첫 무장 시험 사격을 참관하고 ‘해군의 핵무장화’에 속도를 내라고 지시했다. 최현호는 위성배열 레이더를 탑재한 ‘북한판 이지스 구축함’으로 평가되며,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등 다양한 미사일 발사대를 장착했다.

     

    북한은 청진조선소에서 진수식 도중 좌초한 5000t급 강건함을 러시아의 지원으로 23일 만에 바로 세우고 다시 진수했다. 남측에서는 진수식에서 좌초한 북한 선박 기술의 낙후성을 폄하했지만 초고속으로 밀어붙이는 평양의 군사 총력주의를 외부에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김정은은 미국에 맞서기 위해 자위권 차원에서 매년 2척씩의 구축함 건조 계획까지 밝혔다.

     

    북한은 신형 구축함에 이어 순항함과 호위함에 이어 핵 추진 잠수함도 건조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핵무기까지 포함하면 남북한 군사력 비교는 무의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한미 동맹으로 균형을 맞추지만 트럼프 국제 질서 재편 과정에서 미래 불확실성은 심화될 것이다. 매년 남한은 재래식 무기 세계 5위, 북한은 35위라는 미국 민간단체(Global Firepower)의 허황한 발표만 믿고 북한의 군사력을 경시하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최근 서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회색지대 도발’이 강화되고 있다. 서해잠정수역에 인공 구조물을 무단 설치했다. 감시 장비를 탑재한 중국 군함이 군산 주한 미군 공군 기지에서 불과 100여㎞ 떨어진 해역까지 수백 차례 출몰했다.

    군사력의 불균형이 도발로 이어지는 동서고금의 역사는 비일비재하다. 해군력에 기반한 인천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사실을 기억하자. 6·25전쟁 75주년에 드는 무거운 단상이다. 

     

    2025년 6월 25일 조선일보 남성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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