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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십계명을 되돌아보며종교문화 2025. 12. 16. 07:43
출애급기 20장 3절과 4절 십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라는 준엄한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형상으로서의 우상을 금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경계하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 그렇게 믿고 생활하고 있는가?' 돌아보면, 고백하건대, 제 삶의 현실은 그 거룩한 계명과는 종종 멀어져 있습니다.
생의 몸부림, 그리고 우상
우리 삶의 가장 큰 우상은 어쩌면 '살려고 하는 생의 몸부림'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의 생존, 안락함, 성공을 향한 집착은 알게 모르게 하나님을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냅니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 기도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이기심이라는 이름의 우상입니다.
나의 성공, 안위 그리고 소유입니다. 다시말해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감, 불편함과 희생을 피하려는 자기 합리화와 더 많이 가지려는 끝없는 욕망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중심을 차지하며, 십계명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을 수시로 무너뜨립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의 아름다운 가치들은, 나의 이익 앞에서 자주 외면되고 잊혀집니다.
외치는 입술과 외면하는 양심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 '사랑과 배려'를 외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말로는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꿈꿉니다. 그러나 정작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양심의 소리는 쉽게 묵살됩니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약간의 손해조차 감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염원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요구하는 희생과 헌신은 '이 다음에', '나중에'라는 핑계 뒤로 미룹니다. 머리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한다고 하지만, 그 깨달음이 뜨거운 가슴을 거쳐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주저함과 타협이 있습니다. 지성(知性)은 있지만, 실천(實踐)이 없는 공허한 신앙입니다.
반성의 다짐
이러한 반성은 쓰라리지만, 동시에 희망의 시작입니다. 인간은 연약하고 끊임없이 실수하지만, 그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빛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이 바로 회개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삶의 모든 우상, 즉 이기심, 탐욕, 그리고 타협을 걷어내고, 다시 그분과의 관계를 제일 우선순위에 놓아야 합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 '그분 안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십계명은 우리를 억압하는 낡은 율법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삶의 나침반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 순간, 나의 이웃에게, 나의 일터에서, 나의 가정에서 어떤 사랑과 배려를 실천하셨을지를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진정한 첫 계명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가장 작은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2025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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