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X 친구보다 진한 '고등학교 동창낙서장 2026. 3. 18. 18:31
흔히들 '불X친구'라고 하면 코흘리개 시절 고향 뒷동산을 누비던 초등학교 친구를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보다 더 진하고 귀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바로 3년 내내 한 교실에서 살을 맞대며 공부하고, 평생을 같은 직종에서 분투하며 살아온 우리 고등학교 동창들입니다.
국립 일류학교라는 자부심 하나로 뭉쳤던 그 시절, 우리는 이해관계 하나 없이 오로지 순수한 우정만을 나누었습니다. 졸업 후에도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계통의 직장에서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며 살아왔으니, 우리네 인생은 참으로 닮아있습니다.
어느덧 우리 나이 여든다섯입니다. 이제는 하늘이 부르면 언제든 "예" 하고 가야 할 입장이 되었지요. 몇 달 전, 부산에 있던 친구를 떠나보내며 서울에서 달려가 유족들과 슬픔을 나눌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차례가 오더라도 서운해하지 말자. 이토록 좋은 친구들과 긴 세월을 함께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라고 말입니다.
그 감사함 덕분인지, 우리는 여전히 매달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산 둘레길을 호기롭게 걷곤 했는데, 이제는 그저 정갈한 점심 한 끼 나누며 나누는 '수다'가 최고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지난달 모임에서는 한 친구가 이번 달은 자기가 꼭 한턱내겠노라 선언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몸이 조금 불편한 친구들까지 얼굴을 비췄지요. 대접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니, '받는 기쁨'보다 '주는 즐거움'을 이미 터득한 도사처럼 참으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았는지, 다른 친구들도 질세라 다음번엔 자기가 쏘겠다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친구들을 곁에 둔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친구가 내는 밥 한 끼에 담긴 정을 느끼며, 저는 마음속으로 작게 외쳐봅니다. "여보게 친구들, 이 즐거운 모임이 오래도록 이어지도록 우리 그저 건강하게만 살자고!"
2026년 3월 18일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AI 시대, 기술보다는 사람의 마음 (0) 2026.03.21 봉은사 매화꽃 (0) 2026.03.20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의 아름다운 인생 (0) 2026.03.17 높은 곳을 향한 갈망보다 낮은 곳에서 누리는 자유 (1) 2026.03.17 인공지능의 '아부'를 넘어, 진실한 세상을 꿈꾸며 (0) 202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