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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만 총총 뜬 깜깜한 새벽녘이다. 아직 어둠이가시지 않은 부엌에서 어머니의 아침준비가 한창이다. 잠자는 우리가 깰까봐 조심조심 밥을 짓는 어머니의기척이 적막을 깬다. 형이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더니 집을 박차고 허겁지겁 뛰어나간다. 길이 어두우니 조심해서 가라며 대문까지 나간 어머니는 형이 달려간 길을 물끄러미 바라 보신다.
그렇게 매일 어머니는 자식들이 학교에 늦지않도록 먼동이트기도 전에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셨다. 나보다 여섯 살 위인 형은 서울로 유학 갔다가 6.25전쟁이 터져 고향으로 내려왔다. 대신 16킬로 미터나 떨어진 용인에 있는 중학교에 임시로 다녔다. 그런 형이 몹시 부러웠다. 나도 빨리커서 중학교에가고 싶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상급학년이 되면서 나는 어렴풋 중학교에 갈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었다. 그 당시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을 보낸다는 것은 오늘날 해외유학을 보내는 것 만큼이나 어려웠다. 게다가 우리집이 자식을 둘씩이나 유학보낼만큼 부유한 집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60가구 밖에 안되는 우리 시골마을에서 서울로 유학을 보낸 집은 우리 집 뿐 이었다.
중학교에 가려면 공부를 잘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공부에 취미를 갖기시작 한것도 그때였다. 농사일이 많아 거들어야 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머지않아 일하게될 터인데, 지금은 가서 공부나하라”며 말리셨다. 그러면 못이기는척하며 방으로들어가 공부했다.
드디어 졸업식 날이되었다. 일찍 가서 졸업식 예행연습을 한뒤 강당에 들어섰더니 수 많은 학부형들이 자리를 가득메웠다. 어머니도 보였다. 식순에의해 우등상을 수여하는 차례가 되었다. 사회자가 호명하는 명단속에 나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을 받은뒤 몰래뒤를 돌아보니 어머니의 미소 속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시골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쳤다. 비록 도시로 유학하지는 못했지만 고등학교는 서울,요사이 특목고에 해당되는 학교에 진학하여 전액 장학금으로 졸업하였다.
여름 방학때 시골에 내려가 농사일을 도우려고 할 때면 공부나 하라며 말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고 싶고 그립다.
2012년11월30일양병택
추신: 조선일보에서 맛나는 글쓰기 특강을 수강할 때 숙제로 제출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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