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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의 탁란, 그 섬찟한 신비 앞에서낙서장 2026. 5. 7. 02:03
살아가다 보면 세상의 질서가 우리가 배운 '권선징악'의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최근 제 마음을 어지럽힌 것은 바로 자연계의 '탁란(托卵)' 현상이었습니다.
1. 섬찟한 생존, 뻐꾸기의 탁란
뻐꾸기는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습니다.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먼저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아직 부화하지도 않은 다른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버립니다. 오직 저 혼자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는 그 본능, 그리고 밀어내기 좋게 진화한 그 몸의 형체는 신비롭다기보다 차라리 '섬찟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잔인한 질서를 만드셨을까? 이것 또한 찬양해야 할 창조주의 섭리인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2. 욥기에서 찾은 대답: 인간 지혜의 한계
이 깊은 고뇌 끝에 성경의 욥기를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욥 역시 까닭 없는 고난 앞에서 "왜?"라고 울부짖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자연 만물의 기묘한 질서를 나열하시며 이렇게 되물으셨습니다.
"네가 이 거대한 우주의 설계를 다 이해할 수 있느냐?"
결국 욥은 "내가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나타내었나이다(욥 42:3)"라고 고백하며 평안을 얻습니다. 우리가 보는 뻐꾸기의 비정함은 수만 피스의 퍼즐 조각 중 어두운 조각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전체 그림을 그리시는 창조주의 시선에서 보면, 그 또한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생태계의 균형과 질서를 유지하는 한 축이겠지요.
3. 우리가 살아야 할 자세: 본능을 넘어선 '영성'
동물은 살기 위해 남을 밀어내는 것이 본능이지만, 우리 인간은 다릅니다. 우리는 그 본능을 거슬러 남을 돕고 배려하며 '권선징악'의 가치를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영성'과 '양심'을 선물 받았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자연의 냉혹함을 보며 제가 느낀 그 '섬찟함'은, 역설적으로 제 안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입니다.
글을 맺으며, 세상에는 여전히 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다 분석하려 애쓰기보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창조주의 신비'로 남겨두려 합니다.
다 알 수는 없어도,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시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작은 힘이라도 보태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뻐꾸기의 비정함을 보며 오히려 인간이 지녀야 할 '따뜻한 가치'를 더 깊이 묵상해 봅니다. 오늘도 감사와 배려, 그리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2026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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