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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가는 마차와 종교의 본질종교문화 2026. 5. 8. 05:56
언젠가 읽었던 짧은 수필 한 구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산 정상이라는 천국을 향해 마차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걷는 수고를 덜어준 마차는 분명 편안함을 주었지만, 그 마차를 끄는 소들이 내뿜는 배출물로 산길은 서서히 더러워졌습니다.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을 내며 수많은 마차가 산을 뒤덮었고, 결국 그들이 동경하던 성스러운 산은 악취와 오물로 가득 찬 공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편안하게 천국에 가고자 선택한 '마차'라는 수단이, 역설적으로 그들이 꿈꾸던 천국을 파괴해 버린 것입니다.
본질을 벗어난 오늘날의 종교관
이 우화는 오늘날 우리의 종교적 태도에 엄중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 기복 신앙, 그리고 내 종교의 안위만을 위해 타 종교를 배척하고 무시하는 태도가 바로 그 '오염된 마차'가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종교라는 이름의 마차에 올라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망가뜨리고 있는 이웃의 마음과 공동체의 가치는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탁란'을 보며 자연의 비정함을 비판하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이기심을 종교라는 둥지에 밀어 넣고 그것을 '정의'라 믿으며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종교의 본질: 이타심과 순종
제가 생각하는 종교의 본질은 이타심(利他心)과 배려입니다. 신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전을 암송하거나 예배에 참석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나보다 낮은 곳을 살피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신이 우리에게 맡긴 참된 소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나온 길에 꽃향기가 남게 하는 것입니다. 나 한 몸 편하기 위해 길을 더럽히는 마차가 아니라, 거칠고 험한 길이라도 이웃의 손을 잡고 묵묵히 걷는 발걸음 속에 진짜 천국이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종교 생활이란
결국 올바른 종교 생활이란 '삶으로 증명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나의 평안이 타인의 눈물이 되지 않게 살피는 마음.
타 종교의 가치를 존중하며 상생의 길을 찾는 태도.
신의 뜻을 내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쓰지 않는 겸손함.
우리가 타고 있는 마차가 지금 길을 더럽히고 있지는 않은지,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우리가 사랑해야 할 세상을 냄새나는 곳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오늘도 산 정상보다는,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 한 번 건넬 수 있는 그런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2026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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