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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여자축구단이 보여준 북한의 민낯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6. 1. 05:42
北은 스포츠도 정치 도구 감정 억제와 돌출 발언은 충성과 생존 위한 선택 같은 경기장 공유했지만 전혀 다른 두 사회를 봤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도 확인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에서 우승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이 평양에 귀국해 환영을 받았다고 27일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방남해 수원에서 열린 AWCL 4강전과 결승전을 치렀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최근 한국을 방문해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이 방한 소식을 접하는 순간 지난 2월 김정은이 9차 당대회 이후 열린 열병식에서 한 발언이 떠올랐다. 그는 당시 “한국과의 관계에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있다면 우리 국익에 준한 냉정한 계산과 철저한 대응뿐”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대남 비난 차원을 넘어, 남북관계를 철저히 이해관계에 기반한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고착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북한은 최근 헌법과 당규약을 개정하며 통일과 동족 개념마저 지우고, 남북관계의 틀 자체를 없애려 하고 있다. 이번 선수단 파견 역시 북한식 ‘국익 계산법’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북한 입장에서 스포츠는 노골적인 정치 선전보다 훨씬 효율적인 정치 도구다. 스포츠 무대를 통해 자신들이 주장하는 ‘두 국가론’을 자연스럽게 각인시키려 한 것이다.
현실적인 계산도 깔려 있다. 북한 여자축구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종목이다. 과거 남북 간 경기에서 한국팀을 3대0으로 꺾은 적이 있고, 국제무대에서도 꾸준히 강팀으로 평가받아 왔다. 북한은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선수단 방한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승리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상금으로 경제적 실익까지 챙길 수 있다면 국익에 부합한다. 한국에 비해 현저히 열세인 남자축구였다면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바로 북한식 ‘국익 계산법’이다.
북한 내고향체육단은 김정은 경호를 전담하는 호위총국 소속이다. 김정은의 개인 체육단이나 다름없다. 북한 체제에서 최고 지도자와 직접 연결된 조직의 의미는 특별하다. 스포츠팀이 아니라 권력의 사조직에 가깝다. 김정은은 농구를 즐기던 시절에 자신의 전용팀 격인 ‘번개팀’과 ‘우뢰팀’을 운영한 적이 있다. 호위총국 소속으로 ‘리명수 축구단’도 활동했다. 이러한 팀의 승리는 곧 지도자의 업적으로 인식된다.
이번에 방한한 여자축구 선수들은 육체적으로 서방 선수들 못지않았다. 체격과 체력, 경기 운영 능력 모두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는 김정은의 직접적 관심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최고급 수준에서 선발과 훈련, 영양 공급이 이뤄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식량난과 경제난을 겪고 있는 주민들과 달리, 체제 선전에 활용되는 분야에는 자원이 집중되는 북한 체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경기에서 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가진 품격과 여유를 다시 확인했다. 공항에서는 시민단체가 북한 선수단을 환영했고, 경기장에서는 시민 공동 응원단이 남북 선수들을 함께 응원했다. 상대가 북한이라고 해서 적개심부터 드러내지 않았다. 스포츠 자체를 존중하고 선수들을 예우하는 모습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개방성과 자신감이 뚜렷이 드러났다.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리유일 감독은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의 ‘북측’ 표현에 공식 국호 사용을 요구하며 항의한 뒤 자리를 떠났다. /뉴스1
반면 북한 선수단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입국 과정에서 자신들을 환영하는 우리 국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표정하게 숙소로 이동했다. 경기 전후 북한 감독은 침묵과 경직된 태도로 일관하며, 공동 응원단에 대해 “관심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응원해 줬는데도, “감사하다”는 인사 한마디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론 그들 개인을 탓할 수는 없다. 북한 밖에서의 말과 표정은 단순한 표현이 아닌 체제의 감시와 평가를 의식해야 하는 문제다. 남측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만으로도 엄청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 두려움이 언행을 통제하고 감정을 억눌렀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행동은 체제에 대한 충성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자유롭게 웃고, 인사하며, 감사하는 것조차 제약받는 현실은 북한 체제의 한계다.
내고향여자축구단 감독은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북측 여자축구’라는 한국 취재진의 표현에 “국호를 제대로 부르라”며 항의하고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떠났다. 이는 당국의 사전 지시나 감독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된 돌발 행동으로 보인다. 북한은 정상국가가 되겠다고 하지만, 정상국가가 되기에는 아직 한참 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경기는 축구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우리는 같은 경기장을 공유했지만 서로 전혀 다른 체제를 살아가는 두 집단의 모습을 보았다. 한쪽은 상대를 향해 자유롭게 박수와 응원을 보낼 수 있는 사회이고, 다른 한쪽은 환대 앞에서도 마음을 숨기고 감정을 억제해야 하는 사회다. 그 장면에서 우리는 북한 체제의 민낯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2026년 6월 1일 조선일보 이일규 前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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