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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만 끌어내리면 정의로운 대한민국되나?스크랩된 좋은글들 2019. 5. 1. 08:32
작가 조지 오웰은 썼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70년 전 발표한 오웰의 소설 '1984'는 '역사 전쟁'이 한창인 지금의 대한민국을 내다본 듯하다.
이 정부는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욕망이 유달리 강하다. 대통령은 틈만 나면 친일(親日) 잔재를 청산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해방 이후 현대사를 친일파와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이끌어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2차 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함께 성공한 나라는 없다"(2018년 8·15 기념사)고 추켜세운 건 빈말 같다.
1948년 8월 15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대한민국 '성공의 역사' 출발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사건을 깔아뭉개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인 2016년 '1948년 건국'을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얼빠진 주장'이라고 했다. 2017년 대통령 취임 후 첫 8·15 경축사에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 100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선언했다. '1948년 건국'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없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1948년'을 배척하기 위해 '1919년'만 내세운다.
◇'이승만 사냥'에 동원된 김구, 토사구팽
'1919년 건국' 동맹군엔 좌파 민중사학자들이 포함돼 있다.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이 끝나자마자 이들은 공개적으로 '임정법통론'에 등을 돌렸다. 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 등 민중사학 진영 3개 단체는 지난 4월 12일 학술대회를 열고 '자아비판'에 나섰다. '보수 진영의 1948년 건국설이 제기됐을 때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침묵 속에 방관하든가 1919년 건국설에 동조했다' '임정법통론의 한계를 알면서도 임정 법통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 내몰려 스스로 임시정부주의자가 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임정의 정통성을 믿지 않으면서 '1948년 건국'에 반대하기 위해 '1919년 건국'에 편승했다는 고백이다. 이승만을 끌어내리는 데 이용한 김구를 '토사구팽(兎死狗烹)'한 셈이다.
좌파 진영의 임정에 대한 적대감은 뿌리 깊다. 남로당 당수 박헌영은 임정을 '인민과 단절된 망명가 클럽'이라고 비판했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를 이끈 여운형도 임시정부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도 상해에 있어 보았지만 임시정부에 도대체 인물이 있다고 할 수 있소? 밤낮 앉아 파벌 싸움이나 하는 무능무위한 사람들뿐이오. 임시정부 요인들 중에서 몇 사람은 새 정당이 수립하는 정부에 개별적으로 추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할 수는 없소."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을 맡은 대통령 직속 기구에 몸담은 김정인 교수의 논문('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성 인식의 정치성과 학문성')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흐름을 계승한 1980년대 좌파 민중사학 진영은 임정의 정통성은 물론 역할 자체를 낮게 봤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임정을 민족해방운동을 지도한 영도기관으로 볼 수 없고, '일개 독립운동단체로 전락'했다고 썼다. 그런데도 2016년 8월 "'임정 법통' 계승이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마저 부정하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는 성명에 강만길·안병욱 교수 등 원로 학자와 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 등 3개 단체가 서명했다.
◇反이승만이 문재인 정부 역사코드
문재인 정부와 민중사학 진영은 이승만이 주도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한 적대감을 공유한다.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는 이승만의 권력욕과 분단 획책의 결과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 교사'로 알려진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8·15 직후 분단을 극복하려던 통일민족국가 수립운동은 반공과 분단을 내세운 미국과 이승만 세력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고 썼다. 1980년대 이후 민중사학 진영은 이런 주장을 논문과 책으로 확대재생산했다. 잔혹한 숙청과 탄압으로 인민을 노예로 만든 김일성의 북한을 봤으면서도 체제는 상관없이 '통일'했어야 한다는 식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 내걸린 독립운동가 그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 내걸린 독립운동가 그림. 대통령직속위원회는 4월 초 임정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광화문 정부청사와 이곳에 대표적 독립운동가 그림을 걸면서 임정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뺐다. /남강호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정부 수립 70주년을 겸한 8·15 경축사에서 이승만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이낙연 총리가 읽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에도 임정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이름은 없었다. 반(反)이승만이야말로 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사코드'다.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한완상)가 임시정부 100년을 기린다며 서울 광화문 정부 청사에 내건 독립운동가 10명의 초상화에 이승만이 없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한 여운형까지 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위원회는 "예술가들에게 맡기면서 특정 인물을 넣거나 빼라고 한 적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대통령 뜻을 기막히게 헤아리는 위원회다.
KBS도 뒤지지 않는다. "이승만은 괴뢰"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막말을 주말 저녁 시간에 내보내고도 변변한 해명조차 없다. 대통령과 정부, 이른바 '공영방송'까지 손잡고 벌이는 '관제(官製) 역사 정치'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이승만 혼자 대한민국을 만든 건 아니다. 허물도 있다. 하지만 그를 빼놓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설명할 수 없다. 이승만만 욕하고 내동댕이치면 잘못된 역사가 바로잡히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될까.
2019년 5월 1일 조선일보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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