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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배려, 피어나는 행복낙서장 2019. 12. 23. 08:41
작은 배려, 피어나는 행복
어린이를 위한 연주회를 지휘한 적 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해 클래식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일종의 음악극이다. 딱딱한 클래식 연주회와 달리 무대 위엔 아이들이 좋아할 소품과 영상이 준비됐고, 객석에 앉은 아이들은 소란도 피울 수 있는 즐겁고 떠들썩한 공연이었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연을 보신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바로 옆 좌석에 아빠와 어린 딸이 앉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딸이 시각장애인이었다. 배우들 대사와 노래는 들을 수 있었지만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볼 수가 없으니 아빠가 딸에게 배우들 동작과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단다. 옆에 앉은 부녀가 다른 어린 관객들과 다름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공연을 즐기는 동안 오히려 부모님만 옆으로 눈물을 훔치셨다고.
몇 년 전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페라를 제작하는 분을 알게 됐다. 성악가와 오케스트라가 오페라를 공연하는 동안 한글 자막과 무대 상황은 전문 성우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동안 오페라를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들 반응도 뜨거웠지만 공연장을 찾은 일반인들 또한 큰 감동을 받고 평소 인지하지 못했던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을 가슴 깊이 느낀 자리였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도 행복을 드릴 수 있는 음악가라는 내 멋진 직업은 사실 장애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연말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연주하는 '합창' 교향곡의 작곡가 베토벤은 자기가 쓴 위대한 작품의 음표 하나조차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었다. 전신마비를 극복하고 휠체어에 앉아 노래하는 바리톤, 대학 과정을 마치고 어엿한 전문 연주자로 활동하는 지적장애 첼리스트, 팔꿈치까지만 있는 오른팔에 활을 묶어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함께 음악을 하는 행복과 더불어 내 인생에 큰 가르침을 준 스승 같은 분들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행복이 오갈수록 우리 사회가 더 아름다워진다고 믿는다. 굳이 무대 위가 아니어도 좋다. 걸음이 불편하신 분을 위해 엘리베이터 열림 단추를 꾹 누르고 있는 아이의 작은 배려와 미소에서도 행복은 피어난다. 더 많은 행복이 얼마 남지 않은 2019년을 가득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선일보 백윤학 지휘자·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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