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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진짜 애국자입니까?
    낙서장 2020. 2. 28. 07:25

                     누가 진짜 애국자입니까?

    국란(國亂)입니다. 감염 공포와 정부 불신이란 유령이 허공을 떠돌고 있습니다. 정부 방역 실패로 초토화한 대구·경북은 낙인 효과로 더욱 고통받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엔 문재인 대통령 탄핵 요구까지 올라왔습니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서로를 헐뜯기만 합니다. 신천지 교단은 포퓰리즘적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의 대량 입국을 두고 민심이 폭발 직전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처절한 국란 극복의 용기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사투(死鬪)를 벌이는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와 의료인들의 헌신이 눈물겹습니다. 세계 보건 전문가들은 한국 전문가들의 코로나 검사 처리의 신속성과 규모에 놀랍니다. 오늘도 대구로 달려가는 의료인들의 초인적 희생에 국민은 감읍(感泣)합니다. '하루에 1시간은 잔다'며 머리를 짧게 깎은 정은경 질본 본부장이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방역 전문가들의 절제된 강인함과 불굴의 헌신이 나라를 지킵니다. 음지에서 일하는 진짜배기 애국자들입니다.

    질본과 의료인들의 필사적 노력은 청와대·집권 여당의 총체적 무능과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대구·경북을 비롯한 지역 거점 병원과 의료인들에 대한 정부 지원이 태부족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구 봉쇄' 발언으로 민심에 불을 지릅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청와대가 국민 생명 보호를 위해 기본 중의 기본인 마스크 공급조차 해결 못 합니다. 청와대는 사태 초기 골든타임까지 놓쳤습니다. 코로나19 발원지인 후베이성에 더해, 확진자 500명을 넘어섰던 중국 5개 성발 외국인의 입국을 선제적으로 금지했어야 마땅합니다. 최고의 방역 전문 단체인 질본과 대한감염학회의 건의조차 무시한 치명적 실책이었습니다.

    이젠 상황이 일변했습니다. 지역 확산이 본격화합니다. 코로나19 유입 차단에 주력했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코로나 팬데믹(pandemic·세계적 유행병)과 지역사회 확산이 시간문제라고 판단합니다. 봉쇄에서 피해 최소화로 정책을 바꾸고 있는 겁니다. 중국인 입국 차단을 둘러싼 우리 사회 논쟁에도 암시하는 바가 큽니다. 코로나19의 전파력이 봉쇄 장벽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가져온 전(全) 지구적 위험 사회 현상입니다. 이탈리아의 코로나 대(大)유행에도 EU 각국이 국경 봉쇄를 고려하지 않는 현실도 시사적입니다.

    코로나 재앙에서 뼈아픈 건 문 대통령의 지도력 부재입니다. 대통령은 결정적 순간에 중대 오판(誤判)을 거듭했음에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확산 책임을 신천지 집단에 떠넘기는 발언은 국정 최고지도자의 책임 윤리에 대한 무지를 보여줍니다. 정치적 책임 윤리는 결과로 판정됩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사태의 모든 궁극적 책임은 내게 있다'고 말할 용기를 결여했습니다. 진솔한 육성(肉聲)으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공감의 리더십도 외면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통령의 자격을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 비상사태입니다. 전투 중엔 장수를 바꾸지 않습니다. 우린 우선 시민의 의무를 다해 전염병과 싸워야 합니다. 신천지 집단의 책임은 준엄하게 묻되 그들을 악마화해선 안 됩니다. 불투명한 신천지는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입니다. 전염병의 세계사는 특정 집단을 낙인찍어 박해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려는 야만의 기록으로 가득합니다. 권력의 정략과 대중의 분노가 그런 야만을 부추길 때 시민정신으로 막아야 합니다. 종교 단체는 모든 예배·미사·법회를 가정 예식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한국 천주교가 236년 만에 처음으로 모든 미사를 중단한 것은 시민의 의무를 따른 겁니다. 신앙과 집회의 자유가 국민 생명을 위협할 때 진정한 신앙인의 선택은 자명합니다.

    우린 경이로운 회복 탄력성을 가진 나라입니다. 피와 눈물의 한국 현대사가 웅변합니다. 최소한 3월 말까지 사적 모임 중단, 휴교와 가정학습, 재택근무, 원격진료와 원격강의 등으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거리 두기'에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총선과 장기 집권을 겨냥한 정략을 멈추고 국민 생명을 앞세워야 합니다. 질병관리본부의 과학적 판단과 결정을 정부 정책의 최고 준거로 삼아야 합니다. 과학과 시민의 의무로 중(重)무장한 국민만이 코로나 재앙을 이깁니다. 공포의 유령엔 과학과 이성으로 대항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시민의 의무를 다할 때 삶의 비상구는 열립니다.


                              2020년 2월 28일 조선일보 윤평중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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