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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하며 살고 봉사하며 살고
    낙서장 2015. 12. 5. 06:56

            감사하며 살고 봉사하며 살고

     

    교회에서 선교와 섬김의 차원에서 운영하는 노인학교인 ‘늘 푸른 대학’이 있다. 우리 같은 노인들이 시간을 보내기 딱 맞다. 그곳의 점심때에는 많은 봉사요원들이 자기 집 부모들을 모시는 것 같이 친절하게 서빙을 해준다. 그분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베어있다. 그분들을 볼때마다 나도 그들처럼 감사함을 몸에 지니고 살고 싶다. 언제부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스스로 내 자신을 들여도본다.

     

    직장을 퇴직하면서 잠시 마음속으로 방황은 했지만 그때까지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니 감사함을 느꼈다. 어려워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시절 우연히 서울에 시험에 붙기만 하면 3년간을 장학금을 주어가며 공짜로 공부시켜준다는 고등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응시원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설명하면 길지만 형님이 낯모르는 중학교에 찾아가 그학교 졸업장을 구해왔다. 그학교에 갔더니 그때 마침 졸업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옆에 서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졸업사진을 보면 그 사진속에 있는 선생님 학생들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는 교장선생님이 누군지? 선생님 성함이 누군지 처음부터 몰랐기에 기억하는 것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너 진짜 서울 학생맞아하면 그 사진으을 들여댈 마음으로 소중히 보관했다.

     

    그렇게해서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것도 관비생으로 떳떳하게 견뎌냈으니 감사할 뿐이다. 사실 관비 탈락할까봐 마음도 많이 졸였다. 탈락은 나에게는 퇴교나 다름없었기에 시험기간에는 생전 처음 보는 카페나라라는 잠쫏는 약을 친구들과 경쟁이나 하는 듯이 먹어댔다. 그덕분에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중앙전화국에 갔다가 다시 대졸 공채로 한전으로 옮겼다.

     

    한전에 갈 때도 실력이 있어 간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다. 영어가 약해 일어 원서를 가지고 시험공부를 했는데 시험전날 봤던 문제가그대로 나왔다. 그러니 전공과목은 거의 다 맞은듯했다. 그리고 한전에 입사했다.

     

    1960도말에 우리나라에 전산화가 시작되었다. 한전도 그당시에 전산화를 시작했고 1971년 7월 1일 대형컴퓨터인 IBM 360이라는 시스템이 설치되었데 메모리가 고작 32K 바이드였다. 메모리가 32K 바이트란 지금의 휴대폰보다도 보잘것없이 적은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큰방에 설치되어있는 대형 컴퓨터였다. 그속에서 컴퓨터 성장과 함게 나도 성장했다 컴퓨터를 총괄하는 정보처리처장으로  퇴직했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감사함을 생각하면서 퇴직하고 별볼이없는 백수이니 이제 조금이라도 의미있는 일을 하겠다며 시작한 것이 자원봉사였다. 처음에는 회사에 다닐 때 청량리 한구석에서 걸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던 밥퍼 최일도 목사가 무료병원을 짓는데 자금을 마련하기위해 천사회원을 모집하는데 참가하였다. 처음 가입하려고 전화했을 때 그쪽에서 가입하려면 백만원을 내야하는데 알고 이있냐며 물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일년에 한사람씩 우리가족이 모두 천사회원이 되었고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병원준공식을 한다며 초대받아 갔더니 여러 천사회원들 덕분에 병원 건물 준공되었지만 병원은 건물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몸으로 때우겠다며 시작한 것이 자원봉사의 시초가 되었다.

     

    그곳에서 병원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다가 마침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기술 전수 해외 자원봉사 모집을 하는것을 보고 재능나눔 봉사라 생각되어 그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고 지원하여 해외봉사자로 2002년부터 만2년간을 스리랑카 현지학생들에게 컴퓨터를 몸짓발짓하며 어설픈 영어로 강의했다.

     

    퇴직후 영어를 하여야할 기회가 있을것이라 생각하고 그기회를 대비하여 서울 강남구청에서 운영하는 외국어 학원에서 풀데이로 1년간 영어를 배운 것이 도움이 되어 해외자원봉사가 가능했다. 스리랑카에 가서 그들에게 공부도 시켜주고 졸업기념 여행도 주선하였고 양로원도 방문하는 등 미력이나마 대한민국의 대한 호감도를 증진하는 민간 외교사절의 역할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곳에서 2년간의 자원봉사를 마치고 2004년말 귀국하여 해외에서만 봉사한 것이 마음에 걸려 서울 자원봉사센터에 등록하고 2005년 10월초 청계천이 일반인에게 개방됨에 따라 영어도우미로 국내 자원봉사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2002년 처음으로 자원봉사 할때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 시작을 했고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매스콤에서 내이름이 나올때는 너무 과장되어 소개되기에 감사함고 죄송함이 함께 하면서 봉사가 남을 위한다기보다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체험하는 계기도 되었고 그 때문에 더욱 열심히 활동을 하려고노력했다.

     

    돌이켜보면 자원봉사가 지금처럼 흔하지않던 때 청계천 자원봉사를 하면서 봉사시간 1000시간을 넘겼다며 서울시 자원봉사센터에서 자원봉사왕이란 메달도 받았다. 그리고 금년 12월 성동구청 자원봉사의 날에는 봉사시간이 3000시간이 넘었다며 구청에서 봉사왕이라며 인증패를 해주었다. 별로한 것은 없는데도 인정해주고 축하해주니 감사하다.

     

    2년전 청계광장 안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을 때 한 외국 인이 나를 찾아왔다. 태국에서 신혼여행으로 한국에 왔는데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오다가 짐을 놓고 내렸다며 도움을 청했다. 타고 온 차표을 보고 버스회사와 연락하여 덕수궁 버스 정거장에 함께 가서 짐을 찿아주었더니 고맙다며 즐거워했던 일은 지금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2015년 3월 신당동 박정희 대통령가옥이 일반에게 개방됨에 따라 그곳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전시물을 해설하는 도우미로 있어 기분은 좋지만 내스스로 지식이 충분하지못해 나름대로 관련자료들을 열심히 찾아 공부하려고 하지만 여의치못해 마음이 불편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앞으로도 감사하며 이런 생활을 하고 싶기는 하지만 몸 콘디숀이 따라 줄까 걱정이 되기도한다. 오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겠고 싶다.

     

     

     


    <2016년 3월호 한전 전우회보에 본내용이 기사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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