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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온 삶에서 얻은 교훈: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낙서장 2021. 2. 13. 21:55

    설날 아침에 코로나 때문에 특별이 할 일없이 방콕하면서 지난 추억을 감사한 마음으로 횡설수설 만든글을  올려봅니다.

     

    625전쟁시절 촌에서 자란 나는 가정 형편상 서울로 진학할 형편이 못되었다. 시골에서 복음중학교에 들어갔다. 그 학교는 서울 성서대학 창시자인 강태국 목사님이 아담의 예덴 동산을 꿈꾸며 용인군에 있는 야산을 이용하여 농도원(農道園)을 개척하고, 이런 철학과 선교를 위해 복음중학교를 설립했지만 문교부로부터 정식인가는 받지 못한 학교였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성경시간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니라 는 말씀을 들었다. 또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들은 것도 그 시절이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기는커녕 학교에서 작업 시간이면 공부하러 왔지 일해라 왔냐고 하며서 불평을 했고 기도는 외면하고 있다가도 무슨 다급한 일이 있으면 그때만 구하라 그려면 주실것이라는 성경구절을 떠올리며 열심히 기도 했다.

     

    그 학교 졸업할 즈음 서울에 정보통신요원을 양성하는 특목고가 있는데 그 학교만 들어가면 장학금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다닐수 있다며 형님이 1958년 2월 중학교 졸업장도 없는 나를 무조건 서울로 데리고 갔다. 졸업장이 없어 걱정이 되어 그것을 해결해달라고 기도했다. 서울 가는 도중에 버스에서 중학생 60명 모집에 한명도 없다는 중학교가 있다는 D일보 신문기사를 봤다. 그 기사를 보며 형님은 그 학교에 가서 사정하면 중학교 졸업장을 만들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정말로 그 학교 찾아가 졸업장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하여 그학교에 들어가 3년간 국비생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다. 그것이 첫 번째 기도 응답이었다.

     

     

    다음 기도의 응답은 일은 회사 들어갔을 때 일어난 일이다. 고등학교를 장학금 받고 졸업했기에 의무적으로 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에 근무해야했다. 그래서 그 기간에 낮에는 직장, 밤에는 대학생활을 하는 주경야독 생활로 의무기간을 때웠다. 의무기간을 마친 후 한전으로 전직하려고 입사원서를 제출했다. 하루는 걱정이 되어 기도하고 입사시험예상 문제집을 구하러 서점에 갔더니 꼭 시험에 날것 같은 문제집을 발견하고 사와서 공부했다. 시험장에 가보니 신기하게도 내가 집중적으로 봤던 문제가 그대로 출제되었다. 그 덕분에 대졸공채로 당당히 입사했다.

     

    1998년 국제 외환위기가 닥쳐 내가 맡고 있었던 전산업무가 외부로 넘어가 퇴직을 했다. 퇴직한 후 마음속으로 잠시 방황하기도 했지만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니 감사하기도 했다. 감사한 마음을 일부라도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으로 자원봉사를 하려고 결심했다.

     

    2002년 11월 한국 국제협력단 해외자원 봉사요원으로 선발되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로 최고령자가되어 매스콤에 보도되자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도 만나 뵈었고 그해 연말 특집방송으로 KBS 방송에 소개되었다. 스리랑카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2년간 컴퓨터 강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2004년 말 귀국했다.

     

    2017년에 대한민국 봉사대상 선발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원봉사센터에 찾아가 2002년11월부터 2년간 한국국제협력단원으로 스리랑카 해외봉사와 귀국 후 2005년 10월부터 그때까지의 봉사활동 했던 내용을 첨부하여 신청했더니 2017년 12월 대한민국 자원봉사 대상에 선발되어 국무총리 상을 받았다.

     

    2000년 12월 우연이 뚱뚱보 독일 외무장관인 요시카 피셔의 달리기 자서전을 읽었다. 그는 달리기로 112Kg 체중을 일년 안에 37Kg이나 감량했고 독일에서 유명한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가 되었다는 기사를 감명 있게 읽었다. 50대 후반이 되도록 조깅에는 한번도 경험이 없었던 내 자신에게 마라톤 도전장을 던졌다.

     

     

    2001년1`월 1일부터 마라톤 전문용 시계를 가지고 하루도 빠짐없이 1Km부터 연습을 하면서 거리를 조금씩 늘여나갔다. 그 시계는 조깅할 때 맥박수를 범위를 정해 놓을 수 있었다. 빨리 뛰면 맥박수가 증가하는데 너무 빨리 힘들게 뛰면 천천히 뛰라고 경고음을 내보내고 너무 천천히 뛰면 빨리 뛰라고 경고음을 내주었다. 3월 4일 서울 마라톤 클럽에서 주관하는 마라톤대회 10Km 코스에 참가한 이후, 10월 21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에 완주 그해 11월 11일 63.5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고 2009년 4월에는 미국 보스톤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하여 완주했다.

     

     

    다음으로 도보 국토종단에 도전했다. 2012년 봄, 지도를 구입해 해남 땅끝 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직선을 그었다. 갈 수 있는 도로와 숙박 가능한 곳에 동그라미 쳤다. 해남 땅끝 마을부터 광주, 순창, 진안, 무주, 문경, 제천, 평창, 인제를 거쳐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는 도보국토종단을 계획했다. 혼자 하는 게 무리라 생각했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 없어 아무에게도 권하지 못했다. 우리 교회 지인이 이 소식을 듣고 따라나섰다.

     

    5월 1일, 해남 땅끝 마을에 도착하여 그날로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순창에 닿을 때였다. ‘숙소를 찾았지만 공교롭게 지역 행사 때문에 모두 사전 예약돼 있어 잘 곳을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가 교회를 발견하고 찾아가 염치 불고하고 목사님께 ‘재워 주십쇼!’ 했다. 목사님은 흔쾌히 받아 주었다.

     

    기필코 완주하겠다던 동행자는 보은에서 두손을 들었다. 할수없이 혼자 걸어야했다. 대신 주말이면 집사람이 내려와 함께 걸어 주었다. 도보 여행이 처음인 아내의 발은 날이 갈수록 물집과 상처로 가득했다. 무척 미안했지만 고맙단 말조차 못했다. 아내가 돌아가면 다시 혼자 걸었다. 힘들어 포기하고픈 유혹도 있었으나 그때 마다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마침내 21일 만에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니, 옛 사우들이 응원하러 와 있었다. 해냈다는 성취감보다 감사에 목이 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

     

    2014년 10월, 전국자전거일주에 도전했다. 서울 집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고성 최북단마을인 명파 초등학교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동해안 차도를 따라 포항, 그리고 부산까지, 다시 남해안 도로를 따라 해남 땅끝 마을까지, 그리고 서해안 도로를 따라 인천까지 와서 아라뱃길 자전거도로를 타고 서울 집으로 오는 코스를 잡았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전국자전거일주 패찰을 만들어 집사람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결국 10월 7일 9시에 집을 떠나 29일 오후 8시에 집에 도착했다 . 자전거 일주를 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은 손양원 목사님 기념관을 찾아가면서 스퍼 마케트에 들어가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면서 팔고 있는 물건을 공짜로 안겨주었다. 보령에서는 식사하면서 숙박할 모텔을 물으니 식사하던 모텔사장이 “어르신이 고생한다.”며 모텔 사장님이 무료로 방을 제공해겠다고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식당주인도 식사비를 받지 않았다.

     

    지금은 다 지난 추억이긴 하지만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나에게는 구하라 그러면 얻어졌다는 생각에 만사를 감사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해본다. 어서  코로나전쟁에서 해방되고 살기좋은 대한민국이 되게 해주업소서 ~~

     

                         2021년 2월 12일 설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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