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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으로 맞는 이상한 설날낙서장 2021. 2. 15. 09:38
이제 설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 같은 백수야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야겠지만 지난 몇일을 생각해보면 생전처음으로 맞는 설날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우선 설날이면 온 가족이 만나 지난해를 되돌아 보며 반성하고 앞으로 계획을 다짐하고 서로 격려와 덕담을 줌으로서 새로운 한해에 희망과 도전의식을 심어주고 가족간의 결속을 다지는데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올 해의 설날은 코로나 19의 창궐 때문에 사회적 격리를 강조하다보니 5명이상은 모이지 못하도록 함으로서 생각지 못한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전 같으면 한곳에 모여서 차례를 지내야 했지만 모임을 5명 이내로 제한한다고 해서 큰집에 우리 아이들의 가족이 모이지 못해 우리끼리만 지냈다. 설날을 하루 지나 큰아들이 집으로 온다고 했다. 나의 집에서는 우리 내외와 작은 아들이 함께 해 3사람이 살고 있고, 큰아들은 역시 대전에서 3인이 살고 있다.
우리 아들들은 직장에 다니고 있기에 5인이하 모임을 준수하고 있다. 두가족이 4명으로 모임을 갖으려면 어찌할까? 집에 오기전 두아들이 전화해서 자기들끼리 만나 식사를제의한 모양이다. 작은 아들이 다른 약속을 들어 파토가 났다. 그러자 며누리가 자기 은사를 만나겠다며 아들과 손녀가 먼저 집으로 와 4명으로 만나 식사를 하고 세배하고 놀다가 큰아들이 산책하러 간다며 집을 비우자 며느리가 와서 시어머니와 며누리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 집으로 갈 시간이 되자 큰아이가 차를 현관 앞에 주차하고 있다고 해서 집에 간다며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를 받고 헤어졌다.
살다보니 이런 설을 맞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는 지금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환경,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한번도 경험 못 한 설( 조선일보 2021년 2월 16일 만물상)
설 명절을 부모님 댁 아닌 내 집에서 보낸 건 결혼 25년 만에 처음이었다. 시골 부모님께 차례상 명목으로 돈을 부쳐 드렸다. 인터넷에는 기막힌 경험담이 나돌았다. ‘동생네 식구들과 외식하려고 식당에 전화했더니 5인 이상은 집합금지라며 예약을 각자 하란다. 시키는 대로 하고 식당에 가니 자리가 홀 이쪽 끝과 저쪽 끝이다. 밥 먹는 동안 대화는 휴대전화로 하고 조카들 세배도 전화로 받았다'는 것이다. 밥을 함께 먹었는지 아닌지도 애매했는데 조카들 세뱃돈은 카카오페이로 보냈다고 한다.
▶초유의 ‘비대면 설날’은 곳곳에서 낯선 풍경을 만들었다. 방역 기준을 지키기 위해 시간 차로 부모 댁을 찾는 교차 방문, 그도 여의치 않으면 자식 중 한 명만 가는 대표 방문을 했다.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가족이 고글을 쓰고 가상현실(VR) 공간에서 만나 세배하고 덕담 나누는 신기술도 등장했다. 이 집 저 집 모두 줌(ZOOM) 켜놓고 각자 밥상에 앉아 가족 모임을 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지난해 미국과 유럽에선 이혼이 급증했다. 코로나를 뜻하는 코비드(COVID)에 이혼을 뜻하는 디보스(divorce)를 합친 신조어 ‘코비디보스’가 유행했다. 우리는 반대로 이혼이 줄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총 9만7300여 쌍이 이혼해 재작년 같은 기간보다 4300건 넘게 감소했다. 마이너스 4.3%로 2017년 이후 가장 낮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이혼 재판이 열리지 않은 탓도 있지만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아 부부 싸움 줄어든 게 이유란 분석도 있다. 명절 차례로 인한 가족 내 갈등을 뜻밖에 코로나가 누그러뜨렸다.
▶명절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국내여행·쇼핑 업계는 특수를 누렸다. 제주도엔 15만명이 몰려들었다. 귀성객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 관광객이었다. 서울의 대형 쇼핑센터와 전국 스키·골프장은 물론이고,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로 호텔까지 북적였다. 관광지 노점엔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긴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비대면으로 이성 만날 기회조차 빼앗겼던 청춘 남녀는 언택트 설날 덕분에 고향 부모님의 결혼 압박을 안 받게 됐다며 안도했다. 취준생들도 “어서 취업하라”는 독촉, “누구는 졸업하자마자 취직했다더라”는 비교를 당하지 않았다며 귀성 무산을 반겼다고 한다. 코로나 설이 병 주고 약도 준 셈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명절이 아니다. 백신이 원래의 명절을 되찾아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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