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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낙서장 2022. 1. 16. 16:17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 이 유필은 나라을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란 뜻으로 안중근의사가 사형되기 5분전에 5개월 간 자신의 전담 간수를 맡았던 지바도시치(千葉十七)에게 준 글이다.

     

    지바도시치(千葉十七)는 안중근의사를 하얼빈에서 뤼순으로 이송할 때 서 선발된 사람은 헌병 대위 니치에이 겐지(日榮賢治) 12명중 한명이다. 

     

    안중근보다 6살이 어린 그는 안중근의사가  수감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관이나 형무소장과 통역관 그리고 경시 등이 그의 말과 행동을 옆에서 보면서 자국 사람을 죽인 안중근에게 적개심을 가졌던 지바도 점점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이유를 납득하게 되고 안중근을 죽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더나가서 존경하게 되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러던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나에게도 글을 써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쓰고 있었지만항상 가까이 있는 지바의 부탁이어서 기회를 보아 써 주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위국헌신 군인본분( 軍人本分)’ 이라는 여닮 자가 사형 5분 전에 썼다. 그런데 이 여닮 자에는 감정의 요동이 없다.

     

    보통사람이라면  사형 5분 전에 글을 쓰려면 손이 떨려서 제대로 쓰지 못한다. 손이 떨리는 것은 마음이 떨리는 것이다. 사형 5분 전에는 아무리 서예의 대가(大家)해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그런데도 안중근은 8자의 글을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썼다. 얼마나 호기롭고 강한 정신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위국헌신 군인본분글 앞에 서면 마음속에 거센 바람 같은 감동이 밀려온다. ‘위국헌신 군인본분은 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뜻이다. 이글은 자신은 죽지만 후회는 없다는 안중근의 단호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는 1908김두성(金斗星)을 총독으로이범윤(李範允)을 대장으로 하는 의병단이 결성되었을 때 안중근은 참모중장이라는 직함을 받았다그는 신문 중에 3전부터 국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실행해왔기 때문이다. 이토 살상은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을 위해 수행하는 전쟁의 하나이다. 이것은 개인의 범죄가 아니다. 한국의 의병으로서 포로가 된 것이다. 그러니 만국법(국제법)에 의해 처단해 달라. 일본의 형법에 의해 받는 판결은 따르기 어렵다" 고 말했다. 안중근은 의병의 이름으로 싸웠으나 사병(私兵)이 아니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기에 훌륭한 군인이다. 그에겐 이와 같은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유필에는 전담 간수로서 말없이 도와준 지바 도시치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다. 안중근의 전담 간수로 임명 받았을 때 지바는 결코 좋은 심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10대 시절부터 화살과 총탄을 피해가며 국사를 위해 분주히 활약했고명치라고 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든 일등공신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명치헌법을 만들었고 총리대신을 4번이나 했다. 그러한 위인을 사살한 안중근이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헌병인 지바로서는 적개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일본인은 모두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토를 사살한 5일 후인 1030일 제1회의 신문(訊問)에서 미조부치 검찰관이 안중근에게 이토를 사살했는가?" 라고 물었을 때 안중근은 15개조의 이유를 들었다. 이유를 모두 말했을 때 법정에 있던 일본인의 마음이 변했다.

     

    일본 검찰경관 등도 안중근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 신문이 3. 4계속되는 동안에 일본의 관계자들이 안중근의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순수함한결같음유구하고 고결한 인격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검찰관은 안중근에게 영국인러시아인 변호사의 접견을 허락했다. 파격적인 처우였다. 안중근이 단순한 살인자였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1910214안중근의 사형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곳에 이변이 일어났다.  사형이라는 극형을 내린 일본인이 그 사형수인 대 범죄자에게 휘호揮臺)를 써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뤼순에 었던 관계자들이 볼 때 대가 흐르면 안중근 이 한국 혁명 지사로 추앙될 것이 분명했다. 종이와 붓과 먹을 준비해 주는 사람은 지바였고 그 휘호를 건네주는 역할도 바였다.

     

    사형이 가까워지면서 지바는 안중근을 안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존경하는 마음을 넘어 외경()하는 마음까지 갖게 됐다. 지바의 그런 마음을 안중근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안중근과 지바는 뜨거운 마음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형 5분 전에 지바 씨부탁받은 것을 지금 쓰겠습니다" 하고 안중근은 그 감옥방에서 위국헌신 군인본분 國敵身軍人本分 경술 3뤼순옥중 대한인 안중근 근배 이라고 썼다지바는 자신에게 주어진 유필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유필에는 5개월 동안 보살펴준 자신에 대한 배려심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글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돌아보면 우리가 지금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이 국민된  본분일까? 생각해본다.

     

                                     2022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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