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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이란무엇인가?
겸손은 사람마다 다양한 정의를 제시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음의 에 세 가지 특성이 포함된다는 점에서는 비교적 의견이 일치한다. 그 세 가지란 정확한 자기 평가, 자아를 통제하는 능력, 다른 사람을 향한 관심이다. 달리 말하면 겸손은 곧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자신을 점검하는 것, 자신을 넘어서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세가지 특성을 하나씩 살펴보면
겸손의 첫 번째 부분은 강점과 약점을 비롯하여 자기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잘 아는 것이다. 겸손한 사람은 스스로 무엇에 뛰어난지 어떤 분야에서 성장과 개선을 위해 노력하면 도움이 될지 알고 있다. 거만한 사람은 약점을 받아들이는데 소홀한 채 강점만 물고 늘어지며 자기비하가 심한 사람은 명백한 강점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약점만 파고 든다. 반면 겸손한 사람은 한계를 이는 동시에 강점 또한 인정한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에서 출발해 세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겸손한 사람이 자신의 강점을 말하기는커녕 생각조차 하면 안 된다고 여기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겸손한 사람은 기분 좋은 칭찬과 달갑지 않은 지적을 비롯하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는 곧 겸손에 상당수준의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 생각과 감정, 행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무심하게 살아가다보면 가벼운 이기심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 대해서만 너무 깊이 생각하면 나르시시즘적 강박에 가끼운 불건전한 자기 몰두에 빠지고 만다. 나에게 너무 몰두하지도 지나치게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파악하는 적절한 수준을 찾는 것이 겸손에 필요한 첫 번째 단계다.
겸손의 두번째 부분은 자아조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기적 성향이 있다. 존중, 칭찬, 영광을 원한다. 지존감을 향한 욕망은 뿌리가 깊다. 어떤 사람은 지존감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동기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사실 칭찬을 받아들이고 비난을 무시하기는 쉽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반대로 한다. 칭찬과 영광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나의 성공에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적절한 경우에는 비난이나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겸손에는 결과가 좋지 않은 결정에 책임지고,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하려는 욕망을 거부하며, 잘못이 있으면 시인하는 일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자아를 조절할때는 자신의 아이디어나 성과를 어떻게 드러내는지도 중요해진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성과 덕분에 특별한 관심을 받아야 한다거나 더 중요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겸손이란 나의 강점과 내가 잘하는 일을 파악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대신 정직하고 겸허해지려 노력한다.
겸손의 세 번째 부분은 다른 사람을 향해 관심을 기울이거나 자신을 넘어서서 생각하는 것이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욕구에 신경 쓴다.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주변 사람에게 공감할 줄 안다. 이는 시야를 더 넓은 관점으로 전환한다. 의사 결정을 내릴 때 고려하는 대상을 더 넓히고, 더 이상 자신이 중심에 있지 않도록 세상을 재 구성하는 초월적인 움직임이다. 이처럼 심오한 변화는 겸손의 가장 뛰어난 사회적 기능일 것이다. 또한 우리가 겸손한 사람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겸손한 사람은 기꺼이 우리와 우리의 욕구에 신경 쓴다. 누군들 그런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겠는가?
겸손한 성격의 세 가지 특성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내게 ‘딱 맞는 크기’의 겸손을 알아야 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자아 개념 및 행동을 더욱 정확하게 현실에 연결한다. 강점과 약점을 알며, 다른 사람앞에서 으스대거나 주녹들지 않는다. ‘딱맞는크기’를 갖추려면 자신의 가치가 변덕스러운 외부 기준이나 애매한 인정, 혹은 칭찬에서 비롯되지 않는디는 사실을 이해히는 안정감이 있어야한다. 안정감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감각에서 온다. 자신에게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알고 자신감이 생기면, 외부에서 가치를 확인받기 위해 지나치게 건방지거나 나르시시즘적 행위로 과시하려는 무모하고 헛된 욕망에서 자유로워진다. 겸손은 나약함이 아니라 강인함의 지표다.
겸손은 어떤 형태를 취할까?
실생활에서 겸손이 어떤 형태를 취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겸손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학자들은 얼마나 많은 유형의 겸손이 존재하고 그기 본적인 차원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여왔다 . 겸손에 관한 연구는 사람, 생각, 삶의 방식, 삶의 궁극적 질문이라는 네 가지 주요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겸손과 관련된 네 가지 유형 즉 관계적, 지적, 문화적, 실존적유형이 있고 이들은 각기 다른 개인적 경험과 행동상의 표현이 따른다. 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관계적 겸손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난다. 관계적 겸손을 갖춘 사람은 피드백을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한다. 또한 친절하고 다정 다감하기에 우리 모두 좋아하는 류형의 친구이자 동료 배우자이기도 하다.
지적 겸손은 핵심적 가치와 신념에 관해 이야기할 때나, 새로운 통찰을 열린 마음으로 접하며 다른 사람에게 열렬히 배우려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지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틀렸을 때 솔직히 인정하며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호기심이 많고 이념에 대한 증거를 모색하기를 즐기며,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기보다 주변 세상에서 배우려 한다.
문화적 겸손은 대립적인 양상의 문화적 관점을 탐색하는 것과 관련 있다. 문화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세상을 보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음을 인정하고, 디론 사람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배우려 한다. 이들은 자신의 문화적 관점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다른 사람의 관점을 배우고,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가 마련될수 있도록 부단히 애쓴다. 또한 타고난 호기심과 포용력을 지니고 있다.
실존적 겸손은 사람들이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 과 관련이 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의 목적은 무엇일까? 자연의 힘 우주 우주의 질서를 생각하거나 초월적 대상을 떠올릴 때 실존적 겸손을 느낄 수 있다. 이 유형의 겸손은 자신보다 큰 존재를 향한 감사로 표현된다. 실존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더 큰 질문으로 고민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고 무거운 질문을 탐구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세상속 자기 자리를 평화롭게 받아들인다.
또한 겸손의 더 작은 부분을 연구하여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노력한 학지들도 있다. 그밖에 ‘겸손의 변종’도 있을것이다. 예를 들어 ‘종교적 겸손’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한사람의 종교적 신념에 관련된 겸손일 것이다. 하지만 이 겸손은 지적, 문화적, 실존적 겸손을 결합한 데 불과할 확률이 높다. 누군가는‘정치적 겸손’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 및 표현과 관련된 겸손한 접근법일 것이나, 이 또한 지적 겸손과문화적 겸손에 가깝다. 사람, 생각, 삶의 방식, 삶의 궁극적 질문이리는 차원에 대해 생각해보면 겸손과 관련 된 수많은 교차 지점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주로 이 네 가지 핵심 요소로 함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겸손의 정도는 여러 영역에서 사람마다 다를수있다. 예를 들어 그랜드 캐니언을 바라보며 그 이름다움에 감사하는 실존적 겸손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같은 사람이 신에 대한 생각이나 우주에서의 자기 위치에 대해서는 지나친 확신과 신념을 표현하며 지적인 오만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중요한 상대의 욕구를 깊이 신경 쓰며 관계적으로 겸손한 배우자가 문화적 관점에서는 완고한 경향을 보이며 다른 문화권에서 제안하는 삶의 방식을 배척할수도있다. 직장에서는 겸손한 사람이 집에서는 거만할수도 있다. 따라서 겸손은 흑백의 문제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영역과 표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점을 이해하면 더 집중적으로 겸손을 키울 영역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모든 방면의 겸손을 배양하려 한다.
겸손은 어떤 상황에서 필요한가 ?
겸손을 키우기란 고된 일처럼 보인다. 진정으로 자신을 깊이 알고, 끊임없이 자아를 점검하며,부단히 다른 사람을 배려히는 사람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아마 더 중요한 문제는 ‘겸손해져서 좋을 게 뭐가 있나?’ 하는 의문일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 다 맞는 말이긴 해.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게 통하지 않아.’
이미 겸손의 장점을 설득하기가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수많은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무척 중요시한다. 종종 문화적 표준이 너무도 강력해서 마치 나르시시즘과자기 집착으로 향하는 도로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마저 든다. 착한사람이 꼴찌가 된다.’ 같은 표현은 권력, 지배,자기중심 주의를 삶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은연중에 서로에게 좋은 삶이란 자기부터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가르친다. 먼저 자기 것부터 챙겨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수많은 사람이 훨씬 더 고통스러워졌다. 지난 10년간 50세 이하 사람들의 불안감이 크게 치솟았다. 어느 연구자에 의하면 국국의 성인 중4000만 명 이상이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는 6명 중 1명이 넘는 비율이다. 또한 13세에서 18세까지의 청소년 중 25퍼센트 이상이 불안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미국인들이 외롭고 우울하며 정신적으로불안하다는사실은 여러 연구를통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신 질환을 겪는 사람의 수가 무업도록 치솟고있다. 자살히는 사람의 수도늘고 있다. 미국인들의 정신 건강상태가 전반적으로 악화된 실정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4명 중 1명이 살아 오면서 정신 건강관련 질환을 겪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수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걸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안타깝게도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자살한다. 우리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건강하게 소통하는 능력을 잃었다. 가족 역시 분열되고 있다. 인간관계가 해체되고 있다. 사람들은 불행하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이런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
나르시시즘과자기 집착이 성행하며 불행해지는 문화속에서 겸손이 우리에게 대안적 가치를 제공 할수 있다. 겸손은 나만 중요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인정하게 하고 부단히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게 한다. 물론 겸손이 모든 사회악을 해결할 처방은 아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통해 겸손해지면 인간관계가 좋아지고, 작업 능력과 생산성이 향상되며, 평소에 다투기 일쑤던 집단이 화합할수 있디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또한 겸손은 우리와 무척 달라 보이는 이들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을 향한 개방적 태도와 호기심, 진정 어린 존경심을 키우게 한다. 겸손은 사회적 변화와 혁신, 새로운 발견을 촉진한다.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린 반목에도 불구하고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겸손이 필요하다.
실질적 겸손을 지향하며 ~~~
우리 사회는 자기 과시적 행위에 보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설계에서 벗어나 다르게 살기 위해서는 다른 의도가 필요하다. 내가 전부가 아닌 세상에서의 삶을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초월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실존적 겸손을 갖추어야한다. 우주라는 공간속에서 나라는 작은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받아 들이고,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결코 해결할수 없는 질문이 있음을 알면서도 평화를 느낄수있어야한다. 모두 비슷한 인간으로서
운명을 공유하고 있으며 핵심적인 두려움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위안으로 삼아야 한다. 이 불안과 의문 불확실성과 고통 속에 니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작고 삶이 아무리 짧고 덧없이 느껴지더라도 감사하는마음을 키울수 있다.
진정한 겸손은 우리에게 깊고 오래가는 안정감을 준다. 자신의 가치를 깨달으면 신념을 잠정적으로 유보하고 불확실성을 포용하여, 평화로우면서도 담대하게 삶의 막중한 질문과 마주 할수 있게 된다.
우리는 함께 더 겸손한 지역 사회를 구축할수 있다. 하지만 그노력은 나자신에게서 출발한다. 내가 먼저 노력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겸손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먼저 노력해서 다른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롤 모텔이 되어야한다. 이 노력이 성과를 거두면 관계, 직장, 지역사회에서 차차 겸손의 힘을 느낄 것이다. 항상 잘 되지만은 않겠지만,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면서 꾸준히 노력할 수는 있다. 함께 겸손을 우선에 두도록 노력하자. 이 과정에서 힘겹다고 느끼더라도 인내하면서 겸손이 더 정의롭고 사랑이 많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자. 함께 더 겸손한 세상을 향해 나가자.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2024년 9월 16일
추신: '대릴반 통게런' 이쓴 겸손의힘이란 책을 읽고 공감가는 일부분을 어설프게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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