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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리내 성지 답사
    낙서장 2025. 1. 4. 10:40

    미리내  성지를 둘러 봤습니다.  미리내 성지(美里川 聖地)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로 420에 위치한 한국 천주교회의 사적지로, 본래 경기도 광주, 시흥, 용인, 양평, 화성, 안성 일대 등 초기 천주교 선교지역을 이루던 곳의 하나이며, 한국교회사 처음의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는곳입니다.

     

    김대건신부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입니다.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모방 신부를 통해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 교육을 받았고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임명되었다. 조선에 돌아와 전교 활동과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다가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의 열성적 전교 활동과 경건하고 당당한 신앙자세는 이후 천주교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유네스코는 2019년 11월 14일,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했다.

     

    역사적으로는 미리내 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와 1839년 기해박해 당시 경기도와 충청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았던 지역이며, 1846년 병오박해때 순교한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신부와 1866년 병인박해때 순교한 이윤일(요한)의 시신이 이곳에 안장되면서 순교 사적지가 되었다고 한다.

     

    2025년 1월 3일  

     

    The story of St. Andrew Kim Dae-Geon and his tomb

    He was born in 1821 in Solmoe, Dangjin, as the eldest son of Ignatius Kim Je-Jun and Go Ursula. The family of Father Kim Dae-Geon, who were nobles, faced persecution for embracing the Catholic faith. In 1827, to escape the persecution, they relocated to Golmaemasil, Yongin, and settled there. In 1836, at the age of 16, he was chosen as a seminarian at Euni (the Absence of a Priest). In December of the same year, he embarked on a journey to Macau, where the seminary was located, and arrived in June of the following year. Afterwards, as a seminarian, he actively served as a pioneer for entering Joseon, received the diaconate in 1844, and was ordained as a priest in 1845 (at the age of 25).

     

    Father Kim Dac-Geon, who became the first Korean priest, departed Shanghai on a ship with Bishop Ferréol and entered Joseon via Jeju Island on September 28, 1845. During that year, he was tending to the churches in Seoul and Yongin in Joseon. However, he was arrested by the police on his journey to open up an entryway for missionaries. And finally, on September 16, 1846, he was martyred through beheading as a result of persecution in Saenamteo. He was canonized on May 6, 1984, and was selected as a UNESCO World Monument in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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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ther Kim Dae-Geon's body was temporarily buried in the sand at Saenamteo. After hearing the news, 17-year- old Vincent Lee Min-Sik collected Father Kim Dac-Geon's body while avoiding the eyes of the police. Vincent Lee Min- Sik, who carried his body, arrived in Mirinae by walking only at night on a rough mountain path, and on October 30, he established a burial site for Father Kim Dae-Geon in the ancestral mountain of his own family, laying the body to rest.

     

    김대건 신부는 1821년 당진 솔뫼에서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양반 출신인 김대건 신부의 가문은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1827, 박해를 피하기 위해 가족은 용인의 골매마실로 이주하여 정착했습니다.

     

    1836, 16세의 나이에 김대건은 신학생으로 선발되었으며, 같은 해 12월에 마카오 신학교로 떠났습니다. 이듬해 6, 마카오에 도착한 그는 이후 신학생으로서 조선 선교를 위한 선구자 역할을 하며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1844년에 부제품을 받고, 1845(25)에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한국 최초의 사제가 된 후, 1845928일 페레올 주교와 함께 상하이를 떠나 제주도를 경유하여 조선에 입국했습니다. 그 해 동안 그는 조선의 서울과 용인 지역에서 교회를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입국 경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체포되었고, 결국 1846916일 새남터에서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그는 198456일에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202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시신은 새남터의 모래밭에 임시로 묻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17세의 이민식 빈첸시오가 경찰의 눈을 피해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그는 신부의 시신을 짊어지고 험난한 산길을 밤에만 걸어 미리내에 도착했습니다. 이민식은 1030, 자신의 가문의 선산에 김대건 신부의 묘소를 마련하고 시신을 안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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