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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같은 가짜가 더 문제다.스크랩된 좋은글들 2017. 11. 2. 08:12
진짜 같은 가짜가 더 문제다.
홍종학 장관 후보자의 僞善은 左右 아닌 진짜·가짜의 문제
공직자가 似而非면 나라 해쳐… 코드인사 하더라도 '진짜' 쓰라
이건 좌우 문제가 아니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 진짜 같은 가짜가 더 문제다. 앞에선 정의를 말하지만 뒤로는 제 잇속을 챙기는 이를 '사이비(似而非)'라 한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감히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가 신고한 재산(49억5000만원)이 대한민국 가구 평균 재산(2억9533만원) 16배에 이르고 매년 1억2000만원 임대 수입을 올리기 때문이 아니다. 딸이 열한 살 때 20년 직장인 재산보다 많은 8억6000만원을 외할머니한테 증여받았기 때문도, 엄마가 어린 딸에게 2억2000만원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신종 '절세 기술'을 부렸기 때문도 아니다. 입으로는 부(富)의 대물림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은 상속 이익을 챙긴 위선(僞善)이 문제다.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더니 자식을 특목중에 보낸 '말 따로 행동 따로'가 문제다. 그러고도 장관 되겠다고 나섰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진짜 같은 가짜'는 2500년 전에도 큰 문제였던 모양이다. 공자는 "사이비를 미워한다"고 했다. '군자인 척하는 사이비'[鄕愿·향원]를 가리켜 "덕(德)을 해치는 도적[賊]"이라고 했다. 명백한 가짜보다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더 크기 때문이다. 명백한 가짜는 쉽게 구별할 수 있지만 진짜 같은 가짜는 본색이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는 진짜인 줄 안다. 맹자가 자세히 해설했다. "그(사이비 군자)의 태도는 충실하고 신의가 있는 것 같고, 그의 행동은 청렴하고 결백한 것 같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며 자신도 스스로 옳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참다운 성현의 길로 갈 수 없다." 논에 뿌리내린 피가 더 문제인 까닭은 겉모습이 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이비가 미친 폐해는 지금 인터넷 공간에 두루 퍼져 있다. 진영 논리에 갇힌 댓글이 넘친다. "세금 다 냈다는데 뭐가 문제냐" "좌파라고 가난해야 하냐" "재벌 기업 상속이나 비판해라" 같은 내용인데 모두 핵심에서 벗어났다. 사인(私人)이라면 불법이 아닌 한 상속이나 절세를 문제 삼을 수 없다. 사인이라면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라도 큰 문제가 아니다. 공직자는 사정이 다르다. 공직을 맡은 이가 사이비라면 '나라를 해치는 도적'이 되기 때문이다.
홍 후보자는 4년 전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교훈이 될 만한 좋은 말을 많이 했다. 그중에는 유대인 최초 미 연방대법관이었던 루이스 브랜다이스(1856~1941)가 "햇볕이 가장 좋은 살균제이고, 전등(電燈)이 최고의 경찰관"이라고 했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 문제를 드러내면 사람들이 고치게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동감이다. 곰팡이는 햇볕에 드러나면 저절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다만 그 말은 남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눈처럼 깨끗해야만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자격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홍 후보자가 시민단체 대표로, 대학교수 신분으로 한 말은 비록 위선일지라도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면 들어야 한다. 그 사람의 겉과 속이 같은지 다른지 여부는 관심 대상이 아니다. 공직자가 아니라면 굳이 따져 물을 필요가 없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엊그제 "신문 칼럼니스트가 '부의 대물림은 안 된다'고 썼다고 장모가 증여해주겠다고 하는데 안 받겠나"라며 홍 후보자를 옹호했다. 사인과 공직자의 차이를 혼동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정권 핵심 인사의 공사(公私) 관념이 이 정도이니 '진짜 같은 가짜'가 넘친다. 신문 칼럼니스트도 공직에 나선다면 같은 검증을 받아야 한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목민관은 구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미관말직도 그러한데 나라의 장관 자리를 가짜에게 맡길 수 없다. 좌우 문제가 아니다. 진짜냐 가짜냐의 문제다. 코드 인물 중에도 진짜가 있을 것 아닌가.
2017년 11월 2일 조선일보 이한수 여론독자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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