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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사태, 판사들의 진짜 걱정은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1. 22. 08:45
“어느 문명국가에서도 법원 판결이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 잡으러 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건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입니다. 앞으로도 판결이 마음에 안 들면 법원을 습격할 건가요!”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에 대한 판사들의 반응은 유례없이 격했다. 성난 군중이 소화기로 법원 유리문을 깨부수고, 영장전담 판사를 찾아 판사실까지 난입한 사건은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간 서울서부지법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형 사건을 다룬 일이 거의 없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재판 때 모였던 인파가 최대치였다고 한다. 정치적 사건에 단련된 중앙지법과 달리 대처에도 한계가 있었다. 영장 심사일에 버스로 정문을 막았지만 후문이 뚫려 봉변을 당했다.
서부지법이 주목받은 것은 지난달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 영장을 청구하면서부터다. 공수처법상 1심 관할은 중앙지법이지만 공수처는 한남동 관저가 서부지법 관할이라며 이곳을 택했다. 그러면서 오전 0시에 영장을 청구해 ‘판사 쇼핑’ 논란을 불렀다.
게다가 서부지법이 내준 영장에는 유례없이 ‘형사소송법 110조·111조 적용 배제’가 적혔다. 한 현직 판사는 “보안 시설 압수 수색에 책임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수사기관의 부담을 법원이 나서서 없애준 셈”이라고 했다.
공수처가 수사권이 있느냐는 더 큰 문제다. ‘내란’과 ‘직권남용’은 둘 다 흠결이 있다. 내란죄는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는 ‘고위 공직자 범죄’ 가 아니고, 직권남용은 헌법 84조의 불소추 특권 범위여서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다.
공수처는 수사권이 있는 직권남용과 관련한 범죄로서 내란죄 수사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법정형 징역 5년 이하인 직권남용을 매개로 법정형이 최대 사형·무기징역인 내란죄를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본말 전도’다. 현직 판사가 법원 게시판에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법원 입장에서 수사기관의 ‘수사 권한’은 중요한 전제 사실이다. 아무리 수사를 잘해도 권한 없는 기관이라면 법원 판단을 받을 수 없다. 한 판사는 “체포·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이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논란은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을 통해 영장을 청구했으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었다. 공수처가 사건을 가져오고 법원의 통상적이지 않은 결정이 이어지면서 일이 커졌다. 법치국가에서 법원 테러는 용납해선 안 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놀라고 분노한 판사들조차도 국민을 ‘엄벌’로 윽박질러 사법 불신을 회복할 수 없음은 알고 있다. 자신들조차 법적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판사들의 진짜 고민이 있다.
한 판사는 “파장이 큰 사건일수록 절차 정당성이 중요하다. 수사 욕심이 앞서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수사 속도나 결과물이 아니라 ‘원칙’과 ‘정당성’이다.
2025년 1월 22일 조선일보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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