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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님 노후 준비돼 있어?" 요즘 결혼, 이것부터 따진다는데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2. 15. 11:09
    요즘 MZ세대의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중요하게 따지는 조건이 '부모 노후 대비' 여부다. 어느 한 쪽이 자식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집안이라면 협상(deal)이 깨지기도 한다. /일러스트=김영석
     

    “월급 1000만원씩 받아 5억원 모았어요. 그런데 부모님께 매달 생활비로 200만원을 드려야 합니다. 저 결혼 힘들까요?”(30대 대기업 남성)  “연봉 6000만원, 신도시 자가(自家) 보유. 초혼 남성 원함. 학력·직업·연봉 무관. 단 부모 노후는 철저히 대비돼 있어야 함.”(40세 여성 공무원)

     

    곧 봄이다. 청춘 남녀가 본격적으로 짝을 찾아 나서는 계절. 연애·결혼 시장에 ‘셀소(배우자를 구하기 위한 셀프 소개)’가 넘쳐난다. 이런 셀소에 최근 급부상한 요건이 부모 노후 대비 여부다.

     

    인륜지대사인 결혼에서 부모 자리는 항상 중요했다. 먼 과거엔 “양친 계신가” 물었다. 다음엔 점잖게 “집안 괜찮은가” 했다. 당사자의 외모와 성격, 학력, 직업을 주로 보되 ‘집안’의 카테고리로 성장 환경에 큰 문제가 없는지 파악했다.

    그런데 요즘 2030에겐 그런 두루뭉술한 표현 안 먹힌다. 늙은 부모의 경제적 삶 설계 여부를 구체적으로 따진다. 부모 노후가 결혼 5대 혹은 3대 조건, 심지어 1순위란다. 파혼·이혼에 이르는 딜 브레이커(deal breaker·협상을 깨는 요인)가 되기도 한다.

    “시·처가 책임질래? 도망쳐”

    “예비 신부의 어머니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국민임대주택에 살면서 ‘나라에서 생활비 나오니 노후 걱정 없다’는데 아무래도 께름칙하다. ‘처가에 금전 지원 없다’ 약속받고 결혼해도 될까? 그냥 깰까?”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한 공기업 직원의 글이다. 댓글이 수백 개 달렸다. “장모가 당장은 안 굶더라도 아프면 모른 척할 수 있겠느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된다” “두 집 살림 자신 없으면 빨리 도망가라”부터 “사랑 앞에 이런 것부터 따지는 현실이 슬프다”는 한탄까지.

    요즘 결혼 시장에선 일명 '육각형 인간'의 요소를 따진다. 성격, 외모, 학력, 직업, 연봉, 그리고 집안 환경인데, 집안 문제는 '부모의 은퇴 설계 여부'로 수렴된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
     

    앞서 소개한 ‘월급 1000만원’ 대기업 직원에 대한 반응도 놀랍다. “본인이 잘 버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의견은 극소수.

    “수입의 20%가 꼬박꼬박 빠져나간다면 아내로선 중대한 문제” “한창 자녀 교육 시킬 나이에 회사 잘릴지도 모르는데, 지금 200만원이 순식간에 500만원, 700만원 돼 지옥문이 열릴 것” “부모가 제 앞가림 못 한다는 건 단순히 돈을 떠나 많은 문제를 내포한다”는 ‘준엄한 평가’가 줄이었다.

     

    커뮤니티엔 또 “애인 부모의 노후 여건을 어떻게 확인해야 할까” “소개팅에서 부모의 연금 액수를 대놓고 물어보는 상대, 괜찮은 거냐”는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결혼 정보 회사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예전엔 부모의 전직·학력 등 과거의 사회적 지위를 물었다면, 이젠 ‘자식에게 손 안 벌릴 정도인지’ 미래 경제력을 따진다”며 “결혼을 포기하는 남녀 상당수가 부모 노후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통상 결혼을 통해 부부가 자산을 모으고 부(富)의 재분배도 일어난다. 그런데 부모 경제력이 결혼 여부를 좌우한다면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웨딩 박람회를 찾은 예비 부부가 드레스 등 결혼 관련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정부의 신혼부부 지원 정책 등에 힘입어 최근 결혼 건수가 증가했다. /뉴스1
     

    명문대를 나와 억대 연봉을 받는 연구원 김모(41)씨가 그런 경우. 택시 기사인 아버지와 청소일 하는 어머니의 생활비와 각종 목돈을 부담한다.

     

    그는 “많은 여성을 만나봤지만 번번이 부모 문제가 걸리더라. 누가 ‘집안의 기둥’인 나에게 시집오겠느냐. 부모님도 차마 결혼을 못 권하신다”고 했다.

     

    김씨보다 소득이 적은 중소기업 직원 정모(40)씨는 지난달 결혼에 성공했다. “내가 외아들이지만 전문직인 누나들이 부모를 부양하니 난 내 가정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여자 친구를 설득했다고.

    불안한 한국인의 노후

    부모의 노후가 준비돼 있다는 건 뭘까. 많은 이가 “자식에게 지원은 못 해주더라도 생계·의료비 등 중대한 경제적 부담을 지우지 않을 정도”라고 말한다.

    통상 은퇴자의 경제 상황은 연금과 저축, 자기 소유 집, 그리고 대출 세 가지로 판단한다. 이에 따라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해 빚 없이 10억원 이상의 자가 보유’가 보장된 노후의 국룰로 통한다.

    현 결혼 적령기인 2030 세대는 '부모를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데 3명중 1명만 '그렇다'고 적극 답했다. 한편 은퇴한 가구주 대상 설문에서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답변이 과반이었다. /그래픽=송윤혜
     

    지금 같은 불황과 고물가에 중요한 건 자산 규모보다 현금 흐름이다. 땅 부자라도 당장 쓸 돈이 없거나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면 노후 보장이 안 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한 50대 항공사 임원은 “후배끼리 소개해주며 ‘상대 부모가 건물 상가를 갖고 있다’고 했더니, 상가 입지가 어떤지, 공실 없이 임대료가 매달 들어오는지 확인해 놀랐다”고 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은퇴 가구의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에 묶여 있고, 연금 체계는 선진국보다 크게 뒤떨어진다는 점.

    중산층 노인 부부에게 필요한 생활비는 월 400만~500만원이지만, 연금 수급액은 평균 65만원에 불과하다.

     

    지난 연말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통계청 조사에서 가구주가 은퇴한 가구의 57%가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했고 “여유 있다”는 답은 10%에 그쳤다.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의 격에 맞지 않게 노인 빈곤율은 40%에 육박, OECD 평균(14%)을 크게 웃돈다.

    이달 초 서울 탑골공원 노인무료급식소 앞 풍경. 최근 정부에 따르면 노인 빈곤율이 2년 연속 악화, OECD 선진국의 평균 노인 빈곤율(14.2%)의 3배에 육박하는 40%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한국 노인의 노후가 불안한 건 대개 자식에게 올인한 결과다. 봉급을 자녀 교육에 털고, 결혼 때 집을 해주고 사업 자금 대주거나 손주 양육까지 도왔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논리도 통했다.

     

    반면 선진국에선 부모가 성인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경우가 드물고, 자녀가 늙은 부모를 책임진다는 개념도 희박하다.

    우리도 상황이 크게 변했다. 수명은 길어졌는데 은퇴 연령은 앞당겨졌다. 노인 일자리가 부족해 재취업도 쉽지 않다. 노인 돌봄 체계가 취약해 고액의 비보험 치료나 간병비 부담은 여전히 가족이 짊어진다.

     

    지금 60~70대에 접어든 베이비부머들은 자녀를 하나나 둘밖에 두지 않았다. 이런 귀한 자녀들이 결혼하면서 ‘둘이서 양가 부모의 노후를 30년 넘게 떠맡을 수 있다’는 점을 일생일대의 악재로 보게 된 것이다.

    不孝라 탓할 수만도 없어

    “자녀가 부모를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하는가?” 2030세대 약 3명 중 1명만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 특유의 내리사랑과 효(孝)의 선순환 시스템이 흔들린다. 내가 베푼 만큼 자식의 선의를 기대한다는 건 ‘자식 발목 잡는 일’이 됐다.

    MZ 세대는 IMF 이후 출생하거나 유소년기를 보내고, 저성장이 구조화된 시기에 사회에 진출하거나 결혼했다. 이들은 미래의 경제 사회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는 성향을 보인다. /조선디자인랩 이연주
     

    MZ 예비 부부들에게 인기인 한 유튜버는 “신혼 초 양가에 매달 용돈 30만원씩 드리다, 이렇게 해선 종잣돈 모으기 힘들 것 같아 명절·생신 축하금 말곤 과감히 끊었다. 그 덕에 4년 만에 6억원을 모았다”고 한다.

    “키워준 게 얼마인데 몇십만 원을 아까워하느냐”고 괘씸해할 수는 없다. 저성장 시대를 살아갈 자녀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MZ 세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불확실성이다. 이들은 결혼에선 서로 형편이 비슷해 갈등이 적은 ‘동질혼’을 선호한다. 가끔 로또 긁듯 ‘상향혼’을 꿈꾸다가도, 자신의 입지가 불리해질까 봐 망설인다. 자신이 확보한 안정적 삶을 위협하는 ‘하향혼’을 극도로 꺼리는데, 그 핵심은 상대 부모의 불안한 노후다.

     

    그래서 이들은 ‘노오력’의 상징 개룡남·개룡녀를 기피한다. 어차피 개천에서 용 나기도 쉽지 않은 시대다. 20대 여성 직장인 김모씨는 “부모 수저에 따라 결혼 등급이 정해지는 것이 마치 신분제 사회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 이중 부양의 짐을 맨 채 은퇴하지 못하는 1960년대생 베이비부머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이렇게 변한 세태를 부모 세대가 더 예민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서울의 60대 주부 한모씨는 “개룡남 남편을 만나 30년 넘게 시댁을 지원하는 ‘개천 정비 사업’을 했다. 내 자식은 절대 그렇게 살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며느리는 빈 몸으로 시집와도 되지만, 아들이 처가를 봉양해야 한다면 그 결혼 막겠다”는 것이다.

     

    분당의 박모(57)씨도 “대학생 딸들에게 ‘같이 여행 가자’ ‘차 사주겠다’ 하면 ‘돈 아껴뒀다 부모님 노후나 확실히 해두라’고 펄쩍 뛴다”며 “가족은 서로 끝없이 주고받는 거라고 여겼던 과거와 너무 다르지만, 이제는 이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쿨내 나는 선진국형 부모 자식의 시대,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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