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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낙서장 2025. 9. 25. 07:30
"닥터 리, 무슨 소리가 안 들리세요?"
'무슨 소리가 들린단 말인가 적막강산인데............
네팔 친구 라즈반다리 씨와 2주 여정으로 카린쵸크라는 4000 미터급 산에서 명상 트레킹을 하며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무슨 소리?" 하면서 갸우뚱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그가 자기 곁에 와서 누워보라고 했습니다.
누웠습니다. 가만히 있는 나에게 그가 말했습니다.
이 소리 안 들리세요?"
'엇, 이게 웬 소리인가?'
작은 풀벌레 소리하며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까지 별별 소리들이 다 들렸습니다. 적막강산이 아니라 도처에 생명의 소리들이 넘쳐났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느낌이었죠.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산맥 속에 내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있었단 말인가?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누워 있었습니다. 지금 껏 산꼭대기만 보고 가쁘게 올랐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 순간이었습니다. 라즈반다리 씨는 굳이 긴 설명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놀라워하는 모습에 흐뭇한 표정만 지었죠. 그것으로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다 건넨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템포만 여유로워도 이런 행복감을 맛볼 수 있습 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도 바빴을까요? "바쁘다 바빠"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정작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상황이 되면 불안해합니다. 바쁜 생활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죠.
예전에는 아무리 바빠도 지금 같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언제 부터 이렇게 정신없이 바빠졌을까요?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생긴 습관이 아닐까 합니다. 그 과정에서 농경사회 역시 산업사회 로 바뀌어갔고, 산업화의 중요한 속성인 속도가 중시되었습니다.
한국을 방문했던 초기 서양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고요한 아침 의 나라 백성이라고 했다죠. 하지만 고속 성장기에 방문한 서양 사람들의 평가는 사뭇 달랐습니다. 바쁘게 길을 걷는 군중, 활기찬 모습,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들, 쉬지 않는 근로자들. 이런 모습 때문에 고요하다기보다 역동적 이라는 표현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전의 가난을 벗고 경제적으로 일정 수준에 올라 와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역동성으로 성장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스 스로의 내공을 쌓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하는 습관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이자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상 '빨리'는 가능해도 '계속 빨리'는 불가능합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연속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그 누적된 피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정신과의사로서 볼 때, 불안에 근거한 신경증을 앓는 개인이 늘고 있고, 사회는 집단적 편집증을 앓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유발 요인의 하나로서 고속성장의 후유증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산을 오르지만 등성이에 잠깐 앉아 쉬어 가는 여유조차 없는 사람을 봅니다. 그에게는 오로지 정상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어디 산을 가보았다는 말이 정상을 정복했다는 말로 통 합니다. 그 산에 가서 중턱에서 재미있게 놀다 올 수도 있는데요. 나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살고, 누구는 이 세상에 즐거운 소풍 온 듯 살기도 합니다. 정상을 고집하는 인식은 개인의 속성과 성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당 부분에서는 사회적 분위기가 가하는 압박으로 생 긴 습관일 수 있습니다.
'빨리빨리'라는 습관이 우리 몸에 배어 사회적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 여유로움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없습니다. 송곳 박을 땅도 없다'는 속담처럼 여유가 없습니다.
일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꿔야 한다. 이런 독려 때문인지 진짜로 일등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한가요? 아니, 나는 행복한가요?
행복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고, 행복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는 행복을 얻기보다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나서야 할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히말라야를 열심히 오르는 사람은 행복을 얻으려 하고, 히말라야에 조용히 누워 땅에 귀를 댄 사람은 행복을 찾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는 부러집니다. 한계를 넘어 균형이 깨지면 개인과 사회는 아프게 마련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불행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모르고 살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팽팽히 긴장돼 있고, 너무나 빨리 오르고 있기 때문에 숨이 찹니다. 그래서 행복을 알아보려면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몸과 머리가 바쁘다 해도 마음까지 바쁠 필요는 없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의 여유는 정신과 몸의 건강에 꼭 필요합니다. 명상이든 취미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자기만의 평온한 시간 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히말라야에서 친구의 말대로 걸음을 멈추고 누웠을 때, 나는 그 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이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다시 내딛는 다리에 절로 힘이 들어갔습니다.
2025년 9월 25일 몇일전 이근후 지음 ‘오늘은 내 인생에 가장 젊었던 날입니다.’ 의 책에서 읽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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