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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지도자들의 정치적 소신종교문화 2025. 10. 15. 10:10
요즘 들어 종교인들이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일들이 자주 눈에 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용기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친구들과 이 문제를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
찬성하는 쪽은 이렇게 말했다. “목사나 신부, 스님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진리와 정의를 따라 사람들을 이끄는 분들이야. 만약 그들이 세상 속에서 불의와 부정을 보면서도 침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직무유기 아닌가?
우리가 우물가에서 위험하게 노는 어린이를 보면 당연히 말리듯이, 목회자가 신앙의 눈으로 보기에 잘못된 방향이라 느낀다면, 그걸 말하고 가르치는 건 의무야.”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종교의 본질은 양심과 진리이며, 역사를 돌아보면 언제나 종교는 사회의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예언자들은 왕 앞에서도 진실을 말했고, 예수님 또한 성전에서 부정한 장사꾼들을 꾸짖으셨다.
진리를 말하는 것은 종교인의 본질적인 사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반대편의 말도 깊이 새겨볼 만했다. “아무리 신앙적 확신이 크더라도, 그 확신이 절대선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경험과 해석을 통해 진리를 본다. 그게 때로는 정치적 편향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종교 지도자가 정치 문제에 깊이 개입하면, 신앙 공동체는 갈라질 수밖에 없어.”
이 말 역시 맞다. 종교의 본질은 사람을 하나로 묶는 사랑과 평화이지, 편을 가르는 이념이 아니다.
목회자나 종교 지도자가 정치적 확신을 신앙의 이름으로 말할 때, 그 의도는 순수할지라도 그 말은 언제나 누군가에겐 ‘심판’처럼 들릴 수 있다. 결국 진리를 전하려던 말이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두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종교인은 세상의 불의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불의에 대항하는 방식은 언제나 “사랑과 겸손의 언어”여야 한다.
누군가를 단죄하거나, 특정 정치 세력의 입장을 대신 전하는 식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이념의 도구화’가 된다.
예수님이 정치가처럼 권력의 편에 서지 않으셨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분은 세상을 바꾸려 하셨지만, 그 방법은 ‘사랑’이었고 ‘희생’이었지, 결코 ‘권력’이 아니었다.
목회자나 종교 지도자는 세상의 옳고 그름에 대해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즉 사랑과 회복의 관점에서 전해야 한다.
정치적 언어는 분열을 낳지만, 신앙의 언어는 마음을 깨운다.
“너는 옳고 너는 틀렸다”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더 바른 길로 가야 한다”는 말로 세상과 대화해야 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침묵’도, ‘비난’도 아니다. 분별된 용기와 겸손한 언어다.
세상은 지금도 진리를 외치는 목소리를 필요로 하지만, 그 목소리가 사랑을 잃는 순간,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소음’이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치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느냐 하는 것이다. 종교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싶다.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말하라.
정의를 외치되, 겸손으로 외쳐라. 권력을 향하기보다, 양심을 향하라.”
그럴 때 비로소, 종교인의 소신은 ‘분열의 불씨’가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2025년 10월 15일
추신: 몇일전 친구들과 신부나 목사가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것이 옳은가? 에 대해 토론을 했다. 요지는 그들은 신도를 옳은 방향으로 인도할 의무가 있기에 종교적 양심에서 밝히는 것이 당연하는 측과 그들이 신에게 느낀 소신이 절대선이 될수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컴퓨터가 써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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