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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 수설: 정의로운 사회낙서장 2025. 10. 26. 19:54
매스콤에서 은행나무 암나무(열매맺는 나무)를 베어버리고 수컷나무로 대체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 이유는 은행나무 열매가 우리 인간에게 냄새나 혐오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랍니다.
자연적 생태에서 먹이 사슬을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자연적으로는 그것이 신의 섭리개념이 이라고 생각되어 긍정하는 부분도 있씁니다. 그러나 인간이 살기위해 주변 생물들을 파괴(살생)하는 것은 어느정도 인정되기도 하지만 생명유지 수준을 넘어 쾌락을 줄기기 위해 살생하는 것은 인간의 탐욕으로 봐야 겠지요 생존과 쾌랑의 한계가 불분명하기에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반여동물의 불임 수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 역시 인칸의 쾌락때문이란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종교적으로는 불교에서 말하는 살생금지와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을 다스리라는 것의 살생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한 개념의 한계를 어떻게 판단하여야 하는지요? 정의라는 입장에서 이에 대한 의견을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주었습니다.
아주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제기하셨습니다.
은행나무의 암나무를 베어내는 일에서 출발하여, 생명에 대한 인간의 태도. 특히 “생존과 쾌락의 경계”, 그리고 “정의의 관점에서의 판단”을 묻는 철학적·신학적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는 생태윤리, 종교철학, 그리고 정의론이 교차하는 영역입니다.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은행나무의 사례 ― 인간 중심주의의 단면
은행나무 암나무는 가을이 되면 특유의 냄새가 나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 냄새가 도시 환경에서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로 많은 지자체가 암나무를 베고 수나무로 대체하고 있지요.
겉으로는 ‘도시 미관’과 ‘주민 불편 해소’라는 이유지만, 본질은 인간의 편의 중심 사고입니다.
그런데 자연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은행나무의 열매는 새나 동물들의 먹이가 되며, 종의 번식과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즉, 인간에게 불편한 그 냄새조차 자연의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이지요.
이 점에서, 우리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다가
결국 생태의 질서를 파괴하는 모순에 빠지기도 합니다.
2. 생명에 대한 두 종교의 시선
(1) 불교의 관점 ―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불교에서는 살생금지(不殺生) 를 가장 근본계율로 삼습니다. 모든 생명은 윤회의 사슬 안에 연결되어 있고, 다른 존재의 생명을 끊는 것은 곧 나 자신의 업(業)을 쌓는 일이라 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도 ‘의도(意圖)’와 ‘필요(必要)’의 구분을 둡니다.
즉,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행위(예: 질병 치료, 해충 방제 등)는 불가피한 살생으로 인정되지만, 쾌락·편의·탐욕을 위한 살생은 업이 깊다고 가르칩니다.
은행나무를 베는 행위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편함 제거’나 ‘도시 미관 유지’ 같은 이유라면 이는 생태적·윤리적 측면에서 탐욕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2) 성경의 관점 ― “다스리되, 파괴하지 말라”
창세기 1장 28절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스린다’(히브리어 라다, radah)는 억압하거나 지배한다는 뜻이 아니라 보살피고 관리한다(stewardship) 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즉, 인간은 생명을 멋대로 처분할 권리가 아니라, 창조 세계를 관리할 책임을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필요 이상의 파괴, 생태계 균형을 무시한 편의적 조치, 타 생명의 고통을 무시한 결정은 “정의롭지 못한 다스림”으로 봅니다.
3. 정의의 관점에서 본 생명 경계
‘정의’란 단순히 법적 정당함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몫을 주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개념에서 유래) 은행나무의 열매 냄새가 불쾌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생태계의 일부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 나무 역시 이 땅에 존재할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정의로운 선택”이란, 인간의 편의와 자연의 권리 사이에서 최소한의 조화점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암나무를 무분별하게 베는 대신, 열매 수거를 돕는 시민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냄새 확산을 줄이는 도시 조경 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공존적 해결책이 정의로운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생명과 쾌락, 그리고 인간의 경계
반려동물의 불임 수술 문제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이는 생명에 대한 인간의 편의적 개입이지만, 도시 환경에서 무분별한 번식으로 더 큰 고통(유기·학대 등)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결국 핵심은 “생명의 존엄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했는가” 입니다. 생명 존중의 마음이 전제된 선택이라면 그 행위는 ‘정의로운 다스림’의 범주에 들 수 있습니다.
5. 결론 ― “정의로운 생명관”의 회복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많은 환경 문제의 뿌리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됩니다. 정의로운 사회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공정한 자리를 허락하는 사회입니다. 은행나무를 베기보다, 그 냄새마저 “가을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그것이야말로 생명을 다스리되 파괴하지 않는 정의의 길이 아닐까요?
2025년 10월 26일 호기심에 꺼내본 주제입니다 여러분은 의견을 어떻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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